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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 · 2025-07-01 (화) > · 큐티인 | 사사기 1:1-10 > ·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 강성은 목사 > >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 3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 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 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 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 7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 8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 9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 10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 >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사사기 1장 1절로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사기 1장 1절로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봉독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울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가지니라 보라 내가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가 그의 시몬에게 이뽑아 얻은 땅에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족과싸자 그하면 비뽑아 얻은에 가리라 하니 이에 시모이 함께 가니라가 올라가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에서 만 명을 죽이고 또에서 아돈이 색을 만나 그싸워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아돈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발락을 아도니 이르되 옛에 70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발락이 잘리고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더니 하나님이 내가 한 대로 내게심이로다 하니라리가 그를 끌고 예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그 후에 다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서세와 아이과 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랴 아르바였더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길이 보이지 않은이 시대에도 주님께 묻는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도 새벽을 열어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벌써 2025년에 반이 지나고 7월에 첫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어 지난 반년을 돌아보면 어떠셨나요? 어 주일의 말씀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루하루를 큐티하며 공동체에 잘 붙어가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렇지 못한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오늘부터라도 말씀 앞에 엎드리고 공동체에 잘 붙어가며 왕우의 자리를 잘 지키며 나아가는 우리들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묵상할이 사사기는요. 신앙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 곧 왕이 없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 각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른 대로 행하였더라는이 말씀처럼 어 절대 진리 대신 상대적인이 판단에 살아가며 끊임없는 타락과 고난의 악순환이 있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죠.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소견대로 각자의 소견대로 옳은 대로 판단하며 말씀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어 여론이 우선되는 영적 혼동과 문제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는 내 기준과 판단으로 선택하고 내 경험과 지식으로 결정하며 살아가는 이런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 믿음으로 잘 세워서 믿음을 잘 세워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혼돈한 시제 가운데에 우리가 믿음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요. 첫째로 하나님께 잘 물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묵상할이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부터 사무엘 선지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약 3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낸이 혼란과 죄의 반복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이 사사기는 여호수아서와는 다르게 가나안 정복 이후에 이스라엘 각 지파가 땅을 차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지도자의 부대 부부 시대 곧 왕이 없던 시대를 배경한다고 말씀을 드렸죠. 어, 이런 시대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기의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였다.이 말씀은 사사기 전체를 설명하는 핵심 구절이니다. 한마디로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대신 상대적인 판단에 살아가고 하나님보다는 자기 생각과 기준에 맞춰서 살아가는 시대라는 것이죠. 이런 영적 혼동과 무지서가 남무하는이 시대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사를 세워 주셨습니다. 사사가 무엇일까요?이 사사는 히브리어로 보면요. 쇼페트라는이 단어를 사용하는데요.이 뜻은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요. 판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재판관이라는이 뜻이죠. 실제로 사사들은 재판도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역할은이 위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인도해 내서 구원하는 역할이었죠. 당시 사사들은 인간적으로는 그렇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 군사 지도자 그리고 신앙의 중제자 하나님의 손엔 붙들린 구속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죄를 반복하고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러 번 구원하십니다. 사사기를 묵상하다 보면요.이 반복되는 구조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타락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 죄들을 징계하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그리고 또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또 사살을 보내시고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평안한 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러다 보니 또 뭐가 또 틈타옵니까? 또 죄가 틈타옵니다. 그래서 타락하고 심판받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구원받고 또 평안한 삶을 계속해서 반복해져 나가는 것이 우리가 오늘부터 묵상할이 사사기에 반복되는 패턴들이에요. 이런 악순환 속에서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은혜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사사기는요. 단순한 어 성경 임무를 다룬 역사서로 보면은 안 됩니다.