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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 · 2025-06-27 (금) > · 큐티인 | 시편 42:1-43:5 > ·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정정환 목사 > > 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2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 3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 4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6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 7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 8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 9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 10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 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1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 2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시편 42편 1절에서 43편 5절까지입니다. 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신내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배울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를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이 일을 기억하고 마음이 상하는도다.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네 하나님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의 폭포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낮에는 호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안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악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네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리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에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이 아침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빛과 진리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저의 목말음을 채워 주시옵소서. 낙심과 불안함이 떠나가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제까지 우리가 잠언을 묵상하면서 아, 내가 목사로 살면서 아직도 하나님께만 온전히 소망을 두기보다도 때때로 세상의 것을 향해 소망을 두는 제 자신의 모습을 좀 보게 됐습니다. 오늘 큐틴의 제목을 보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렇게 말씀하시죠.이 이 시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인생은 어 어떤 것인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해서는 첫 번째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이 시편은요. 네. 성전을 섬기는 고라 자손들의 교훈 시입니다. 1절과 2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내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배울까? 자, 지금 시은 하나님을 찾기 갈급한 상태입니다. 자, 그럼 왜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 가운데 있을까요? 고난 때문이지요. 군대를 다녀오신 분 아시겠지만 군대 시절 우리가 땡볕 아래에서 무거운 군장을 등에 매고 몇 시간을 행군하다 보면 목이 마릅니다. 심한 갈증을 느끼죠. 그때는 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나 고기 이런 건 생각나지 않습니다. 당장이 갈증을 해갈해 줄 한 방울의 물이면 족합니다. 바로 지금 시인이 그런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마치 목마른 사시음이 신의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왜이 시인에게 이런 갈망이 생겼겠습니까?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냉대와 조롱과 배척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인은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에게 하는 말이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요? 하오니 내 눈물이 죄하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신은 지금 극심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소회를 겪는다는 것은 무청 고통스럽죠.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요.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조차도 단절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지금네 하나님은 어디 있냐 이렇게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마저도 나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여러분 그런 경험 있으시죠? 예. 표정을 보니 저만 있나요? 그럴 때면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하죠. 눈을 감으면 수두꼭치처럼이 눈물이 그냥 쏟아집니다. 눈물은 내려오는데 밥숟가락은 올라가는이 현실에 비해감을 느낍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지금 살고 있나?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지? 가깝게 지냈던 사람도 나를 외면하고 있고 하나님마저도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너무나 암담하고 괴롭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4절 말씀 보면 성를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면서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상합니다. 애뜻한 그리움의 가슴이 미어지고 사무칠 때가 있죠. 