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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날짜: 2025.08.10 > 제목: 여호와 앞에 앉아서 > 본문: 사사기 20:18-28 > 설교: 이성훈 목사 > > 18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 19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 20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 21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 22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 23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 24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 25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 26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 2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 28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 > > ▣ 유튜브에서 설교 중간에 나오는 광고는 교회와는 아무 연관이 없으며, > 우리들교회는 영상에 광고를 넣지 않습니다. > > 사사기 마지막 에피소드를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데요. 어제까지 주인공은 그 타락한 레위인이었잖아요.이 사람은 레위인이면서 첩도 드리고 그리고 또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그 첩을이 기부아의 불량배들한테 그냥 넘겨 버립니다. 그래서 불량배들한테 끔찍한 일을 당하고이 첩이 죽자이 레위인은 또이 첩의 시체를 12조각을 내서 전국에 다 보내는 그런 엽기적인이 일을 저지르고 말아요.이 일에 선동되어서 이스라엘 지파와 그 베냐민 지파 사이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내전이 발발합니다. 그러고서는이 레위인은요. 역사의 무대에서 슬쩍 사라져 버려요. 오늘 본문부터이 레위인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사 시대는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서 그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면서 그 땅을 잘 가꾸면서 살아야 하는 그러한 사명을 가진 시대였어요. 그러나 오히려이 시대가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은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급기야이 동족 상잔까지 행하고 맙니다. 사사기 최대의 전쟁은요. 이방인을 향한 전쟁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는 내전이었어요. 이런 역설적인 역사는 우리에게 오늘 분명히 보여줍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데도 내 왕 없다고 불평하면서 자기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하는 그 우리 인간의 삶의 결론이라는 것은 결국에 점점 더 비참한 타락일 뿐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사사기를 통해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건 오늘 우리 현실의 거울이기도 해요. 사사기 전체의 교훈은요. 이렇게 끔찍한 아무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이제 사사기 전체의 교훈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여호와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답이 있을 때는 아닙니다. 답이 있을 때는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없어요. 18절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베델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울이 있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지파가 베냐민 지파 치러 가기 전에 하나님께 묻는데요. 이것은 사사기 첫 장면을 떠올리죠. 1장 1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울까요? 이렇게 물어봤잖아요. 그랬더니 2절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유다가 올라가라. 이렇게 답을 하셨단 말이죠. 그때나 지금이나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잘 물어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19절부터 21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부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녀를 갖추고 기부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함매 베냐민 자손이 기부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22명을 땅에 엎드려들었으나 전투 결과는 대참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데 40만 명 중에 무려 22,000명이 전사했어요. 40만대 베냐민 26,700명의 싸움이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숫자로 치면 그 당신 좋은 무기도 없잖아요. 무조건 사람끼리 싸우는 거란 말이죠. 숫자로 치면 이스라엘은 질 수도 없었고 지면은 안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이 전사들이 처음에 전쟁에 나가면서 얼마나 자신 만만 했겠어요. 게다가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답도 얻고 또 시키는 대로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니까이 싸움은 당연히 이겨야 되는 싸움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은 확신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이 패배를 당해서 후퇴해야만 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은이 패배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외쳤을 거예요. 그러면서 불평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잘못은 기부화 사람들이 한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 기부아 사람들을 두둔한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두둔한 그 베냐민 족속이 잘못한 것인데 그렇다면 당연히이 전쟁도 잘못한 사람이 패배를 해야 되는 것인데 지금 심판자 역할을 하는 자기들이 지금 패배를 했으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이 불만과이 억울함과이 분노가 사인이에요. 무슨 사인이냐? 