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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 (토) | 큐티인 | 시편 44:1-26 |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 | 조미영 평원지기 | 우리들교회 새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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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QTnoony 댓글 0건 조회 56회 작성일 25-06-2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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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 2025-06-28 (토)
· 큐티인 | 시편 44:1-26
·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 - 조미영 평원지기

1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2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3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4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5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7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9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오늘 말씀은 시편 43편 큐티인 제목은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겔, 여기서 마스겔의 의미는 교훈입니다. 바로 고라 자손의 교훈입니다. 우리들교회에서는 고라당이란 말이 아주 익숙하죠. 민수기 16장에서이 이스엘의 아들 고아의 손자 레위의 증손, 즉 모세의 아론의 사촌인 고라는 르우벤 자손인 다단, 아비람, 온과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들을 모든 회중이 보는 가운데 땅이 갈라져 산채로 스올에 빠져 삼키게 하시고 지휘관 250명은 땅에서 나온 불에 불살라져 반역과 불순종의 징표가 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는 고라가 아닌 고라 자손의 교훈으로 민수기 26장 11절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의 그 아들들의 자손들이 쓴 노래입니다. 비록 아버지와 함께 반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역자의 아들들이라는 꼬리를 달고 살아야 했던 수치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 가운데 성전의 문지기, 떡 굽는 자, 찬송하는 자들로 살아내는 고라 자손들에게서 나온 절절한 신앙 고백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부른 노래일까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히스기야 왕 산헤립 침공 때가 아닐까라고 합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적에게 에워싸임을 당하는 그때에 지어 부른 노래입니다. 정리하자면 반역자의 아들들의 자손이 나라의 위기 앞에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의 노래인 것입니다.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하려면,


첫째, 세대를 이어 들려 줄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하나님이여”로 부르짖어 시작합니다. 하나님, 엘로힘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 그 하나님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단수이자 복수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행하신 일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일러주어 귀로 들었다고 합니다. 행하신 일, 택한 백성을 향한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구속사를 자손들에게 일러주어 자손들이 들었다고 합니다. 부모로부터의 신앙 교육은 이렇게 구속사를 들음으로부터 나고, 그를 통해 믿음을 견고케 하고, 바로 이렇게 위기 때에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 소망의 근거가 되어 “하나님이여”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 있게 합니다.


2 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3 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주께서 행하신 일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주께서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행하신 일의 주체가 누구이고 능력의 주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다른 민족들을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이 땅에 뿌리박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시고 땅을 얻어 차지하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무엇을 하셨는지도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절대로 그들의 공로나 능력이 아니요 오직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라 합니다. 구속사와 함께 자기의 주제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그래서 4절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이렇게 구속사가 깨달아지니 하나님께 드릴 적용의 의지를 드리게 됩니다.


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4절까지는 과거형을 열거했지만, 5절, 6절은 밟브리이다. 못하리이다. 미래 완료형의 의지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 활과 내 칼이 아니라 주를 의지하여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구합니다. 이런 적용의 의지의 근거는 다음 바로 7절에 나옵니다.