자, 이런 상황에서 우리 영혼은 목이 마릅니다. 깊은 갈증을 느끼죠. 그리고 그 갈증을 좀 채워줄 무언가를 찾습니다. 나에게 위안이 되고 나를 만족하게 해 줄 뭔가를 반드시 찾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때 무엇을 찾으십니까? 만일이 사슴이 목이 마련하고 시내가가 아니라 바다로 달려가서 그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내가 영혼의 갈증이 생겼다고 주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찾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갈증을 해갈하겠다고. 술을 찾고 지름신을 찾고 미디어를 찾고 야동을 찾고 내 하소인을 들어줄 사람만 찾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목이 마르다고 물이 아니라 콜라나 사이다만 주구장창 들이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과는 뻔하겠죠. 이빨은 썩고 갈증만 깊어집니다. 우리 영혼의 갈증을 느낄 때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아무리 찾아서 그것을 마신다 한들 그 갈증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안 채워져요.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해갈이 되기는 커녕 더 깊은 갈증만 느끼게 될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곧 나이다. 내가 갈망하는 것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 줍니다. 내가 돈을 갈망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힘을 갈망하면 힘이 우상이죠. 사람의 인정을 갈망하면 인정이 우상입니다. 그런데 그 갈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화가 나거나 석을퍼거나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그 갈망하는 대상이 나를 종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변한다는 것은 나의 갈망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합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 변합니다. 2절 말씀대로 내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갈망하는 것이죠. 영혼의이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찾고 유튜브를 찾고 지름 신을 찾고 맛집만 찾아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골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책상 한 구석에 먼지 쌓여 있는 큐티 책을 찾는 것입니다. 목장 예배를 찾는 것입니다. 바로 그게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죠. 그런데이 재밌는 것은요. 요즘이 AI 시대가 되면서 AI를 찾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깊은 갈망 속에서 GPT를 찾습니다.이 한 목자님은이 자신의 고민을이 GPT에다 계속 물어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이 AI가 내어놓은 답변이 너무 쏠깃한 겁니다. 그래서 한걸음 더 나가서 이렇게이 프롬프트를 명령어를 입력한데 구속사적인 처방을 좀 해 달라고 이렇게 요청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이제이 AI가 이제 또 이렇게 답을 해 놨는데 계속 이게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이건 좀 아니다 싶어 가지고 그만두고 큐티를 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도이 저희 고민을 좀이 GPT에 계속 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1초도 안 걸리고 대답을 해 주더라고요. 얘는 고민도 안 하는 거 같아요. 그도 친절하게 1번 2번 3번을 쫙 이렇게 주르루 이렇게 대안을 얘기를 해 주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너무 이렇게 제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 같고 그래서 좀 이렇게 놀랍기도 하더라고요. 어 얘가 제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이제 단임 목사님의 설교를 이렇게 정리한 것을 집어넣고이 말씀으로 나에게 좀 처방을 해 달라고 좀 요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얘가 또 그렇게 해 주는 거예요. 근데 이걸 제가 계속 하다 보니까 내가 하나님께 물어야 될 것을 왜 자꾸 얘에게 지금 묻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공동체와 함께 나눠야 될 것을 내가 왜 지금 얘랑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나? 내가 지금 목사가 맞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근데 그 순간은이 GPT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건 아니다 싶어 가지고 이제 바로 접었습니다. 그 여러분, 성경 요한복음 4장을 보면 남편 다섯을 둔 사마리아 여인이 나오죠.이 여인은 사람들을 피해서 한 낮에 우물가로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이 여인의 깊은 갈망을 보시죠.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주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라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는 사람들로부터이 너의 갈망을 채우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 마셔도 목마르지 않은 그 생명의 물을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이 근본적인 갈증을 해갈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깊은 갈망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만이 나의이 깊은 갈망을 채워 주시는 것이죠. 여러분, 근데 그 갈망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서이 갈망은 절망과 허무와 무기력으로 빠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갈망은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이 모든 갈망은 주님을 향한이 기도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 갈망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 주님은 나를 만나 주시고 그 생명수로 마셔도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로 나의 갈망을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에 갈급합니까? 