문제는 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그 표시입니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불평하고 이런 것들은 다 서로 다른 감정이잖아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뿌리는 한 가지입니다. 나의 옳음이 틀림 취급을 받을 때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이 틀렸다고 평가를 받을 때 내가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불평하는 거예요. 내가 확신했던 정답을 오답이라고 하니까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부아에서 일어난이 극악 무도한 범죄에 대해서 이스라엘 자손은 확실한 해결책을 마련했어요. 그 범위는 그 끔찍한 범 악행을 저지른 범위은 처형해야 된다. 그리고 그 악행 분량자들을 두둔하는이 베냐민 사람들도 벌을 받아야 된다. 이것을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서 기부아를 공격하기로 결정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그들에겐 정당한 전쟁이고이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지키는 거룩한 전쟁 선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 물어본 것은 바로 이런 결정 다음이에요. 전쟁하기로 자기들끼리 다 결정해 놓고서 딱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뭐예요? 누가 먼저 공격할까요? 누가 선봉에 설까요?이 중요한 질문 같지만 사실은 뭐 누가 먼저 공격해도 큰 차이가 생기지 않는 사소한 일입니다. 가령 이런 거예요. 자녀가 결혼할 사람, 또 결혼할 장소, 결혼하고 나서 살 집 자기들끼리 다 결정해 놓고서 부모님을 찾아옵니다. 엄마, 아빠, 나 결혼하해야 돼요.이 사람한거 할 거고 어, 어디서 할 거고 결혼한 다음에 어디서 할 거예요? 자,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게요. 결혼을 몇 날 며칠에 하면 좋을까요? 결혼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잖아요. 특별히 누구랑 하느냐가 너무 중요하잖아요. 우리 다 신결혼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이 중요한 것들은 자기들끼리 다 결정해서 답을 정해 놓고서는 부모님에게 찾아와서 몇 날 몇 날 며칠 몇 시에 할까요?이 이 사소한 것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부모님께 물어봤다. 부모님 허락 다 받았다.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요. 하나님께 보다 중요하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질문해야만 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겠죠. 하나님 저 기부와 사람들이 정말 입에 담지도 못할만큼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 베냐민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이유로 저들을 두둔하면서 모든 형제의 지파들을 다 대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물어봤어야 됐을 거예요.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가운데 이렇게 끔찍한 일이 생겼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 회개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이 이 근본적이고이 중요한 질문을 하나님께 물어봤어야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것들 다 자기들이 알아서 다 결정해 놓고 답을 다 정해 놓고 사소한 문제만 지금 하나님께 엿줍는 거예요. 이것은요 진짜로 하나님께 물어보는 태도가 아닌 것이죠. 그냥 구생만 맞추는 것이고 신용만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께 질문 질문하는 그 척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기들 앞에 앉혀 놓는이 거만한 선택인 거예요. 이런 거만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사실은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뭐예요?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는 사람이라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라는 증거 아니겠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택자라면 이런 거만한 싸움에서는지는 것이 맞습니다. 패배해야만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패배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 정한 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 있게 있게 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귀기울이지 않아요. 내가 이미 답을 다 갖고 있으니 내 가족이건 내 친구건 주변의 사람이건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내 답에 대해서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면 된다라는이 생각이 저절로 우리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목사가 꿈이었고 교회 바깥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때 그러한 삶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앉아 있었던 것인가 물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은 전부 다 제 스스로 혼자서 다 결정을 해 놓고 답을 다 정해 놓고 그저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저는 시험 때마다 하나님 목사가 되기로 했는데 당연히 공부 좀 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당연히 도와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기도하면서 제가 공부 공부하고 학교 가고 이런 거 저 혼자서 다 결정했습니다. 그런데요. 이것이 하나님을 제가 무시해서 그런 거라면 회개하기가 조금 더 쉬웠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정말로 하나님을 무시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저라도 하나님 속을 썩이지 말고 열심히 잘해 드려야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듣느라고 너무 바쁘신데 어떻게 나까지 하나님의 어깨를 무겁게 해 드릴 수 있겠는가? 나라도 잘해서 도와드려야 될 거 아닌가? 너무 거만하죠. 그래서 저는 학교와 전공과 심지어 사역지와 심지어 인정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그 결혼조차 저 혼자 알아서 다 결정하고 답을 가지고 그렇게 밀어붙였습니다. 여호와 앞에 앉아서 간절히 묻지 않았어요. 제가 학교에서는 그래도 답을 좀 잘 맞췄잖아요. 여러분 수학 주관식 찍어서 맞출 수 있는 분들이 여기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정수가 아니라 분수가 답이었는데 그거 찍어서 맞출 분 계세요? 제가 언젠간 말씀드렸지만 저는 3분의을 찍었는데 맞았습니다. 그것도 수숫자로 계산하는 산술 문제가 아니라 도형을 계산해서 부는 기하 문제였어요. 