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그 신실하신 은혜가 교차하는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러한 삶들과 일치되어지는이 구속사의 무대처럼 우리가 묵상을 하면서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기 1장부터 시작을 합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장면이죠. 이스라엘은 이제 스스로 각 지파별로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유다 지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전쟁에 나섰지만 우리가 계속 묵상하면서 보겠지만 다른 지파들은 세상 앞에 타협하고 현실 앞에 타협하고 또 두려워하고 순종을 하지만 하는 모습들은 보여지지만 부분적으로만 순종하는 100%의 순종이 아닌 부분적으로 순종하는 결국 순종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많은 지파가 가나안 족속과 공존하는이 강제 노역을 시키는이 시의 현실에 타협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사사기 전체의 영적인 하향 곡선을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에 오늘 본문 1절은 이스라엘의 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엿주어 이르되 여기서 엿주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알입니다.이 단어는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간절히 구하고 간청하다는이 뜻을 가지고 있어요. 다시 말해 여호수아가 죽은 죽은이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에서 전쟁을 앞두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묻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하나님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까요?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공동체가 보여주는 성숙한 반응이지 않을까요? 우리에도 인생의 전환점, 결정의 갈린길 앞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큐티의 시작이고 목장에서 나눔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이 무음 앞에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고 말씀하시죠.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입니다. 이미 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늘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주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결혼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 생활을 해 보니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확신하는 직장인데 오히려 불편한 사람들과의 갈등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확신한 그렇게 시작한 일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고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준다는 것, 여호와께 묻는다는 것은 단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3절입니다. 유다가 그의 형제 시몬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내가 제비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시모 지파와 함께 올라가자고 유다 지파가 제안을 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전쟁을 감당하려 하는 이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이 전쟁을 감당하는 방식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묻고 함께 순종하고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대로 여쭈면은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라 말씀대로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요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용기이고 훈련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신앙인 줄로 믿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 앞에서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묻는 것, 공동체에 나누는 것, 묻고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뜻과 다를까 봐, 공동체의 처방이 내 생각과 다를까 봐, 내 계획과 다를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나누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실까 봐, 공동체가 나를 멈추게 할까 봐 우리가 묻는 것을 포기하고 내 방식대로 결정해 버릴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공동체를 신뢰하는 이들은 잘 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이 맺어주신 공동체를 신뢰하면 내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뿐만이 아니라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라는 그 믿음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클수록 더 잘 묻고 묻는만큼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여호수아와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인데요. 저희 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목회자가 되고 싶으셨다고 해요. 어 그런데 이제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이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 막중한 임무 앞에서 그 길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만큼은 포기하지 않으셨던 거 같아요. 하나님께 서원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첫째 아들은 신학교에 보내서 목회자로 키워내겠습니다. 그 첫째 아들이 바로 저입니다. 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버지의 뜻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이러한 인생 가운데에 이렇게 저는 아버지의 꿈을 잃어들이는 목회자가 되었기에 겉으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 앞에 제 삶을 되돌아보니 그게 진짜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제 삶이 아니더라고요. 어, 내가 어떻게 이런 목회자의 길을 걸어갔을까라고 고민을 해 보니까요. 어, 부르심이 아니라 아버지의 그 물질적인 지원으로 제가 지금까지 버텨 온 것 같습니다. 어,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아버지의 보호 아래 살아온이 안락함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신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원래 다른 거를 좀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그 이유가요. 아버지가 신학대학에 가면요. 차를 사 주신다 그랬어요. 예. 그래서 신학대학에 기쁜 마음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근데 차를 사 주셨을까요? 안 사 주시더라고요. 네. 속았습니다. 결국에는 제가 군대 다녀오고 전도사 생활을 이제 다른 지역에서 하다 보면서 어 이제 어쩔 수 없이 차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니까 이제 차를 좀 선물을 해 주셨는데음 이렇게 저는 신앙보다는이 생계를 또 부르심보다는 물질적인이 안정이 제 우선순위였던 것 같습니다. 어, 이런 상황에서 이제 얼마 전 제가 고향에 아버지를 배러 잠깐 내려갔다 왔는데요. 오랜만에 갔거든요. 몇 달 만에 이제 아버지를 찾아뵙는데요. 아버지 표정이 좋지 않은 거예요. 예전처럼 저를 반겨 주시지 않으셔요. 제가 딱 갔는데 차를 타고 나가시더라고요. 어, 그 순간 제 마음이 많이 흔들려요. 아,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지?이 라는이 두려움이 제 마음 가운데에 몰려오더라고요. 