나는 어떤 갈망을 느끼고 있습니까? 내 마음과 영혼이 갈급할 때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자,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해서는 둘째 주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5절을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고백합니다. 자, 여러분 시인이 지금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환경이 나를 자꾸만 집어 삼키려는 그런 불안한 느낌 때문이죠.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집니다. 다윗은 사울 때문에 그랬습니다.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는이 환경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블레셋으로 들어가 버리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내의이 사라의 부림이 길어지자 어떻게 합니까? 이스마엘을 낳죠. 수제자 베드로는이 유대인들로부터 위협을 느끼자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다 이랬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도이 말씀을 보면 좀 위로가 되죠. 이들도이 환경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을 거예요. 그러니 일순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이렇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보다 환경이 더 크게 보이면 내 안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두려움과 자기 연민과 부정적인 감정이 내 안에 올라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일하고 섬겼는데 왜 주님은 나를 이런 환경에 내버려 두고 계시는 걸까? 내가 공동체를 위해서 섬겼는데 왜 나에겐 아무것도 송아지 한 말이 없는 걸까? 내 기대와 내 예상과 내 발람이 채워지지 않거나 그런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보면요. 낙심이 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보다 내가 행한 일이 더 많이 생각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나 마음은 다운됩니다. 영적인 침체가 일어나는 것이죠. 하지만 바로 그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6절 후반부를 보면 이런 우리를 향한 처방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자,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바로 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일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내가 주님을 위해서 행하신 행한 일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자, 환경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면요. 질식하려고 하면 우리는 그때부터 하나님을 오해하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주님이 나에게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기억이 나지 않고 환경에 한몰이 되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은 기억나지 않고 까맣게 잊혀지고 내가 주님을 위해 행했던 일만 기억납니다. 그러니 슬슬 자기 연민과 또 생색이 올라옵니다. 피의 의식에 가득 차죠. 내가 제일 불쌍한 거 같고 의심이 차오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블레셋으로 피하죠. 이삭이 아니라 조급함에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예수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니지만 결정적일 때 부인해 버립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모두 후회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래서 바로 그때 내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기억하는 겁니까? 6절 후반부를 보면 요단 땅단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님을 기억한다. 이렇게 오늘 시인을 고백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시절과 모든 환경과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내게 행하셨던 구원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에요. 주님께서 나에게 때마다 베푸셨던 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럼 그 기억은 어떻게 합니까? 바로 예배를 통해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배는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입니다. 내가 지체들과 함께 공예배를 드리고 목장 예배를 드리고 내가 혼자 생활 속에서 개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그게 주님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내게 행하신 구원의 일을 떠올리게 되죠. 그래서 여러분 예배야말로 나로 향하던 생각을 주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나를 향한 원심력에서 주님을 향한 구심력으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내 시선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내게 행하신 그 구원의 기억들이 다시 소환이 되는 것이죠. 그럼 어떤 기억이 소환됩니까? 7절에 보면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고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파도가 두려움에 움추어들렸던 내 온몸을 휘감고 보호해 주신 그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죠. 그래서 여러분 신앙은 기억이고 기억은 예배입니다. 8절을 보시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고난의 그 땡볕 아래 있던 그 한낮에는 주님께서 구름기둥을 드리우셔서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냉기가 흐르던 그 엄목한 그 한밤에는 불기둥을 비춰 주셨던 그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예배할 때 그 주님을 기억하는 겁니다. 