여러분 기하 문제에서 38이라는 답이 나올 확률이 며나 될 거 같으세요? 제가 그걸 맞췄다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답을 좀 맞추다 보니까 점점 제가 착각에 빠지더라고요. 내가 답을 한다. 내가 제일 잘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요한 결혼도 처음 아내를 소개팅으로 만난 그날 저 혼자 답을 내렸습니다.이 사람과 결혼해야 되겠다. 이미 결혼을 결혼하기 하는 것이 답이 됐으면 그 이후에 모든 과정과 시간과 에너지는 저한테는 다 낭비인 것이죠. 왜냐? 정답이니까. 그냥 오늘 결정했으면 내일 해도 되는 거예요. 왜냐? 답이니까. 그래서 저는 막 서둘렀어요. 그런데 그 길지 않은 석달밖에 연애를 안 했거든요. 얼마나 밀어붙였으면. 석달 동안 사실은 주변에 가까운 분들이 가족들이 처가에서도 그렇고 저희 본가에서도 그렇고 다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왜냐? 저를 알고 아내를 아는 분들은 보이는 것이죠. 아이 두 사람이 결혼하면 너무 힘힘들겠구나. 너무 많은 값을 치어야겠구나. 그리고 실제로 우리 두 사람이 연애할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징조를 계속해서 주셨습니다. 아니다. 힘들다 하지 마라. 신조를 계속 주셨는데 저는 답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제 안에 있는 것이죠. 제가 답을 가지고 있으니 그 주변 사람들의 말도 다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징조도 다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치어야 될 값은 너무도 무거운 것이었어요. 제가 맘대로 결정한이 결혼이 제 뜻대로 술 풀렸다면 아내가 제가 예상한 대로 잘 움직여 주었다면 제가 원하는 대로 가정 생활이 다 이루어졌다면 저는 지금쯤 가장 잘돼 봐야 안 됐으면이 세상에 없었을 것 같고요. 가장 잘돼 봐야 여러분 인생은 참 행복한 겁니다. 이렇게 떠들고 다녔을 거예요.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이렇게 거만하고 교만하고이 자격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로 택해 주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에이 결혼을 통해서 큰 패배를 당하게 하시고 또 그 밖에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또 사역의 현장에서 크고 작은 실패와이 좌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맞다고 여기던 그 답들이이 오답이고 이제는 그 제가 생각한 그 답이 아니라 100% 오르신 하나님의 뜻대로 저의이 가정과 또 사역도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게 하신다고이 고백합니다. 여러분, 지금 절대로 틀림 없다고 확신하는 그 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 혹시 계십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앉기보다는 하나님을 여러분 앞에 앉혀 놓고서 하나님 이건 이렇잖아요. 저건 저렇잖아요. 이게 맞잖아요. 이러면서 하나님을 판단하고 계시는 분 혹시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 그 답을 잠시 괄호 안에 넣어 두시고 하나님께 물어보십시다. 큐티하시면서 말씀으로 물어보시고 또 목장에 물어보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내 앞에 앉치려는이 거만함,이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내 인생에 답이 될 것 같아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상과 달리 당한 그 실패나 패배가 있습니까? 그것이 이해가 안 됩니까? 아니면 이제는 이해가 잘 되십니까?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답이 있을 때는 아니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또 힘이 있을 때도 아닙니다. 22절 23절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내어 첫날 전녀를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녀를 갖추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큰 패배를 당했지만 곧 스스로 용기를내어 회복합니다.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요. 스스로 강하게 했다. 스스로 힘을 냈다는 뜻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22,명이나 죽었지만 아직 몇 명이 남았어요? 37만8,명이 남았습니다. 26,700명에 불과한 베냐민 군대보다 아직도 무려 14배나 많은 군대가 나의 손에 있는 거예요. 아무리 크게 졌어도 여전히 압도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패배쯤은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이 사람들은 지금 엄청난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같은 장소에 가서 다시 그곳에서 그곳에다가 전혀를 갖춥니다. 싸울 준비하는 거예요.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한 번 졌지 내가 두 번은지지 않는다라는이 자신감과 오기가 있는 거예요. 여호와 앞에 올라가는 것은요. 또 이번에도 그다음입니다. 이렇게 싸울 준비 다 해 놓고 전녀를 다 갖춰 놓은 다음에 비로서 여호와 앞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날이 저물도록 울었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회개의 눈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회복하고 극복할 힘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앞에 하루 종일 앉아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흘리는 눈물은 인정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이 패배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분노와 서로움의 눈물이에요. 애통한 눈물이 아니라 비장한 눈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비장하게 물어요.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까 싸우리이까? 싸우겠다는 뜻이죠. 첫 번째 질문에서 묻지 않았던이 싸우게 싸워야 됩니까? 싸워 싸울 거 싸울까요?이 질문을 지금 물어본 것 같지만 물어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만약에 정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저희가 싸울까요? 싸우는게 맞습니까라는 것을 물어보려 했다면 패배하자마자 같은 곳에 가서이이 전녀를 갖췄겠습니까? 싸울 준비를 했었겠어요? 패배한 채로 하나님께 그대로 나와서 물어봤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싸울 준비 다 해 놓고 그 후에야 하나님 앞에 와서 다시 싸울까요? 묻는 것은요. 정말 몰라서 묻는게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 우리는 다시 싸울 거예요. 아직 우리는 37만8천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우리 다시 도적할 거예요. 