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8 (금) | 큐티인 | 사사기 19:16-30 |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 윤혜연 목사 | 우리들교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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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QTnoony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5-08-07 22:00본문
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 2025-08-08 (금)
· 큐티인 | 사사기 19:16-30
·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 윤혜연 목사
16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الله เฮ เฮ 새벽예배 오신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내가 매 기쁘게 술레의 길에 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하니요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저는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입니 >> 그 발 아래 엎드려 잠든 평화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거리며 감난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하시니 나는 숲배와 같이 기쁜 >>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리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세상 모든 욕망과 나의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받았네. >> 어둠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감답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9장 16절에서 30절 말씀입니다.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부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집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에 쓸 것은 모두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어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네 형제들아 청하노니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무리가 듣지 아니함으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문에 이르러 엎드어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문에 엎드려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들어가서 그 집에 이르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에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른 새벽 말씀의 자리에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는 그때를 상세하게 보여 주시는 것이 우연히 아닌 줄을 믿습니다. 나의 삶에서 말씀이 없어 방황하던 삶 가운데 좋은 교회를 만나 인생의 방황을 그치게 해 주시고 여전히 말씀에 기준 없이 살아갔다면 우리의 삶이 어떠했을지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오늘 하루 듣고 적용해야 할 말씀을 알려 주세요.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안녕하세요. 저는 미치학을 섬기고 있는 윤혜현 목사입니다. 2015년 10월에 위일체 하나님의 창세기 말씀을 들으며 전도사로 부임했는데 10년이 지난 2025년 4월에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는 전도서의 말씀을 들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부임했을 때는 정말 제 삶이 공허하고 어두움 속에서 갈 바을 알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질서가 없음에도 질서가 없는 줄도 몰랐는데 공동체에서 양육받고 말씀으로 해석받고 처방받아 적용하며만 왔는데 어느덧 10여년의 시간이 지났고 정말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그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셔서 이제는 약재료로 나누어 줄 것 있는 삶으로 감당하게 해 주셨습니다. 첫 설교라 많이 두렵고 떨리지만 오늘 저에게 그리고 저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큐티 말씀은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입니다. 어제 19장 말씀 첫 시작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는 그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망령된 일인 것임을 짐작하여 알 수 있습니다. 왕이 없는 이때에 망령대의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타락한 전적 부패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단순한 윤리적 타락이 아닌 하나님이 없을 때 인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첫째 내게 보내신 나그네를 영접해야 합니다. 17절 18절입니다.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레위인과 첩 일행들은 이방인 땅에 머물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기부아에서 일모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기부아까지 가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접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방인들보다는 그래도 동족들에게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명기 14장 28절에서 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명령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매 3년 끝에 그의 소산에 10분의을 다내어 내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가 내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손으로 하는 범사에 내게 복을 주시리라. 아멘. 숙소가 없었던 그 길 위에 위험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저들이 나를 또 맞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 유목민들은 늘 이동을 했어요. 풀이 있고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유목민들의 윤리는 원수라 해도 길을 잃었을 때 먹을 것을 제공하고 그를 돌보는 것을 윤리라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나 또한도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사는 나그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도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먹이고 배부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부아에서 일모를 맞이했는데도 영접해 주는 자가 없다는 것은 그 땅이 타락했음을 보여줍니다. 낯선 사람들을 따뜻하게 영접하고 환대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기부와 사람들은 냉담하게 대합니다. 누군가를 환대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자리를내어 주는 것 그리고 그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배제시키고 받아들여 주지 않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없이 내 속에 오른 대로 행하는 태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과 반대로 사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한 노인은 방황하는 나그네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왜 여기에 있냐고 묻습니다. 