지금이 아침에도 우리가 함께 예배함으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때 9절과 10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재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이까?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우리는 고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 들리신 적 있으시죠? 근데이 기도는 여러분 불신의 표현이 아닙니다. 내 모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다 토하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납니다. 내가 주님을 불신하고 깊은 낙심에 빠지면 사실 이런 기도도 내 입에서 안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은 자신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그 주님께 피합니다. 썩어지고 유한한 것들을 내 반석으로 의지하지 않고 무한한 힘과 지혜와 능력의 근원되신이 하나님을 나의 반석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엄한 사람 붙들면서 내 처지를 하소연하기보다도 술 마시면서 내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도 우상에게 피해서 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기보다도 진짜 반석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나의 모든 것을 다투하고 고백하고 쏟아놓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11절의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네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여러분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이렇습니다. 내 영혼아 더 이상 낙심하지 마라. 더 이상 불안해하지 마라. 너의 모든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도우심으로는 너의 하나님을 영원히 너는 찬송하게 될 거야.이 이 말씀인 거예요.이 말씀은 나를 향한 명령이기도 하지만요. 또 한편으로는 주님이 나를 향해 주시는 신실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낙심될 때, 불안할 때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형을 향해, 내 영혼을 향해 외치고 또 외치고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나의 자아가이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내 자가들을 때 주님께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를 도우셨고 또 앞으로도 나를 도우시고 인도해 주실 거라는 것을 내가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아프면 신약과 구약과 안약을 같이 먹으라고 하잖아요. 진짜 우리에게 오늘이 약속의 말씀이 가장 좋은 약입니다. 과거 저는 그 대학을 졸업했 졸업을 앞두고이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당시에 이제이 IMF까지 터지다 보니까 참 이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근데 이제 또 막상 내 곁에 있는 지체들은 취업도 잘되고 이렇게 잘 이렇게 풀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 이렇게 생각이 되니까 막 마음이 막 다운이 되고 낙심이 많이 됐습니다. 주위에서는 너 그렇게 열심히 뭐 교회 다니고 예수 믿고 막 이렇게 노력 하던 것 같은데 왜 넌 지금 그러고 있냐? 아 막 그런이 음속어된이 눈빛과 조롱이 이렇게 저희가 막 느껴지는 겁니다.이 어느 날에는 이렇게 몸이 아파 가지고이 백주 대낮에 이렇게 집에서이 누워 있는데 내가 도대체 지금 왜 이러고 있나 그런 자게감이 막 들더라고요.이 세상에서 제일 찌질하고 한심한 인간이 바로 저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소리가 이게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 같는 망한 인생이다. 너는 이생망이다. 소망이 없다. 끝이다. 사람들도 너를 외면하고 하나님도 너를 손절했다. 아, 이런 그 소리가 막 내 안에 울려퍼지는 겁니다. 부지런히 이렇게게 살아왔던 내 인생의 성적표가 고작 이런 건가 싶어서 마음이 더 이렇게 우울하고 낙심이 되는 겁니다. 그 지원했던 곳에 계속 떨어지다 보니까 좀 뭐라도 붙어보고 보자 싶어 가지고 그때 운전 면화를 따게 됐습니다. 근데 이런 저 이면에는 이제 세상의 성공과 사람들의 인정과 좋은 평가 이제 이런 것들이 저희 우상이더라고요. 이제 그런 것들을 제가이 목이 말랐던 겁니다. 이런 나의 목말음을 갈망을 그런 것들로 저희가 이렇게 채우고 싶은 저 모습을 좀 많이 보게 됐습니다. 그런 저에게 낙심하던 저에게 주님은 어느 날께 또 공예배를 드리던 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 예배를 드리던 가운데 내가 그분을 위해 행한 일보다 그분이 나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이게 복음이잖아요. 그리고 나의이 갈망을 주님께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늘이 말씀을 해 주신 것이죠. 정환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을 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 바로이 말씀을 나의 영혼에 선포해 주신 것이 바로 그게 주님의 나타남과 주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나 내 자아에게이 말씀을 또다시 외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나에게 외치는 것은 여러분 단순한 이것은 긍정적인 자기 암시나 주문이 아닙니다. 나의 중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이키는 믿음의 고백인 것이죠. 이후에 주님은 저를 또 가장 또 합당한 곳으로 적합한 곳으로 제 진로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직장에서 또 일하면서 또 많은 것을 또 배우게 해 주셨고 또 지경도 이렇게 넓혀 주시더라고요. 게다가 또 그곳에서 일하면서 또 신학 공부도 하게 해 주셨고 또 동시에 구호 선교 단체도 섬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정말 실수가 없으신 주님은 한치에 오차도 없이 그렇게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정말 돌아보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보다도 하나님이 저를 위해 행하신 일들이 더 크고 많고 위대하더라고요. 여러분 어떠십니까? 