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다시 과거형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보이신 1절에서 3절의 구원의 은혜를, 그리고 자신들도 경험하였을 구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시작에서 말했듯이이 노래가 지어진 시점이 산헤립 2차 침공 때로 랍사게가 자기들의 힘을 자랑하고 히스기야가 의지하는 하나님을 조롱하던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이들이 종일 자랑하였다고 합니다. 심히 조롱이 더해졌을 때인데도, 열왕기 설교를 통해서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일을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저의 첫 번째 간증입니다. 저는 동지달이면 팥죽을 쑤어 부엌에 척척 뿌리는 모습이 고향 풍경으로 그려지는 어촌자락에서 1남 3녀의 장녀로 살았습니다. 어촌이다 보니 무속이나 굿을 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오히려 교회 단벼락을 지날 때 들리는 고함지르는 비명 같은 소리에,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철야기도 소리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소리에 미친 사람들이 사는 것 같아 교회 건물이 무서워 그 길을 피해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대학 같은 과에서 만난 전남편과 혼전 임신으로 결혼했습니다. 시아버님은 장로, 시어머님은 전도사인 시댁은 결혼하면 당연히 며느리는 교회에 따라 나올 것으로 여겨 제가 예수를 모르는 것은 전혀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불신 결혼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한 저는 제 세상적인 의와 행위로 시외할머니, 시할머니, 시부모님, 시동생, 시누이들과 함께하는 시집살이와 연년생 딸들의 양육에, 남편 학위 뒷바라지까지 하며 생색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믿으나 행위가 되지 않은 시부모님을 정죄하며 “하나님 믿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느냐?”고 남편을 달달 볶았습니다. 분가해서는 목사 안수를 뒤늦게 받으신 시아버님이 인수한 교회에 매주 다니며 그 생색은 더 하늘을 찔러 날마다 남편에게 대못질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날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당하다가 남편이 한마디 한 것이 자기 가슴을 치며 “이 안에 예수 있다”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승진도 하고 강남에 아파트 재건축도 되고 한 그때에 남편 바람이 드러났습니다. 처음 1년은 ‘바람쯤이야’ 하며 그러다 제자리에 돌아오기만 하라며 모른 척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친정 아버지의 소천과 장례식장에서의 남편의 소란과 친정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남편의 그녀의 악담 등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혼 서류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큐티 모임을 들었던 시누이가 목사님 간증 테이프와 우리들교회 2주년 설교 테이프를 들고 와 “시누이년 미쳤다 생각하고 이 교회 한번만 가보라”고 해서 2005년 6월 넷째 주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그날 말씀 제목이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23절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 유태인 학살을 말씀하시며 그 사건도 실수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내게 일어난 일들도 실수가 아니구나’가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이 되었고, 알파이신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오메가이신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말씀도 들렸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즉시 순종을 말씀하시며 가장 무서운 마귀가 차차 마귀라고 하셔서 한번 와 보기만 하려 했던 그날 등록을 했습니다. 목장에 바로 갔고 목자님께서 “누구 좋으라고 이혼하느냐?”는 말에 이혼을 미루고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물려줄 게 깨끗한 호적 밖에 더 있냐? 깨끗한 호적 물고 죽으면 된다”는 말씀이 들려 이후로 호적 지키다 죽기로 했습니다. 너무 신기한 건 말씀이 너무 좋았고 예수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수 십자가가 그냥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목장에서 “저 딱 오늘 죽으면 저 오늘 천국 갈 수 있어요.” 라고 해서 목자님이 크게 웃으셨습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적용 질문

세대를 이어 들려줄 구원의 간증이 있습니까?

그 구원이 오직 주께서 이루신 구원인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여전히 의지하고 있는 나의 활과 칼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하려면,


두 번째, 그러나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8절 마지막이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로 끝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9절 “그러나”로 시작하십니다.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이 여섯 절의 주어가 모두 “주께서”입니다. 시편 43편 전체에는 “주께서”가 모두 12번 나오는데요. 여기서는 매절마다 “주께서”로 시작합니다. 유난히 “주께서”를 더 외치고 있습니다. 앗수르의 2차 침입으로 군대가 문턱까지 와서 진을 치고 히스기야를 위협하던 패배의 위기가 팽배하던 그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고 버리셨다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그러한 단절감으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을 베푸셨던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혹독한 시련의 현실 또한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반복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버려 욕을 먹게 탈취당하게 넘겨 주셔 흩으시고, 헐값으로 파시고, 조소와 조롱받게 이야기거리가 되게 머리 흔듦을 당하게 이 모든 일을 주께서 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요?” 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시다. 굳이 구원하시고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시는 뺑덕어미일까요?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이익이 없을 일에 굳이 파실 이유가 있을까요? 얼마 전 목사님 창세기 1장 <우연이 아닌 창조입니다> 설교에서 성부께서 감춰진 뜻으로, 성자께서 나타난 뜻으로, 성령께서 효과적 능력으로 도우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도우시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동일하게 시편 기자는 이것을 알았던 듯합니다. 그러니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아 “주께서 하시겠거든” 하며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고난 가운데 말씀을 통해 나타내시는 성자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주어가 여기서 나로 바뀝니다. 시편 44편은 백성들의 코러스와 왕의 솔로의 댓구 교차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9절에서 14절까지는 백성들이 노래하는 부분이고요, 바로이 15, 16절은 왕이 독창하는 부분입니다. 백성들이 흩어지고 조소와 조롱을 당하는 가운데 이것이 지도자의 능력이며 수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수의 비방과 욕하는 소리는 왕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왕의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으므로 아마도 더 수치로 왕의 낯이 변한 듯합니다.


저의 두 번째 간증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호적 지키기로 하고 목자가 되고 한 달 후, “그러나” 남편이 그녀에게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은 그녀가 발가벗은 아들 사진을 남편의 싸이월드에 올리고 저에게 들어가 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줌마, 이제 어떡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뭘 어떡하냐? 너도 이제 어미가 되었으니 어미된 심정을 알겠네” 하였습니다. 아이 이름이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되었다고 완전할 완 자를 써서 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잘되었다고. 우리 아이들 돌림자가 뜻 지 자이니 뜻 지에 완전할 완자를 써서 지완이라고 하면 되겠다고… 저는 지금까지 이 이름을 이렇게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통해서 뜻을 완전히 이루셨다. 그래서 저희 집은 딸들이랑 저는 저희 친정 식구들도 완이를 지완이라고 불러요. 지금도 “지완이 잘 있대?”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녀에게서 “악” 하는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그무렵 제가 오며 가며 테이프로 듣던 말씀이 로마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 5:15)