우리가 하던 대로 계속 할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여기다 사인만 하세요. 결정은 우리가 다 했고 우리가 생각한게 맞으니까 하나님 여기에 그냥 동의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나님께 지금 요청을 하는 것이죠.이 이에 하나님은 이번에도 올라가서 치라 간단하게 답하시는데요. 앞서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질문의 수준에 딱 맞는 답을 지금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AI 쓰실 때도 보자 보지 않습니까? 질문한만큼만 답이 나오거든요. AI가 그런데 그리고 여러분 마 자식 키울 때도 마찬가지 자식이 물어본만큼 답을 해 주잖아요. 그런데 하나 우리 하나님 얼마나 더 그러시겠어요? 우리가 간절히 묻는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만큼 우리가 큐티로 주님의 뜻을 묻는만큼 하나님께서 거기에 맞는 답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질문이 딱이 수준이니까 하나님 올라가서 치라. 번역하면 너네 맘대로 해. 너네가 원하는 대로 해 봐. 이렇게 그냥 허락하시는 것이죠. 질문 아닌 질문에 답 아닌 답을 주실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24절 25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부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18천명을 땅에 엎들어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스라엘은 전사 18,명을 또다시 잃어버립니다. 이번에는 조금 힘이 빠졌을 것 같아요. 왜냐면 두 차례 다 예상하지 못했던 계산하지 않았던 패배를 당한 것 아니에요. 그것도 엄청난 패배를 당했잖아요. 그래서 이제 40만 명 중에 4만 명이 없어져 버렸어요. 10%를 그냥 날려 버린 겁니다. 피해를 감수할 힘이 남았다고 자신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구하지 않은 그 악에 대한이 결론인 것이죠. 우리는 잘못된 길에서 결코 스스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힘이 있을수록 더 자기가 가던 길에서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힘이 좀 빠져야 그나마 두려운게 생기고 그나마 눈치 볼게 생겨서 내가 열심히 가던 길에서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멈췄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에게는 힘이 빠지는 그 엄청난 힘든 고난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힘빠지는 사건이 올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더 빠지지 않으려고 막 용을 쓰면서 남기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고 막 몸부림을 쳐야 될까요? 물론 그래야 될 때도 있겠지만 정말 이것이 나의 악을 보게 하시고 나의 육을 무너뜨리셔서 영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면 힘 빠지는 사건이 올 때 그냥 힘을 더 빼야 되겠습니다. 주님 앞에 자리를 딱 잡고 주님 앞에서만 앉아 계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내가 의지하는 세상적 힘은 무엇입니까? 실패했는데도 스스로 용기를내어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무엇인지 한번 나눠 보시고요. 힘이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머무르다가 오히려 누리게 된 은혜의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예, 답이 있을 때는 앉을 수가 없어요. 답이 있을 땐 아니고요. 두 번째 힘이 있을 때도 아닙니다. 참 우리 인생에 답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하지만요. 그게 우리를 살려 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울며 회개할 때 앉을 수가 있는 거예요. 26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베들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세 번째로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데요. 이번에는 특이한 점이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갔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앞에 두 경우는 온 모든 이런 말 없어요.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지금까지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올라간게 아니에요. 올라가고 싶은 사람 올라가고 올라가기 싫은 사람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아마 이렇게 광고를 했던 거 같습니다. 1부만 올라갔어요. 여기서 딱 드러나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떤지 영적인 상태가 어떤지 딱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들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어요. 왜요? 답이 있으니까. 아직 답이 있잖아요. 왜요? 힘이 있으니까. 남아 있는 힘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내가 반드시 올라가야 되겠다. 그러한 간절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이 답이 정답이라고 믿었던 자기들이 세운이 답이 무효 처리되고 또 자기들이 의지하던이 40만 명이나 되는이 힘이 제거되는 것을 보니까 이제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서야 멋대로 결정하는 것 또 맘대로 준비하던 것을 멈춰요. 그리고는 모두가 온 백성 모두가 그저 하나님 앞으로 올라옵니다. 패배하고 실패한 모습 그대로 모든 수치를 아는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자 드디어이 회개의 울음을 터뜨립니다. 앞에서도 울긴 울었죠. 자. 그런데 이건 자기 연민의 눈물이었어요.이 자기 연민의 눈물 서로움의 눈물을 흘릴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울면서 하나님한테 동시에 물어봤어요. 다시 싸울까요? 엉엉 울면서 하나님 다시 싸울까요?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 이거 다시 싸워야 되는 일 아니에요? 하나님 그러니까이기 이기게 해 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께 요구하고 때를 썼습니다. 하지만 삶이 다 무너져서 이제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니까 그제서야 내 죄가 내 잘못이 보이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하고 그러니까 나 같은 죄인을 그래도 하나님께서 오게 해 주시고 그 베델에 내가 그래도 앉을 자리를 남겨 두시고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빼지 않고 그냥 기다려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 하고 감격해서 울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의 눈물을 흘리니 어떻게 합니까? 