나는 언제 낙심하고 무엇 때문에 불안합니까? 내가 기억해야 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다시 회복해야 할 공예배, 목장 예배, 개인 예배는 무엇입니까? 자,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해서는 셋째, 큰 기쁨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40이 시편 42편에이어서 43편이 나오고 있습니다.이 두 시편이 나뉘어져 있기는 하는데요. 하지만 본래는 하나의 시편입니다. 43편 1절과 2절 보면시는 낙심과 불안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42편에서 아까 봤던 것처럼 어 그렇게 지금 어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낙심과 불안 가운데 있을 때 어떻습니까? 앞이 잘 보이지가 않죠.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이에 있습니다. 일전에 그 학교에서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딸이 제가 이제 집에서 이렇게 맞이해 주고 인사를 하는데 딸이 저를 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빠 눈을 좀 감아 보세요. 그러길래 제가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으니까 아빠 어떠세요? 깜깜한데 그러니까 딸이 이런 말 합니다. 그게 지금 저의 인생이에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시험을 망쳤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낙심될 때는이 깜깜한 어두운 터널를 걷는 것처럼 아무의 깊음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죠. 그때 여러분 필요한게 무엇입니까? 한줄기 빛십니다. 아주 희미한 빛만 있어도 길이 보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 필요한 것은 아 이게 길이 맞구나라는 확신입니다. 그에게 그 확신을 주는게 진리이죠. 그래서 어두운 터널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빛과 진리입니다. 그래서시는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여러분 주의 빛과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죠. 내 인생의 깜깜한 여정에서 비치신 하나님의 말씀. 혼란스런운 갈림길에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이 나를 가장 복된 길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때 내 안에는 낭망이 소망으로 바뀌고 불안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5절 충반부를 보면 또다시이 구절이 반복되어요.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여러분, 우리가 왜 자꾸 낙심합니까? 나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죠.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소망은 세상에 있기 때문에 두렵고 낙심하는 겁니다. 단임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내가 교만하기 때문에 낙심도 잘하는 겁니다. 여러분 소망이라는 것은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과 방식대로 나를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기다림입니다. 우린 고난을 통해서 나이 소망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지극히 세상에 있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죠. 하나님은이 흑암과 혼돈의 그 시간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나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나의 소망을 다시금 하나님께로 맞추어 주십니다. 교정해 주십니다. 바로 그게 삼위 하나님의 창조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내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어 주시니까 내 감정도 바뀌는 것입니다. 바로 그게 진정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마십시오. 감정은요. 나의 믿음과 관점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여러분 차를 타고 가는데요. 옆차가 깜빡이도 안 켜고 내 앞으로 갑자기 확 끼어들었어요. 그럼 어떻습니까? 화가 나죠. 한마디 하고 싶어서 창문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 차도 창문을 내립니다. 그런데 악불사 조폭들이 타고 있는 겁니다. 그럼 얼른 창문을 올리게 되죠. 내 감정이 어떻게 바뀝니까? 분노가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바뀝니다. 경계로 바뀝니다. 그래서 여러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내 감정도 금방 바뀌게 되는 겁니다. 우리 감정은 내가 판단하는 것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이 포로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비록 낙심이 되고 우울하고 두렵더라도 그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마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될 타이밍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불안해하는 내 자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외치는 것이에요. 공예배와 목장 예배 때마다 그것을 나누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감정은 얼마든지 바뀌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그런 질적인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뻐해야 될 기뻐할 상황이 아닌데 구원의 기쁨이 내 안에 샘솟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소망이 절망을 이겨내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이 소울 서퍼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그 보신 분이 아마 있으실 것 같은데이 실화를 어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서 더 인상깊게 봤습니다.이 주인공이이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인데요.