근데 정작 더 문제였던 거는 제가 아버지와의 그 관계보다 어 제 물질의 끈이 끊어질까 봐이 세상에이 물질을 놓지 못하는 제 모습이 어 더 두렵더라고요. 되돌아보면은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보다는 돈을 더 의지하면서 그 돈을 주시는 아버지를 더 하나님보다 위에 세우면서 살아갔던 인생이 이미 인정이 됩니다. 이러한 사건이 저에게 찾아왔을 때 하나님 저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물어야 되는데요. 여전히 세상 방식으로 아버지와의 그 관계를 회복하려고 발어둥치고 있더라고. 말씀 앞에 묻는 것보다 큐티책을 펴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은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라는 것을 고민하는 모습이 진짜 제 모습이라는게 인정이 됩니다. 여전히 아, 돈의 우상 앞에 엎드려지고 돈의 우상을 떠나라고 주신 하나님의 사건 앞에서도 말씀 앞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께 묻지 못하는 어 죄인임이 인정이 됩니다. 적용 지문입니다. 지금 내 인생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 같은 시간은 무엇입니까? 최근 내가 묻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요? 또한 묻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혼돈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께 잘 부려야 하고 두 번째로 악을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잘 묻고 말씀에 순종했던 유다 지파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4절 말씀입니다.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색에서 만 명을 죽이고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기셨고 그들을 전투에서 만 명을 베어 죽였다고 기록을 합니다. 또한이어서 5절 6절 말씀입니다. 또 베색에서 아도니 베색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아도니 배색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자르매 전쟁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도니 베색이죠.이 이 아도니 베세의 이름의 뜻은요. 베세메스의 주인 또한 빛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나안의 왕입니다. 어 그는 붙잡혀서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이 잘리는 형벌을 받습니다.이 잔혹해 보이는이 장면은 아도니베색이 자신이 이전에 행했던 잔인한 악행의 결과를 그대로 돌려받는 공의의 현장입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아도니 뱃이 이르되 옛적에 70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 엎드려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아도니베색은 과거 70명의 왕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서 자신의 상활에서 먹을 것을 줬던 자입니다. 잔인한 권력자였고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들며 지배했던 인물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가 그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리는이 상황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셨죠.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그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대과 교만과 폭력에 대한 대가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으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은밀하게 또는 공개적으로 나타나게 되죠. 말씀을 준비하면서이 부분을 묵상하는데요. 어, 제가 두렵더라고요. 나는 과연 몇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른 아돈이 배색일까? 내 나의 말 한마디로 나의 태도 한 번으로 나의 권위로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놀리고 죽였는지 돌아보니 제가 아도니 배색만큼 심한 죄인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더라고요. 다시 말해 제가 아도니 배색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라온 저는 어 뒤로는 죄를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괜찮은 아들인 척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저에게 두 살 떠울에 남동생이 있는데 저는 동생 앞에서도 늘 괜찮은 형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는이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자라면서도 음살 때부터 부모님과 혼자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이 현실 앞에서 제가 자립심이 아닌 이기심으로 가득차다 보니 동생도 제 뜻대로 잘 키워 보자 하는 그런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제 방식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스스로 무너진 삶을 살아오면서도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동생만큼은 잘 키웠다는 그 칭찬받기 위해서 자기만적 정의감으로 제 뜻 안에서 동생을 통제하고 억압했습니다. 말로 행동으로 심지어는 채벌로 동생을 제 기준에 맞추려고 했고 그게 형의 책임이고 사랑이라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음. 동생의이 삶 앞에서 제가 같이 공감해 주고 같이 눈물 흘려 주고 같이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제 뜻 안에서 자라나지 못하는이 동생을 보면서 우라통이 터져서 영혼에 대한 애통함 없이 자기 의만 내세워 지금 제 동생은 여전히 세상 가운데에서 어 흘러 떠내려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동생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잔소리부터 나오더라고요. 동생이 교회 공동체를 신하 떠나 신앙을 떠난 것이음 제 죄라는 것이 인정이 되지 않으니 여전히 말로 동생을 타이르려 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동생을 설득하려고 하는이 모습이 제 안에 있습니다. 아돈이 베색을 묵상하면서 그는 악한 왕이니까 당연히 뿌린 대로 걷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구속사를 통한 큐티는 바로 내가 아돈이 뱃색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주변에 주님께서 맺어 주신이 가족의 공동체 또한 친구 직장 동료들을 아도니 배색처럼 죽이고 헐뜯고 비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도니베색이 70명의 왕을 짓밟을 동안에도 하나님은 참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유회가 아니라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이 말씀이 주어졌다면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돌이켜 살아나야 하는 회개의 기회인 줄로 믿습니다. 심판이 닥친 뒤에 후회한다면 아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셨다면 지금 우리의 삶을 돌이켜 회개함으로 말씀 앞에 엎드려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온 아도니 배색과 같은 죄인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돌이키라고 주신 회개의 기회는 언제입니까? 나는 즉시 회개하고 돌이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혼돈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하나님께 잘 물어야 하고 둘째로 악을 즉시 회개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8절입니다.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유다 지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전쟁에 나아갑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중심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칼날로 치며 성을 불살랐습니다.