더 이상 조르지 않아요.이 우리가 읽은이 세 번째 장면에 보면 날이 세도록 다 울고 어떻게해요? 앞에처럼 물어보는게 아니라 앉아 있어요. 하나님 앞에 그냥 앉아 있는 거예요. 울면서 날이 세도록 앉아 있는 것입니다. 말없이 앉아 있는 거예요. 앉는다는 것은요. 가던 길 멈춰야죠. 그래야 앉을 수 있는 거잖아요. 가던 길 멈추는 거예요. 하던 일 멈추는 거예요. 그리고 아무데나 앉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그 자리 위에 정해진 그 의자에 우리 세례 받을 때도 정해진 자리 방석이 있잖아요. 정해진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이 않는 것입니다. 내 답 주장하던 일을 멈추고 또 내 힘 행사하던 것을 멈추고 주님 말씀해 주세요. 듣겠습니다. 이렇게 주님 말씀 들으려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거예요. 먹는 것조차 끊고 금식하잖아요. 이건 굉장한 표현인데 무엇이냐면 우리 생 생명을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이 먹는 것조차 내가 하나님 앞에서 멈추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겠다는이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렇게 하니까 예배가 회복되는 거예요. 번제와 화목죄를 여호와 앞에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사기 처음부터 끝까지이 시간이 대략 한 350년 정도 됩니다.이 350년의 사사 시대가 이어지는 동안요. 이스라엘 백성이 수많은 압박과 압재와 폭력을 당하면서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 앞에 이렇게 전적으로 울면서 회개하면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은 사실 여기가 유일한 경우예요. 그게 그렇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은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회개와 예배가 없으면 멀쩡해 보이는 우리의 삶도이 사사 시대처럼 영적인 아암흑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겨우겨우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자 어떤 변화가 생겨요? 질문이 바뀝니다. 질문이 바뀌는 거예요. 27절, 28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가 거기 있고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아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주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울이까 말리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내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는지라. 싸울지 말지에 대해서 첫 번째 답이 자기들이 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어요. 두 번째 자기들의 힘이 있을 때는 어떻게 물어봤습니까? 나 싸울까요? 싸울까요? 하나님께 결제만 요구했어요. 요청했습니다.이 통보했어요. 그런데 이제 울면서 회개하니까 어떻게 물어봐요? 사울리까? 말리이까?이 말리까?이 이 말리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말리까. 멈출까요?이 뜻이에요. 멈출까요? 계속해서 싸울까요? 아니면 멈출까요? 두 번째는 멈출까요? 질문하지 않았어요. 왜요? 멈출 생각 없거든요. 그러나 이렇게 다 무너져서 육이 다 무너지는 그 참패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예배를 회복하니까 하나님께 질문이 바뀌는데 싸울까요? 내 답을 하나님께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싸우는게 맞을까요? 아니면 여기서 멈추는게 맞을까요? 말리까?이 말리가 너무 중요해요. 여러분, 우리는 할까요라는 질문은 그래도 우리가 말씀 묵상하는이 큐티인들이시니까 여러분들이 적용을 늘 생각하잖아요. 하나님 남편에게 제가 어떻게 할까요? 이것을 할까요? 자식에게 이렇게 할까요? 부모에게 이렇게 할까요? 교회 사역에서 이렇게 할까요? 이런 질문은 사실 우리가 던지는게 익숙해요. 그렇죠? 그러나 정말 하나를 더 생각해야 되는 질문은요. 하나님, 지금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충성스럽게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이거 하나님 계속하는게 맞을까요? 멈춰야 되는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 어떻게 인도하시는게 저에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이거 사실 물어보는 것은요. 잘 되지 않더라고요. 특히 저 같은 사역자는 저희가 하는 일이 다이 사실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멈출까요라는 것을 생각을 잘 하게 되지 않더라고. 그런데 오늘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이 구절을 보니까 말리까이 질문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하다가도 거기에 내 야망이 들어가고 거기에 내 욕심이 들어가고 거기에 내 정욕이 깔리고 정말 죄 공장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요 날마다 정말로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새로서 하나님 할까요, 말까요? 하리까, 말리까?이 질문을 계속 좀 던져 봐야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번 주만이라도 여러분 저도 할테니까 말리까 질문을 하시면서 큐티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질문을 이제 제대로 하자. 하나님의 뜻에 맡기자. 그러자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답을 하나님께 맡기니까 하나님도 이제 진짜 답을 주시는 것이죠. 자, 그런데 여러분,이 엽기적인 사건이 사사이 맨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단 말이죠. 19장부터 21장까지 지금이이 엄청이 엽기적인 사건이잖아요. 그렇다면이 사사 시대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왜냐면 쭉 역사 순서대로 지금 진행이 돼 왔잖아요. 암흑기에 죄악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니까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나고 결국 내전으로 이어 이어졌다. 우리 이렇게 그냥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어요. 이때 이때이 언약계 앞에서 언약계를 지키고 있던 제사장이 누구예요? 비느하스예요. 비느하스가 누구입니까? 아론의 증손자예요. 여러분 증손자라고 하니까 아 뭐 한참 지난 사람이겠구나라고 생각을 하는데요.이 비느아스가 민수기에도 나옵니다. 모세의 얼굴을 본 사람이에요. 여호수아의 얼굴도 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거 이것의 뜻이 무엇이냐? 