이 이 13살 때이 바다에서 어 상어에게이 팔을 물려서이 왼팔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팔이 없는 상실감이 크다 보니까음 서퍼를 어 파도타는 것을 이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이 주의 가족들과이 지체들의 도움으로 다시 파도를 타기 시작합니다. 결국에는이 프로서퍼로 데비하게 되고 또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우승을 하게 되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어 예수님이 나를 도와주셨다는 그 소감을 당당히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나라에 가서는 또 아이들에게 또 희망을 전하는이 봉사 활동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이 끝에는 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한 팔을 잃게 되었지만 두 팔로 앉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안게 되었다라고 이렇게 고백하더라고요. 그리고이 영화가 끝이 나는데이 보통 이게 영화가 끝나면 영화 이렇게 중간에 the 이러고 끝나잖아요. 근데이 영화는 the라는이 자막이 나오고 곧디어 다음 화면에서 the end is just beginning 이런 자막이 나오더라고요. 우리말로 하면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라는 것이죠. 마지막에 그 자막을 보는데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한쪽 팔을 잃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그 자리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것이죠.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끝에서 하나님은 거기서 새로운 시작을 하시는 겁니다. 내 영혼이 낭망하고 불안해하는 그 재앙의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소망이 움투고 피어난 구원의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시인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탄식하면서 고백하죠. 그런데 여러분이 고백을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 아닙니까? 그분이 십자가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으시면서 하나님으로부터도 내가 버림받았다는 단절감을 겪으셨죠. 그런데 바로 그 자리가 나의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는 나를 떠나지 않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바로 그것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신적인 육체적인 영적인 극한의 고통을 당하심으로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이 이 단절를 겪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만일 오늘 내가 절망하고 낙심하고 불안 가운데 있다면 그 혼돈과 공화 흑암의 그 깊은 자리에서도 삼위 하나님은 나를 향한 창조의 사역을 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고난 당하는 그 순간이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내 소망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창조의 시간인 것이죠.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우리 주님은 오늘이 시편 기자처럼 오늘 나의 탄식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내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과 내 곁에 있는 지체들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적용 질문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합니까?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까? 세상에 있습니까?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험한 세상을 살다 보니 제 영혼이 갈급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에 대해서 실망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심지어 주님마저도 저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눈물이 죄하로 음식이 될 정도로 탄식만 흘러나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저를 볼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갈급함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내 모든 환경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밤낮으로 주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그 주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그래서 오늘도 내 영혼을 향해 외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주님을 찬송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오늘이 하루도 빛과 진리의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옵시고 주님의 기쁨이 저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이 땅의 겉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겠습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도 내 삶에 나타나 도우심으로 주님만을 여전히 찬송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이 이 시간 우리 함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의 식구들이 헛된 것을 찾아 헤매기보다도 우리 주님만을 찾기에 갈급하기를 기도하십시다. 우리 모든 가정의 갈급함이 주님을 향한 기도로 바뀌어지기를 기도하십시다. 낙심하고 불하는 불안해하는 우리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인생의 소망을이 땅의 것에 두기보다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가정이 되게 해주시길 기도합시다. 빛과 진리인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와 배우자, 부모, 형제들을 구원해 주시고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게 해 주시길 간구합시다. 하나님 우리 가정이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므로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 주시옵소서. 