영접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하니 우리 집에 가자고 레위인과 첩의 일행을 환대하며 초대합니다. 그리고 안심하라고 합니다. 노인은 자기 비용으로 그들을 영접하겠다고 해요. 그리고 그 노인이 나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발을 씻게 해주며 나그네를 영접하여 함께 먹고 마시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노인이 갈 곳 없는 그 일행들에게 한 말이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요? 갈 길이 없어 이곳 저곳 헤매이던 그때 왜 여기 있냐고 관심을 가져 주고 물어봐 주는 것도 너무 감사한데 심지어 안심하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해 주었어요.이 노인이 보여준 사랑은 낯설지 않은 사랑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 공동체에서 경험하고 있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나에게 안심하라고 환대해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환대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는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되어지지 않는 결혼 생활에서는 날마다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얘기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던 당시 저의 시아버지께서는 큰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무리한 성전 건축으로 인해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매일매일 큰이자 금액을 메꾸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연 남편과 저의 결혼 자금으로는 어떤 금액도 받을 수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결혼 준비는 해야 하는데 날짜도 정해졌는데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자 보고 있던 친한 친구가 지금쯤이면 너 청첩장도 나와야 되는 때라고 미리 추기금을 지어 주며 하나씩 시작해 보자고 이야기해 주어 그렇게 저희들의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때에 제가 아버님께 원했던 것은 폐물도 아니었고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이 상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 주시길 원했지만 그런 상황에 처음 만나서 저에게 나눈 이야기가 청척 청첩장 브랜드가 어디 것이냐고 질문하시고 예물 예단은 잘 준비되고 있냐는 질문에 저는 그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힘들었던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심지어 아버님 교회에서 일하던 사역자들도 사례비가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모두 그만두게 되었고 아이들은 있는데 사역자가 없어 난감한 상황에 남편과 저는 준비된 사람들처럼 사역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추운 겨울 아침 남편과 큐티를 하고 있었어요. 그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장로님께서 관리비 아까운데 난로를 켜 놓았다며 난로를 끄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나는 이렇게 살이 아닌데 남편을 만나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날마다 외치는 저의 주제가였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교회는 매각이 되었고 아버님은 처음 교회를 시작하셨던 그 장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분리가 되려던 그 시점에 남편은 그때 당시 우리들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사역자분과 외부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들 교회에 지원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결혼하며 기복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께서는 내게 힘든 상황을 절대 주시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제 삶을 철저하게 무너뜨리셨기에 하나님도 싫다며 이제의 사역은 내 삶에 없을 거라며 자기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매일을 그렇게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시댁에서 사는 동안 조금만 마음에 안 들거나 나를 어렵게 하는 상황들이 생기면 집을 나가고 또 어쩔 수 없이 그날의 말씀을 보며 다시 또 돌아오는 일들이 반복하며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겠냐며 우리들 교회에 나와 함께 지원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성품대로 교회의 일력서를 꼼꼼하게 성실하게 작성했고 저는 내 행복은 이뤄주지도 않는 하나님 외에 나는 왜 맨날 헌신해야 하냐며 불평하며 그 이력서를 작성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3차까지 함께 합격을 했지만 마지막 갈림길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편은 떨어지고 제가 붙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남편에게이 소식을 전하는데 남편이 믿어 줬으면 좋겠는데 계속 장난인 줄 알고 믿을 수 없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저희 두 사람은 그렇게 우리들 교회에 입성했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방황이 그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노인이 나그네를 보아준 것처럼 집도 없이 우리를 영접해 줄 곳이 하나 없어 여기저기 방황하며 다니던 우리 가정을 보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입성한 교회에서는 공동체의 배정이 되었고 아무 연구지도 없던 저희를 본인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 그대로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습니다. 오늘 노인이 나그네를 영접하여 먹고 마시고 쉬게 해 준 것처럼 사역자로 왔는데 남목장에 배정해 주시더니 정말 말씀 그대로 영으로 육으로 먹고 마시게 해 주시고 말씀이 없어 늘 갈팡질팡하며 악에 받쳐 있던 제 삶에 말씀으로 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환대해 준 우리들 교회가 너무 좋아서 부터만 있었더니 두 사람이 왔는데 양과 가족들이 우리들 교회에 함께 입성하고 자녀를 낳고 시아버님께서는 큐티인으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시며 한 말씀으로 나눔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저희 가정 안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이 환대를 잊지 않고 이제는 왕이 없어 각자 자기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하는 자들을 지나치지 말고 환대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둘째로 문을 두드리는 사건 앞에 나를 봐야 합니다. 22절입니다.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기꺼이 나그네를 받아준 노인과 환대를 받은 일행들은 마음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뜻한 사랑이 오고 갔으니 얼마나 좋은 밤입니까?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성읍의 불량배들은 그 밤을 두지 않습니다.