이 승리는 결코 유다의 군사적 전략이나 어 전투력이 높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이 이 예루살렘은요.이 산악 지대에 위치한 난공불락의 성이거든요. 이후 다윗 시대까지도 완전한 통제가 쉽지 않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 지파가 그 땅을 하루 아침에 점령하게 됩니다.이는 2절 말씀에서 우리가 묵상하했듯이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졌다. 이미 넘겨 주었노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전쟁은 시작도 안 됐는데 이미 승리를 유다에게 안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이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죠. 싸워야 했습니다. 믿음의 현실을 피하게 믿음은 현실을 피하게 해주는 마법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게 해주는 용기인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지형적인 요새화된 도시로서 산 위에 자리잡은 전략적인 거점이었고 문화적으로도 가나안 신앙과 정치적 중심에이 역할을 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도시를 이스라엘이 처음 정복 전선에 단독으로 무너뜨렸다는 것은 진짜 하나님께서 하셨다라는 고백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8절에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이 승리 이후 계속되는 정복 전쟁이 이제 9절 10절로이어서 나옵니다. 9절 10절입니다.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난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세와 아이망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랴앗 아르바였더라. 여기서의 산지 험준한 곳이죠. 그리고 남방 사막입니다. 그리고 평지 적과의 접경 지역이고 헤브론 거인이 살던 지역입니다. 전쟁을 하기에 다 쉽지 않은 지역입니다. 한마디로이 지역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두려운 곳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갔던이 유다는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헤브론 곧 기락 아르바까지 올라가이 아악 자손들을 물리치게 되죠.이 이 기란 아르바를 점령했다는이 사실 또한 어 정말 역사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곳인데 아브라함이 묻힌 약속의 땅인 것입니다. 이곳을 점령한다는 것은 단순한 군사적 정복을 넘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전치 하나님의 그 약속의 성취가 실현되는 구속사적인 성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함께하신 자를 통해 어작을 성취하시고 구속사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주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하나님의 함께하신다는이 믿음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께 잘 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순종, 그 믿음이 순종으로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 추상적으로만 보였던 승리를 품에 안겨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싸움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해서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죠. 오히려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이 힘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말씀 앞에 엎드려지고 매일매일 큐티하며 공동체에 함께 나누면서 믿음의 동역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내 현실의 거인들, 내 삶에 경고한 성들이 여전히이 예배당 문밖을 나가면 주의지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싸움은 이미 승리가 약속된 싸움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싸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 싸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고백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이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일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2025년이 시작한지 진짜 얼마 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이 이 반년 동안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그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어 남은 2025년은 어떠한 고난이 우리 가운데 찾아올지라도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주님께 잘 묻고 순종하며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입니다. 내 앞에 있는 예루살렘 같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오늘 내가 즉시 순종해야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사기 1장은 영적 혼동과 전쟁이 시기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구속자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께 잘 묻고 죄악을 즉시 회개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으며 우리에게 허락된 믿음을 믿음의 싸움을 승리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여전방 식으로 우리를 새벽에 깨우시고 예배의 자리 가운데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길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 또한 때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내 생각과 감정 경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던 삶이었음을 고백을 합니다. 주님 이제는 먼저 주님께 묻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동체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왕우의 자리를 잘 지키면서 나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았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고 내 말과 태도로 누군가를 죽인 아더니 배색과 같은 죄인이 바로 나였음을 고백할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순종하는 길을 갈 수 있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공동체를 신뢰하며 우리가 함께 말씀 앞에 엎드려지고 함께 나누고 죄와 함께 싸우는 은혜를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이 말씀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이어서 이어서이 시간 우리 개인과 가정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면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지도자가 부제한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먼저 물었던 유다 지파처럼 우리의 가정도 삶의 수많은 선택 앞에서 주님께 묻는 믿음의 대도를 일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정과 형편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가운데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하시고 공동체의 권면의 귀를 기울이면서 겸손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일들을 위해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게 하시고 묻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개인과 가정이 되게 해달라고이 시간 간절하게 주님의 이름 부르짖고 우리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 주여 하나님 아버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지도자가 부대한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먼저 묻고 나아갔더니 인도해 주시옵소서. 