마셔도 목마르지 않는 주님의 생명수를 경험하게 해 주시옵소서.이 이 시간 우리 주여 한번 부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 기도하고 우리 가정을 위하여서 함께 아버지 저와 우리 가정의 모든 식구들에 갈급하는 하나님 아버지 정말 갈증이 주님을 향한으로 이어지도록 주시옵서 때로는 심하고 때로는 불안해하고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 가는 모습 하나님 한 보다도 하나님 환경에 하나님 하 상황에 리고 그래서 그 어떻게 나에게 한 마리 하고 하나님 아버지 하고 식하며 하나님 절망했던 나의 한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 권함을 주님께서 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저의 하나 갈망이 아버지 저런 불안함을 저희 탄식을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채워주시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갈망을 우리 또 하루 가정의 갈망을 주님께서 채워 주시고 하나님 우리 모든 가정이 주님께 하 소망을으로 우리 영혼의 갈급함을 주님 채워 주시옵소서 주님 마시지 않 주님의 생명 주시옵서 헛된 것같 향해 우리 목음 채우게 하기보다도 그 헛된 것들을 마심으로 말미암 영혼의 깊은 갈 우리가 오 주님만 주님을 믿지 않면서 나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서 모든 채워주시 주여주님 도시이어서 우리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와 공동체 지체들이 빛과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도록 기도하십시다. 우리 목장의 공동체 지체들이 정말이 모든 갈증이 정말 이렇게 주님을 향한 기도로 바뀌어지기를 기도하십시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준비 중인 국내의 모든 띵끝 입에 참여하는 모든 지체들에게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시고 모든 팀이 하나로 연합하여 주님의 기쁨으로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또 진행 중인 모든 목회자 양육 가운데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이 큐티 목회 DNA가 국내 교회 구석구석에 전해지게 해 주시길 또 허브 교회들이 영혼의 도피성 역할을 감당하게 해 주시길 기도하십시다. 또 현재 필리핀에서 사역 중이신 다임 목사님의 영육을 붙들어 주시고 강건케 하사이 구석사의 말씀이 강에서 바다로 흘러나가고 한 영혼이 살아나고 한 가정이 중수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우리 주 한번 부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 교회 하여 기도합니다. 공동를 목장을 우리 교회를 주께서 붙들어 주시옵서 하나님 공동 목사님 정말과의 말씀으로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 상을 쫓아 하나 그것들로 내 영혼이 급함을 채우하지 않게 하여기과의 말씀 하나님 앞에 그 말씀을 못들의 든과 같이는 하나 은혜가 있게 하여주게 하여 주시옵서 우리 모든 목장 공동 지체들이 주의 말씀으로 충만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서 아버지 지금 되고 있는 모든 것들 주님께서 하여 주시옵서 하나님의 큰 기쁨이 하나 구원이 하나님 아버지 체들 하여 주시옵서 하나님 주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모든 하들에게 어주시고 만나는 혼들 하주 팀 하나도록 생명 하나님 아버지 모든 목자들기를 하께주시 하나님 하여 주옵시고 교회들이 영어주시고에서 사주신 님의 영을 주님께서 붙들어주시고 강케 하여 주시옵서 사의 말씀이 강하도록 흘러나가게 하여 주시옵서 목마른 영혼들마다 갈 영혼들마다이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하여 주옵시고 한 가정이 중되고 교회가 중되는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시옵서 계속해서 우리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제이 나라가 새로운 또 정부가 세워졌는데이 나라가 정쟁을 그치고 정파와 이념 갈등과 계층 갈등과 남녀 갈등, 빈부 갈등, 지역 갈등을 멈추고 모든 국민들이 이제 한 마음으로 연합하고 무너진 경제와 민생이 회복되게 해주시길 간구하십시다. 새롭게 세워진 정보와 위정자들이 정말이 히스기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하고 오늘이 다윗처럼 주님 앞에 탄식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지도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도 하십시다. 회파된 성도덕과 왜곡되고 타락한 가치관이 복음으로 치유되고 깨어질 위기에 있는이 가정들이 중수되게 해 주시길 기도하십시다.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차별 금지법을 비롯한 악법은 막아지고 한 영혼을 구원해 주신 그 생명 보호법이 제정되게 해주시길 우리 주 한번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나를 위하여 함께 아버지이 나라가 정말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아버지 정말 분열과 갈등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 아버지 혼란의 시간들을 우리가 지나고 이제 하나님 새로운 시간들 우리가 맞이하고 있지 아버지 하나님이 나라가 정말 정쟁을 시게 하여 주시고 정파와이 갈등이 멈춰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갈등이 멈춰지게 하여 주시 빈부등 지역 갈등이 멈춰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날 한 마음으로 연합하게 하여 주시옵서으로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서이 나라의 무너 무너치 주시옵 아버지 정말 다처럼 하나님을 기도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 앞에 탄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길을 기는 정자 지도자들이 다되게 하여 주시옵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들 다되게 하여 주시옵서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정말이 지도자들 속에서 정말 이렇게 참을 금지법 망시게 하여 주옵시고 한 영으로도 구원하는 생명복급이 제정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 창조사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지켜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되 하여주서 아버지 깨어진 위기의 가정들을 중하여 주시옵소서이 나라의 가치관을 다시 하나님 앞에 치유하여 주옵시고 하나님 아버 성도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회복되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여이 나라를 다시금 새롭게 고쳐 주시고 치유하여 주시고 무너진 성도에게 다시금 중수되던 역사가이 나라 가운데 일어날 수 있도록 주여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국민들이 회복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인도하여 주시옵서 우리 끝으로 이제 질병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병상에 있는 지체들을 안수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길 기도하십시다. 