이 이 말씀이 기억이 나면서 완이가 선물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로 받기로 했습니다. 선물은 그저 기쁘게 어기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정기적인 듯한 주기적 그녀의 술에 취한 전화와 문자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딸들의 방황으로 주님 앞에 서원하며 이 딸만 살려 주시면 내 인생 없다고 살겠다고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빛은 이자 갚기도 힘들어 가스도 끊겨 보고 전기도 끊겨 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빚졌으면 빚갚다가 천국 가면 된다는 말씀으로 빚갚는 적용으로 빌어먹듯 살았습니다. 정말 세상 소망이 다 끊어지니 사모할 것이 천국 소망밖에 없었고, 믿음으로가 아니라 갈 곳이 없어 여기 우리들 공동체에 있었습니다. 되었다함이 없는 채로, 된 것도 없는 채로, 어떤 것도 미결인 채로 그래서 갈등 충만이었지만 그래서 더 말씀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호적 지키다 죽으면 된다고 세상적으로도 호적은 권세라고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그래서 호적은 나의 17년의 피값이었습니다. 가정은 지켜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2022년 1월 25일 약 10년 만에 남편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그 주일 말씀 제목이 <성령의 허락>이었습니다. 그날 큐티 말씀은 아브라함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 사래를 누이로 속이는 본문이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셨구나. 그리고 드디어 팔려가겠구나’ 했습니다. 남편을 만나는 날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이 내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내가 우하며 내가 좌하리라 하고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요단 동편으로 가는 본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사방 바라보는 모든 땅을 너와 내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남편은 그날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하였고 원하는 금액보다 적게 주겠다는 저를 떠나는 남편 뒤로 뿌연 하늘이 그날 따라 황사와 미세 먼지가 가득해서 가나안 땅 하늘 같아 보였습니다. 그 이후 여러 달 동안 몇 번의 거절과 함께 2022년 9월 13일 이혼 소장을 받았습니다. 그날 말씀은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

3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지식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서 남편이 청구한 이혼 사유에 이유도 사견도 첨부하지 아니하고 네, 아니요 단답형으로 성실하게 답변을 썼습니다. 그 주일 말씀 제목은 <성령의 도우심> 이 이 모든 과정에 성령이 도우실 줄로 믿어졌습니다. 법원 이혼 조정일을 앞둔 10월 23일 그 주일 말씀은 <성령의 안심>


사도행전 27장 22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라”


‘아, 배는 파손되겠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추돌 사고로 차가 폐차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말씀처럼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타박상 조차 입지 않았습니다. 10월 27일 조정 당일 큐티 시편 9편


4절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5절 “이방 나라를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6절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7절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시며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문자 그대로 응답이었습니다. 조정관들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공동체에서 살아온 얘기뿐이라 주께서 변호하신다니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조종관이 재판으로 가면 불리할 것이고 몹시 괴롭고 지저분한 싸움이 될 것이니 이혼해 주라고, 이혼 못 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같이 살 수 있겠냐고 해서 힘은 들겠지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 조종관들이 다 저를 설득하는데, 바람나고 아들 낳은 걸로 이혼하면 세상에 살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냐고 가정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조건 버티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하여 제가 답하기를, 무조건 제가 이혼 못 해 주겠다고 한 게 아니며 나의 원래 예수 믿지 않던 사람이었고 저 사람 만나서 예수 믿게 되었고 저 사람이 내 예수씨고 그런 내 남편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예배 네 번만 오면 이혼해 주겠다고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정관들이 이번에는 남편을 항하여 이혼해 준다는데 그 예배 네 번을 못 가서 법원까지 왔느냐며 예수 믿는 사람이 예배 그걸 못 가서 이 지경을 만드냐고 남편에게 예배 가는 것으로 종용했습니다. 그렇게 조종관들을 통해서 우리들교회 예배 네 번으로 장소, 날짜, 시간까지 지정하여 조정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조정되어 본 적이 없어서 판사가 이 조정에 이유를 달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판사가 와서 “정말 이렇게 조정합의 할거냐?” 하며 이렇게 합의가 이루어지고나면 이후로 어떠한 추가 위자료나 금전적 청구가 불가하며 또한 조정에서 합의된 사항이 불이행이 되었을 때에도, 그러니까 남편이 예배에 오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강제할 수가 없다고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예배 네 번은 하나님과의 약속이고 그 약속을 받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남편의 우리들교회 예배 네 번은 2022년 <집으로> 전도 축제 기간이 이루어졌고, 목사님의 초청에 일어나 신앙 고백도 따라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마지막 주일 등록도 권유했으나 거절 당했고, 12월 첫째 주일 <성령의 고침의 날> 말씀 날을 이후로 이혼이 확정되었습니다. 이혼이 확정된 그 주일 말씀은 <성령의 담대한 마음>이었습니다. 담대하려면 떠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바로 갈 수도 있었는데 광풍도 만나고 뱀에게도 물리고 배도 파손이 되고, 그래서 276명을 태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18년 전 그때 이혼이 되었더라면 저도 제 딸들도 진정 식구들도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17년을 돌아 그들을 모두 태우고 왔습니다.