지금이 사건은 사사 시대에 말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사사 시대 초기에 첫 사사인 온니엘이 세워질 그 무렵에 굉장히 초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와이 동족 상잔의 내전이 사사 시대 한참 뒤가 아니라 초반에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바로 앞에 있던 17장 18장 여러분 기억하시죠? 그 타락한 레위인. 돈만 따라가는 그 욕심쟁이 레위인. 연봉 협상의 달인.이 사람 누군지 아십니까? 18장 30절에 하나님께서 딱 정체를 밝혀 놓으셨어요.이 기가 막힌 레위인의 정체가 누군지 아세요? 그날 큐티 잘하신 분 계신가요? 누구예요?이 사람이?이 이 사람이 그때 모세의 증손자라니까요. 지금이 엄청난 사사기의 대미를 장식하는이 말도 안 되는 타락의 사건에 중심에 누가 있느냐? 그냥 레위인도 아니고 레위인 중에 레위인 레위인 중에 가장 선골인 모세의 증손자와 아론의 증손자가이 엄청난 사건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말일까요?이 뜻이 무엇일까요? 예외가 없다는 겁니다. 장담할 수 있는 인생이 없습니다. 목사님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거예요. 혈통이나 배경이나 조건이 우리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11 지파에서이 40만 명이나 참전하는이 어마어마한 내전을 일으킨 사람.이 선동한 사람이 누구? 누구냐면 바로 첩배 시체를 12조각 내서 전국으로 뿌린이 엽기적인 일을 버린 레위인이었고요. 레위인이었는데 여러분 위대한 장군 바락도 동원한 군사가 만 명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지금이 레위인이이 다 전국을 다 흔들어 놓는 겁니다. 한 사람의 죄를 가리기 위해서. 아모이나 미디안이나 블레셋 같이 어마어마한 강력한 가나안인들과 싸울 때도 이스라엘이 40만 명을 동원한 적이 없어요.이 세상에 정말로 무서운 싸움이 가족끼리 싸우는 싸움이고 영적인 가족인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싸움이고 그리고 동족인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주범은 그 싸움의 주범은요. 레위인 같은이 지도자라는 거예요. 정말로 우리 인생은요. 절망할 것밖에 없습니다. 사사 시대가 진행되면서 점점 악해지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양적이든 질적이든 그런 비교는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 잘못이 더 큰지 어느 시대가 더 악한지 따지는 것은요. 전부 다 이건 행위 중심적인 거예요. 율법적인 겁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모든 시대가 전적으로 타락한 시대고 모든 인간이 100%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의 답을 우리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수고하고 애어도 나를 구원할 나 하나 구원할 그 힘을 가질 수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방황만 하다가 지쳐서 죽음의 일을 따름입니다. 밑동 잘린 나무처럼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우리의 인생인데이 인생을 오직 하나님 앞에 맡길 때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거기에 거할 때 진정한 평강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앉아서 오늘 제목이기도 한데요. 하나님 앞에 앉아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 앞에 앉는 것의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의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사사기를 여러분들이 큰 종이에다가 1장부터 21장까지 한번 쭉 써 보세요. 예. 시간 되시는 분들은 가로로 쓰시건 뭐 세로로 쓰시건 알아서 그건 다 쓰시고요. 다 쓰시고 그것을 절반으로 딱 한번 접어 보세요. 반으로 종이를 끝단과 끝단이 맞게 그랬을 때 오늘 여호와 앞에 앉아서라는 구절이 쓰 쓰여 있는 20장 26절과 접었을 때 딱 만나는 구절이 어딘지 아세요? 자, 상상을 한번 해세요. 상상은 되시죠? 지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어려운 내용 하나도 아니죠? 20장 26절과 딱 맞는 구절은 2장 12절이에요. 2장 12절. 거기에 무슨 내용이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딱 접었잖아요. 그 중간에 접히는 부분이 있겠죠? 접히는 부분. 상상이 되시죠? 접히는 부분은 어디 어디일까요? 예, 계산을 한번 빨리 해 보세요. 접히는 부분은 10장 10절에서 16절 그 단락이에요. 거기 어디선가 접힙니다. 예. 제가 뭐 또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 막 집에 가서 확인하신다고 저 목사가 맞는 말 했나? 틀린 말했나 해서 한글로 막 찾아가지고 또 영어로 막 찾아가지고 아 아닌데 이거 10장 9절에서 접히던데 이러시면 안 돼요. 저는 히브리어로 그또 장수 절수 다 빼고 모음도 다 싹 지우고 자음만 가지고 그 왜냐면 그 당시에는 원래 자음밖에 없었거든요. 장절 표시도 없었거든요. 원래이 원래 사사기 기록자가 썼었을 상태로 해서 만들어서 딱 접으면 거기가 나온다. 이제이이 말씀이에요. 근데 이제 거기 그 중요한 건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이 단락에 뭐가 있느냐?이 이 단락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라는 구절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그것을 본인들이 고백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진단하기도 하시고 근데 지금 너무 하나님을 버린 그 대가를 치르다 보니까 어 후회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께 아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면서 우상을 따라갔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니까 하나님이이 고민하시는 장면이 나와요. 얘가 얘네들을 죽여야 돼. 살려야 돼. 그러면서 하나님 우리 마음 약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사사를 보내셔서 그 보낸 사사가 이제 있다죠. 10장에. 그러니까 여러분 뭐 해요? 사사기 저자가 이렇게 아주 재미있는이 익사를 섞어서까지 우리한테 지금 전해 주려는 뜻은요. 우리는 소망이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가 답을 가지고 살 살면 안 되고 우리 힘으로 살아도 안 되고 여호와 앞에 앉아서 살아가야 되는데 그런데 우리 힘으로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의 모습은 뭐라는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사사이 가장 가운데까지 그것을 딱 써 놨어요. 두 번이나. 너희들은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것이 너희의 실체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참이 기대할게 없는 것이죠. 하나님을 늘 버리는 존재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셔야 되는데 그래서 이제 이렇게 사사를 보내 주시잖아요. 자, 그런데 여러분 사사가 그래서 우리를 구해 줄 것 같지만 우리가 또 사사기를 다 묵상했지만 사사들의 면을 한번 보시자고요. 제대로 된 제대로 된 지도자가 있습니까? 