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려요. 지부와 사람들은 객을 대접해야 하는 미풍 양속을 어겼을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동성 강관을 하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흉악한 죄의 상징이 되어 버린 소돔과 고모라에서나 있었던 일이 이스라엘 그것도 가장 중심부인 기부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율법을 세 가지 측면에서 깨뜨리고 있습니다. 환대에 관한 율법, 결혼 관계 이외에 성적 관계에 대한 금지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금지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부패로 시작된 이스라엘 사회의 윤리적 타락이 여기까지 와 버린 것입니다. 기부와 사람들은 대다수 갑작스럽게 냉대에서 완전한 야만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즉 기부와 사람들은이 레위인에게 자신들의 문화에서 완전한 구력을 의미하는 일을 행하게 함으로 자신들이 완전한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다만 그들의 행동은 인간들이 자신의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할 때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24절입니다.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당신의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라는 노인의 말에 그들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여러분,이 대목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저는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노인의 환대에 함께 웃었다가 도련 바뀌는 태도의 노인을 모습을 보며 어 뭐지?이 이 사람 장난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리에 있지만 내 본성이 문제를 반응하는 태도는 여전히 옳고 그름으로 보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없이 예수 믿게 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 여전히 노인의 환대를 보며 좋은 사람이라 여겼다가 불량배를 만난 뒤 태도가 바뀌는 노인을 보며 나쁜 사람이네라며 인본적으로 나한테 잘해 주면 좋은 사람이라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이 노인은 왜 갑자기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 앞부분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환대의 본보기로 제시되었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특징들을 제시해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모습을 여없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온전히 순수한 사람도 없고 죄성만 가득한 사람이 없는 모습이에요. 여러 복합적인 사람들이고 인간의 행동 중 가장 최상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고 동시에 가장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문이 두드려지기 전에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환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환대해 주는 사람이 생겨 기쁘고 나는 누군가에게 환대를 베풀 수 있는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에 더할 나이 없이 서로 따뜻한 사랑 속에 나도 속고 남도 속이며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묵상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없이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이 노인도 똑같이 왕이 없는 시대의 사람의 모습과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항상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상황만 주어지지 않았을뿐 나에게 똑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더할 수 있는 죄인이라는 말씀을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문이 두들리기 전 모습에 또 불량배를 만나기 전 모습에 나도 속고 남도 속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냐면 손가락질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상황이 주어진다면 나는 더할 수 있는 죄인임이 인정되나요?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셋째, 문지방에 있는 두 손을 봐야 합니다. 26절, 27절입니다.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문에 이르러 엎드어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어져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문에 엎드려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분명 레위 사람들을 원했지만 결국 그의 첩을 넘겨 주었고 그들은 첩을 넘겨받는 것으로 소동을 끝냈습니다. 그들은 레이 사람의 첩을 밤새 능욕하고 새벽에 내버렸습니다. 기집맥진한 여인은 겨우 노인의 집으로 돌아와 아침이 될 때까지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너무 지쳐서 문을 열거나 두드릴 힘도 없어서 그저 문지방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이 대목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먹해지는 것을 떠나 하나님이 없는이 시대에 보여주는 사람의 모습이 충격적입니다. 그 충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성읍의 불량배들을 볼 때 어떻게 인간이 이룰 수 있어? 하지만 결국 그 불량배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어요. 우리가 우리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은 이렇게 망령된 행동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가장 작고 낮은 모습으로 오셨는데 우리가 그분을 왕으로 모시지 못하니 질서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접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환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무지함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느라 환대받아야 할 그 한 사람이 저렇게 죽어간 거예요. 저런 죽어가는 여인을 보며 레위인이 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놀라며 그 여인을 병원에 데려갔을까요? 아니면 죽어 있는 여인을 보며 울부짖고 슬퍼했을까요? 28절에서 29절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씻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에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체를 나기에 싣고 칼로 시체를 나누었습니다. 12이로 나누게 됩니다. 이렇게 아내의 시체를 토막내 모든 지파에게 보낸 레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임명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사사가 되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왕이 없는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결국 자기 생각대로 감정과 탐욕을 따라가는 죄인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만 옳다는 교만한 내 감정과 쾌락만 생각하느라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은 여인을 토막내던 레이 사랑과 다를게 없습니다. 