지하면서 나아갔던 그지도자가 그제 가운데서도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닥쳐 있는이 문제 앞에서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주님께 묻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의 뜻과 아버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기준되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이 가정의 형과이 상황 가운데서 빠지 않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고 어떤 성 앞에서도 주님께 묻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태도를 잊지 않는 우리들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묻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우리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지는 우리들 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이어서 [음악] 교회와 단임 목사님 위해서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사사기의 시대처럼 영적 혼돈 가운 혼돈이 가득한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이 우리들 교회가 유다 지파처럼 하나님께 먼저 묻고 구속사의 말씀 앞에 따라 공동체 함께 순종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행되어지고 있는 전라도 띵크트립 또한 전라도 띵크 목회 세미나 가운데에 함께하여 주셔서 회개의 눈물이 회복의 열매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정말 말씀이 들려서 한 영혼이 살아나는 부흥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단임 목사님의 영육을 강건하게 붙들어 주시고 또한 지금 필리핀에서 말씀을 선포하면서 나아가실 때에 주님 영육 가운데 강건함 가운데에 정말 그 필리핀의 그 목회자들이 구속사의 그 말씀으로 살아나는 은혜가 있게 해달라고 또한 하시는 방송사 선교 사역 가운데 기름을 부어 주셔서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는이 말씀 사역을 통해 죽어가는 그 심령들이 살아나게 해달라고이 시간 우리 교회와 단임 목사님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를이 시간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나아갑니다. 우리 공동체가 말씀 앞에 먼저 먹고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사사기의 시대처럼이 영적 공이 가득한이 시대 가운데에 우리도 교회를 세워주신 것이 정말로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이 말씀 앞에 먼저 엎드려고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정말 우리가 믿음으로 세워지는 것 아버지 정말로 주님께서 인도하심 가운데 나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공동체 가운데 말씀의 영이 아버지 넘칠 수 있도록 아버지 하여주에 [음악] 아버지 아버지 정말 나를 살아가는이 가운데 주시옵고 아버지 그 모든 지역들이 섬갈 때에 그 하나님의 그 은혜가 아버지 참고 넘칠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서 주님 아버 가운데 주님 기름 부어주셔서 아버지 정말 그 한이 살아나고 한 교회가 살아나고 가족이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는 아버지 그런 은혜 가운데 아버지 우리가 말씀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목사님 영을 강건하게 붙들어 주시옵고 아버지 우리 목사님의 사역 가운데 주님 기름 부어주셔서 아버지 정말로 그 한 영혼이 살아나고 그 살아난 그 말씀으로 그 한 영혼이 또 살리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아버지 아버지 필기를 소망하니 주님 역사하시고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이어서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리를 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이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사사기의 마지막 정처럼 혼동과 분열로 흘러가는이 나라가 다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말씀 앞에 무릎 꿇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법과 문화가이 땅을 삼키지 못하도록 주의 손으로 막아 주시옵소서. 생명을 보호하고 가정을 지키는 법과 제도가 뿌리내 길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워 주시옵고 그 한 사람을 통해이 나라가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이 이 시간 주님의 이름 부르짖으면서이 민족이 나라가 주님의 통치를 받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우리 간절한 마음에 담아 주님의 이름 부르짖고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주여 하나님 주시옵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나라의 민족을 주장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그 복음으로 세워진이 나라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인권을 앞세어서 법들로 가득채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라가 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소대로 옳른 대로 행대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는 진리의 나라가 되게 주셨고 하나님의 뜻을 거르는 모든 과가 막아지고 생명 보호법이 정되어지게 해달라고 주님 이렇게 간절히 우리가 부르짖고 기도하면서 나아가오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가운데 믿음의 백성으로 아버지 주님 세워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동과 분열로 아버지 찢어져가고 있는이 나라를 하지를 소망합니다. 우리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함께 기도하면서 가오니 주 나라 주상 여겨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 될 수 있도록 주여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아버지 주님이 바로 부른에서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여 허락하여 주셨기를 소망하오니 주님 우리 가운데에 주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여 주시되게 하여 주시 > 마지막으로 지병의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돈이 배색처럼 고통 중에 하나님의 뜻을 뒤늦게 고백하지 않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병이라는 전쟁 앞에선 우리가 지금 주님께 묻고 말씀 앞에 반응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회복이 더디고 고통이 오래될지라도 지병보다 더 무서운 불신앙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육체보다 영원히 먼저 살아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병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가 더 크게 경험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고 말씀을 통한 해석과 위로가 찾아오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이 이 시간 병중에 있는 직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회복의 손길이 임할 수 있도록 우리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듣고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고 [음악] 가운데도 하나님을 주시옵는 영적 분별력이 생길 수 있도록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음악]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어서 아버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너무나도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믿음이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육체의 회복 영혼의 회복이 먼저을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그 자리 아버지 다시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그 자리 가운데 우리가 나올 수 있도록 주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고 우리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이 때가 아버지 가장 아름다운 힘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병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자고 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의 피 손으로 안주하여 주셔서 깨끗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마음 가운데에 아버지 우리 육 가운데에 우리 정신 가운데에 아버지 주님의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회복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나는 인생으로 살리는 인생으로 아버지 나갈 수 있는 우리도 될 수 있도록 주여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시고 주님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잡아주시옵서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새벽을 열어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지도자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가장 먼저 주님께 묻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제 힘과 제 경험과 제식 그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먼저 묻기보다는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에게 주원이 사건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께 먼저 묻는 믿음을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응답이 내 생각과 다를까 봐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공동체에 나누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너무 두렵습니다. 여전히 제 자하가 죽어지지 않는 것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고 내 속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려 하는이 교황과 불신을 주님 내려놓고 말씀 앞에 엎드려지고 왕우의 자리를 잘 지키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아버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공동체를 신뢰하는 이들은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말씀 앞에 진지하게 질문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 베색과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고 내 방식대로 판단하며 살아왔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고통을 겪고 나서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 후에야 하나님이 갚으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오기 전에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깨달아 돌이켜 회개하는 믿음을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힘과 경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동행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이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도 말씀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를 살린 그 말씀을 들고 전라도 지역으로 떠나는 우리들 성도님들을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묵상 큐티 운동이 강에서 바다로 흘러나갈 때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특별히 오늘부터 접수가 시작되어지는 광주 띵크 목회 세미나 가운데에 말씀을 가급하는 그 한 교회를 붙잡아 세워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단임 목사님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단임 목사님의 영역에 강건함을 주여 붙잡아 주시옵소서. 지난주부터 진행되어진이 필리핀 탱크모키 세미나 일정 가운데에 주님 기름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말씀을 전하신 우리 목사님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 구속 선포되어진 그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 그 한 영혼이 또 한 영혼을 살리는 정말 영혼 구원의 그 릴레이가 이어질 수 있도록 구속사의 은혜가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목사님의 사역 위에 건강 위에 성령의 기름을 가득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라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여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여전히 인권을 앞세워 재정되어지는 모든 악법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이 모든 악법들이 막아지 막아지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 영혼 한 생명을 귀히 여기는 생명 보호법이 재정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두려워하는 그 한 명의 위정자가 세워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나라의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세워진이 나라의이 민족이 다시금 말씀으로 회복함을 얻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지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아픔으로 인해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못하고 육신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을 주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에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상한 육체를 친히 만져 주셔서 깨끗함과 회복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몸이 회복되기 이전에 먼저 영원히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따라 나아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미 승리를 우리 가운데 주심을 확신합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세상과 싸우면서 나아갑니다. 주님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주님께 잘 묻고 악에서 돌이켜 회개하며 주님의 동행하심을 늘 고백하는 우리들 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이 이 모든 말씀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이 이 시간 각자 가지고 나온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습니다. [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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