다 부족함, 연약함, 망가짐 가운데 쌓여 있는 연약한 인생일 뿐입니다. 기대할게 없는 거예요. 거기엔 소망이 없어요. 지도자로 보내 주셨는데도 약점 투성인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정말 절망밖에 할게 없는 인생이에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 사사가 계시기 때문이에요. 연약한이 사사, 부족한 저사가 아니라 유일한 그 사사가 우리 가운데 계신데 그 사사가 누구실까요? 바로 예수님.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사기 11장 27절에 그 사사라는 단어가 딱 한번 등장해요. 우리 말 번역에는 심판하시는 여호와라고 번역했는데 이거 히브리어로 그대로 보면은 야회하쇼입니다. 여호와 그 사사 그 사사 여호와이 사사에 실망하고 저 사사에 실망해서 아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 주셔도 나의 삶은 안 되는구나. 내가 우리들 교회를 왔는데도 가정을 지킬 수가 없구나. 내가 목장 예배를 그렇게 나가는데도 내 아내도 안 변하고 내 남편도 안 변하고 나도 안 변하고 내 인생은 망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구나라고 하면서 절망을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냐면 내가 그 사사다. 내가 그 사사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사사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가서 앉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사 되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가 언제든지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건 뭐예요? 하나님 앞에 앉는 건 무엇입니까? 날마다 우리가 큐티하는 거예요. 날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공예배를 지키면서 드리는 거예요. 날마다 우리가 목장 예배 또 목장에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앞에 앉아 있는 것이고요.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활 예배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 삶의 자리들을 정말 충성스럽게 지키는 그 작은 하나. 남편의 자리를 지키고 아내의 자리를 지키고 부모의 자리를 지키고 자식의 자리를 지키는 그 작은 하나가 작지만 어려운 하나가 바로 여호와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끝낼 수 없는이 방황을 주님께서 끝내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내가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100% 인정합니까? 지금 어디에 앉아 계시나요? 나의 왕좌입니까? 우상 앞입니까? 여호와 앞입니까? 한 성도님은 어려서 어려서부터 이제 교회를 나가셨는데요. 이분이 고백하길 믿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어머니가 너무 무서우셨대요. 그래서 억지로 나가셨는데 커서 이제 결혼을 했는데 외도로 그만 이혼 위기에 처했어요.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너무너무 엄청나게 화내을 내면서 이제 혼을 내시겠다고 잔뜩 겁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이 사실을 아시고서 딱 한 말씀하셨다고 합니까? 뭘까요? 우리들 교회로 와라. 우리들 교회로 와라. 그래서 이분이 우리들 교회로 왔고 이혼이 막아졌고 가정이 지켜졌습니다. 최근에이 어머니께서이 천국 가셔서 장례 예배를 드렸는데요.이 자녀들이 다 예수를 믿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가족끼리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큐티 본문이이 어머니의 은개를 훔친 미가에 관한 말씀이었는데이 장례 인도하러 간 목사님이 그 가정에 돈에 대한 그 갈등이 있다는 말씀을 말을들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목사님이 아이 장례 후에는 아 가족끼리 다시 서로 안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제이 걱정이 잔뜩 들어서 학관 예배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끼리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아주 오래 드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요.이 이 나눔을 하게 되니까 가족들 표정이 너무 안 좋더래요. 그래서 이제이 목사님이 야, 내가 이거 괜히 나눔시켰나 그러면서 막 걱정이 되고 긴장이 되고 그랬는데 나누다 보니까 지금 현재 암투병 중이신 우리 가족 한 분이 고백을 하시다 하셨다는 거예요. 자기가 사업을 위해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이것을 고백하시면서 회개하시면서 용서를 구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을 다 털어 놓으시면서 이제 화해를 청하는 그런 나눔을 이어가셨다고 해요. 걱정 가득 시작한이 나눔이었지만 가족들 안에 오랫동안 쌓였던 그 깊은 골이이 채워지는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유독 눈물을 많이 흘리던 한 분이 계셨대요. 그래서 그분도 가족인 줄 알고 나눔을 부탁드렸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분은 가족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지인이래요. 아, 그래서 왜 그 그러면 그렇게 이제 우시느냐 그랬더니 자기 교회도 안 다 교회도 안 다니신다는 거예요. 믿는 분도 아닌 거예요. 왜 그렇게 우시느냐? 그랬더니 이분이 하시는 말이 가족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그 이야기가 모두 다 자기 얘기 같아서 흐르는 눈물을 주최할 수가 없다고. 도대체 이렇게 어마어마한 나눔을 하게 하는이 교회는 정말 대단한 교회 같다고 나도 이제부터이 교회에 다니겠다고 이렇게 약속을 하셨다는 거예요. 할렐루야죠. 천국 가신 어머니를 비롯해서 그 모든 유가족들이 힘든 자리였겠지만 각자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잖아요. 앉아서 주님의 말씀으로 나누고 회개하면서이 화해한 것이 여호와 앞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전혀 생각지 않았던 한 영혼이 여호와 앞에 나오기로 결단한 거 아니겠어요? 앞으로도 구원의 사명 더 많이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맺습니다. 우리에게 답이 있을 때는 우리는 여호와 앞에 도저히 앉을 수가 없는 존재예요. 우리에게 힘이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의 답이 없어지고 우리의 힘이 사라져서 울 수밖에 없을 때 내 삶의 절망해서 울 수밖에 없을 때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와서 회개하게 될 때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는 거예요. 울면서 회개하는 것이 사실은 그것이 여호와 앞에 앉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내가 정답이라고 믿던 그이 답들이 오답이 되는 사건을 만나고 내가 의지하는 힘이 다 빠지는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의 육이 무너지면 그것이 곧 축복인 줄 믿습니다. 