적용 질문

지금 어떤 혹독한 실험 가운데 있습니까?

그것이 주께서 그러나로 찾아오신 선물임이 믿어지십니까?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


마지막은,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간구해야 합니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열왕기하 19장 앗수르의 1차 침입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상한 갈대 지팡이에 불과한 애굽을 의지하여 그 결과 엄청난 배상금을 바치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위기를 면하러 했던 것과 달리, 2차 침입 때에는 신앙을 회복하고 전적 무능과 무력을 깨닫고 반드시 건지실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나아가지만 또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응답하십니다.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사방의 승냥이떼가 있는 황폐한 땅으로 밀어넣어 생매장 당할 멸절의 위기에 처하게 된 이때에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느냐고 합니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 주님을 잊지도 다른 신을 향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주를 위하여 라고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당하는 권한이 앗수르 군대 산헤립 때문이 아니라 주께로 비롯된 것이며 그 앞에 하나님의 어린 양이 도살할 양같이 되었으니 비로소 주여 깨소서 버리지 마소서 일어나 도우소서 구원하소서 호소합니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호소라기 보다는 거의 탄원에 가깝습니다. 열왕기아 19장 14절.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편지를 받고 성전에 올라가 그 편지를 앞에 펼쳐 놓고 스스로 엎드려 하나님에게 기도한 장면이 떠오르는 절들입니다. 얼마나 낮아졌으면 영혼은 진토 속에 몸은 땅에 붙은, 그러니 버리지 말고 일어나 도와달라고, 나의 행위로가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열왕기아 19장

16절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19절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바로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상당히 이 시편 기도와 유사합니다. 아마도 성전 문지기인 이 시편 기자는 그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열왕기하 설교를 들었기에 이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알고 있지만, 이러한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깨소서. 일어나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마지막 간증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따라가며 이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뭔가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위선일 것입니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


준비된 권찰의 부부목장 입성은 이제 더 이상 소망일 수 없었고, 로비 성전 문지기로 서서 나란히 들어오고 나가는 부부를 보면 눈물나게 부럽습니다. 로비에서 있으면 햇살이 조명처럼 후광을 비친다는 것을 여러분 아시나요? 나란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보다 예배드리고 나란히 걸어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그림같습니다. 소망이 있을 때랑 소망이 끊어지고 바라보는 마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러니 나도 모르게 ‘아, 이혼했지’ 하는 추스르는 생각이 올라오고 그러면 절로 위측이 되고, 그러면 “말씀 따라 말씀만 붙잡고 왔는데요, 하나님” 하는 이런 삐딱한 중얼거림이 나왔습니다. 예배를 목숨으로 드리고 온 끝에 듣는 안부 인사가 “요즘 괜찮아?”라는 이혼 후에 마음이 힘들지 않느냐는 그러한 뜻의 인사를 들을 때면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 내가 무감각한 건가? 말씀으로 최선을 다해 순간순간 왔는데 이런 안부를 들을 일인가?’ 반문하게 되고, 특히나 세상 친구들에게는 “그럴 거면 진작에 하지”라는 거보라는 묵시적 위로를 들을 때면 또 어디까지 설명하고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또 그게 아니라고 말해야 하나, 그럭저럭 지낸다 해야 하나 등등의, 하지만 본문에서 처럼 주님은 아시나니 제 성질이 한 길만 보는 잔다르크인 것도 주님이 쓰셔서 한 길만 오게 하신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엎드립니다. 제 예수씨는 가슴을 치며 여기에 예수 있다고 하던 전남편입니다. 이루시다 말 구원이 아니기에 주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에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기억하며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혼 후 아빠와의 관계를 위해 적용으로 힘든 마음 가운데에도 답도 잘 안 하는 아빠에게 연락을 하는 딸을 보고 있으면, ‘내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과 함께 내가 그의 구원을 위해 더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더 이상 나의 소관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엎드려 주님 앞에 펼치고 기도할 것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구원의 빚진 자 된 저와 딸들과 저의 친정 식구들로 말미암아 주님의 인자하심에 간구할 뿐입니다.


적용 질문

어떤 항폐한 환경으로 밀어넣어졌습니까?

그 환경에서 나오려고 아직도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모든게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은 구원하소서의 응답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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