각종 암과 난치병, 루게릭병, 파키슨 시병, 디스크 등 육체적인 각종 질병과 조염병, 우울증, 공항장애 조울증 등 정신적인 질병으로 투병하는 지체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고통을 감해 주시길 기도하십시다. 감병하는 식구들에게는 새 힘을 주시고 말씀으로 또이 모든 환경들을 해석받게 해 주시길 기도하십시다. 중독에 사로잡혀 있는 지체들에게는이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부린 부에게는 새 생명을 허락해 주시고 실직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가정에게는 필요한 영육의 양식을 채워 주시길 기도하십시다. 고난 중에 있는 지체들이 정말 낙심하지 않고 오늘이 시편의 기도처럼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므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시간 주에 한번 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다시 한번 우리 주님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상들 주님께서 아버지 주님 아버지 주시옵서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서 아버지 하나님과 치과 병 불을고 있는 체대를 주님께서 안수하여 주시옵서 주의 로 하버 안 하여 주시고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고통이 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주시기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과 공장과 정신적인 질병으로 주님 회복시켜 주시옵서 하나님 아버지 모든 고통을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고 하나님 안 주하여 주시 간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하는 하나님 아버지들에게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서 아버지 하나님 말씀으로 속는 하나님 은혜 허락하여 주시옵서 중독 중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시고 부부에게는 새생을 허락하여 주시버는 중심 하을 하여주서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영원히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서 우리 모든 한숨이 기도로 바뀌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의 모든 절망이 하나님 아버지 낭망이 소망으로 바뀌어져서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며 그 주님의 은혜를 하나님 아버지 갈구하며 주께서 우리를 회에서 행하신 그 구원의 기억들이 다시금 하나님 떠오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서. 하나님 아버지 사슴이 시내모를 찾기에 갈급함 같이 오늘이 아침 나의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으로 낙심되고 불안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보다이 세상에 있다 보니 마음이 상하고 짓눌 누릴 때가 늘 있습니다. 이런 저희를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오늘도 주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나의 소망을 주님께만 두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정신적인 육적인 질병으로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지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찾아가 주시옵소서. 영적인 깊은 침체로 슬픔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방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나의 영혼이 낙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빛과 진리의 말씀으로 나의 길을 비춰 주옵시고 큰 기쁨이 하나님께 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나를 수렁해서 건져 주옵시고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각종 암과 난지병 불지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을 굽어 살피사 고통을 감해 주시고 치유하여 주옵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울과 조울과 공황 등 정신적인 질병으로 힘겨운 나를 보내는 분들을 어 만져 주시옵소서. 중독에 사로잡혀 있는 지체들에겐 주님께서 자유케 하여 주시옵소서. 부린 부부에게는 새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실직과 경제적인 곤과함에 있는 지체들에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시옵소서. 영육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주님 하늘문을 열어 주옵시고 하나님 아버지 정말 이렇게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번 여러분 띵크 트립을 통해서이 우리들 공동체가이 구원의 소망을 국내 곳곳으로 세계 전역으로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필리핀에서 말씀 증거하시는 단임 목사님의 영역을 붙들어 주시고 강건케 하사 한 영혼과 가정 교회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국민들을 섬기게 하여 주옵시고 오늘이 기도를 드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조 질서를 거스는 악법은 막아 주옵시고 새 생명을 살리는 법이 재정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이 모든 건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계속해서 각자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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