내가 스스로 왕이 되어서 내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하려는 나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오늘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고 유일한 왕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왕으로 모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하겠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음악] 찬양을 받아 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찬양하 주님을 경배하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사정하서 다스리소서 소망없는 우리 인생 속에서 계속 답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힘이 없으니까 힘을 기르려고 한가힘을 쓰면서 나의 해달별을 높이 세우려고 할 뿐입니다. 우리의 방황이 좀 그쳐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전적 무능을 인정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오직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따라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이 시간 함께 울며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사사기에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와요.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고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악이 있다면이 시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또 말씀의 조명으로 제일 찔리는 그 일이 있다면 주님께 함께 울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내세웠던 나의 답을 내려놓게 해 주시기를 의지했던 나의 힘을 포기하게 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다 함께 주님 한번 부르시고 간절히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주여 아버지 아버지 삶의 왕으로 살아갈 수버지 하나님 팔의 피으로 아버지 찾는 것 제 생각으로 아버지 주님께 나아가고 십지 아버지 이렇게 조금만 있으면 모을 수밖에 없 아버지 이한 자를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제안의 사랑을 주님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수 있도록 도와주옵서 오늘도 아버지 주님 눈물로 게하며 나 주여 우리 주님을 용서하여 주시고 아버지 오늘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왕이 되고 주 앞에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는 아버지 주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주님과 땅부터 있는 예배를 드리도록 하나님 아버지 나를 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님 [음악] 주님 모세를 통해서 감옥 같은 애굽에서 꺼내 주셨고 또 광야길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며 적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새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 들어가 행한 일이라고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것뿐이 여호와를 버린 것뿐임이이 성경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이 바로 오늘 저의 모습이고 저희의 모습이라는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아버지, 이런 인생이 주는 무게 때문에 슬프다 못해서 너무너무 절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런 모습들을 생각하고 이런 악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주님 앞에서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에게 살 소망이 있는 것은 바로 그 사사이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 앞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100% 죄인인 저에게 또 저희에게 100% 오르신 그 사사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저의 삶에 유일한 왕으로 왕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저희를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아직도 저는 제가 뭔가를 아는 것 같고 제게 답이 있는 것 같고 힘이 있는 것 같지만 아버지이 시간 그 허망한 실체를 인정하면서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왕이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왕이신 나의 예수님, 왕이신 나의 성령님, 저의 삶 가운데 좌정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가정 가운데, 직장 가운데, 우리의 목장 가운데, 저희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 가운데, 의지 가운데, 어떤 소망도 없는 저희의 인생 가운데 주님만이 왕으로 좌정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의 여름 사역이 계속해서 진행 중인데 큐패하는 부서마다 또 티T티를 나가는 팀마다 모든 사역부소와 모든 목장에 주님 좌정하사 다스려 주시옵소서. 모든 사역을 통해 한 영혼이 살아나고 한 가정이 중수되며이 나라가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목사님 붙들어 주시고 전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구속사의 복음이 강해서 바다로 넘치게 흘러가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이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순종하는 믿음의 지도자를 세워 주시옵소서. 모든 악법을 막아 주시고 생명을 지키는 법들이 제정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이 시간 주님 앞에 앉을 수 있도록 택해 주시고 불러 주시며 구속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주님께 드리는 저의이 예물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저희의 건강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또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모든 관계와 사역과 섬김 위해 주님의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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