내 뜻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 저는 날마다 죽고 싶다를 외쳤고 같은 시기에 결혼했던 친구들이 초대했던이 신혼집에 갔다 오면 자기 연민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울었습니다. 그때 결심한 것은 나는 이제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였습니다. 시대기 교회에서 권사님들이 한두 마씩만 해도 시어머님이 대명은 되는 것 같았고 그렇게 사역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남편과 둘이 쉬고 싶어도 또 시댁으로 들어가 그 작은 방에서 나가지도 않고 그렇게 철저히 숨어 지내며 낮과 밤이 바뀌고 배고플 때 밥을 먹는게 아니라 배가 고파도 밖에는 날마다 시부모님이 계시니 빵이나 인스턴트를 사 갖고 들어와 방에서 먹고 그렇게 무분별하게 질서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많은 키로스의 살도 찌게 되었습니다. 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방송에서 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들 교회에 지원하여 합격했지만 그때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이유는 남편이 함께하자고 해서 지원했는데 그렇게 숨어지내던 때에 낯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기쁘지 않았고 두려움만 가득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만족하지 못할 모습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저를 계속 밖으로 끌어내 주셨고 10주의 양육과 남목장에서의 날카로운 양육으로 저를 다듬어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말씀을 들으며 회복이 될 때쯤 남편은 아버님을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또 초대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그때 당시 시댁 식구를 어느 정도로 미워했냐면이 좋은 말씀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국 말씀이 나를 지나가며 아버님께 목회자 세미나에 초청을 했을 때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난 어디 가서 강의를 할 사람이지 내가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모습에 더 마음이 다치고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것은 전쟁을 치어서라도 듣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때 당시 남목장의 목자님의 권면에 따라 다시 한번 아버님께 권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때가 되어 아버님은 제8회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시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게는 큰 기대가 없고 어머님이 우리 목사님 말씀 듣고 위로되고 격려가 되면 좋겠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상상 밖으로 일하셨고 수요 예배가 끝난 뒤 아버님께서 전화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2층 본당의 자리에서 저는 간난 아기였던 아이를 안고 있었고 아버님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님은 목사님의 말씀을들은 뒤 제 손을 잡고 미안하다 말씀하시며 내 욕심 때문에 너희들이 너무 고생했다고 우셨습니다. 제가 결혼 준비부터 힘들었던 신혼 생활을 통틀어 아버님께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미안하다였습니다. 항상 행복이 먼저가 아니라 거룩을 향해 걸어갈 때 행복은 뒤따라 오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목사님의 말씀처럼 그냥 우리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공동체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왔을 뿐인데 내 눈 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항상 아버님께서는 며느리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고 하시고 보기에도 예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왜 본인 욕심대로만 원하냐고 난 절대 그렇게 해 줄 마음이 없다고 다친 마음으로 지내왔던 제가 우리들 교회에 우리 공동체에 붙어 있기만 했더니 내 삶도 말씀으로 해석되고 관계도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 없었던 아버님께서는 그 수요 예배가 끝나고 손수 양육을 신청하시고 양육에 필요한 교재는 제가 빌려 드린다고 하는데도 이것은 간직해야 할 말씀이라며 직접 가셔서 교재를 다 사시는 믿을 수 없는 관경을 제 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마치 아버님의 그 모습이 교회를 지키려 세상 방법으로 이리저리 애쓰시고 돌아다니시며 은행 이자에 또 재상 금융원까지 다니시며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모든 애음이 무너져 건물도 매각되고 믿었던 사람들도 다 떠난이 시점이 마치 밤새 능욕당하고 지쳐 간신히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지도 못한 채 문지방에 두 손을 뻗은 그 여인과 같은 모습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결혼한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그때에 우리들 교회에 입성했던 모습이 딱 그 여인과 같았기에 그것을 느낀 그날 이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도 내 죄 보는 구속사 말씀이 없어 방황했던 것처럼 아버님에게도 그저 구속사 말씀이 필요했구나.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넘어서 우리는 그냥 구속사 말씀이 필요한 죄인 두 사람이었구나가이 마음에 새겨지면서 양육에 열심히 하시는 아버님과 소통이 시작되며 어려웠던 마음들을 큐티 말씀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런 상황이 되면 남편에게 우리들 교회에서 가장 부러운게 있다고. 그것은 내가 힘들었던 신혼 때에 우리들 공동체에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망가지 않았을 텐데라고 아쉬워 말하면 남편은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네가 그때 바닥을 쳤으니 네가 지금이 말씀이 들리는 거지. 아니었으면 너는 또 그때 그 말씀도 못 듣고 뛰쳐 나갔다면 정말 우리는이 구속사 말씀을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부러웠던 것은 저보다도 늦게 들어왔던 사역자들이 단임 목사님의 주례를 받으며 결혼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아, 나는 결혼하고 들어왔고 다시 담임 목사님의 주례를 받으려면 재온밖에는 답이 없을 텐데 재혼은 목사님이 또 안 해 주실 것 같고 혼자 우수갯 소리를 하면 남편은 이야기합니다. 매주 담임 목사님이 들려 주시는 말씀이 주려라고 생각하면 되지. 난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 그런데 이것이 바로 말씀이 남편의 삶에 왕노릇된 그 바뀌어진 모습입니다. 남편은 처음 본인이 우리들 교회에 사역자 지원에서 떨어졌을 때 누구보다 분노하며 내가 지원하자 했는데 어떻게 네가 될 수 있냐며 자기 소견에 옳른 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이야기했지만 우리 공동체 안에서 제가 변하고 우리 가정이 살아나니 누구보다 담임 목사님을 사랑하고 우리들 공동체를 사랑하여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역자의 자리는 떨어졌지만 지금은 성도로 매일 주일 예배 판교 체플에서 반주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만 저희 가정에 구속사 말씀 없이 나만 옳다며 서로 왕노릇하며 지냈던 그 시기는 실제로 죽이지만 않았지 말로 서로를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며 죽을 것 같다고 문지방에 손을 올려 놓아도 레위인처럼 내가 더 죽을 것 같다며 보지 않고 차갑게 외면 외면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공동체에 부터만 있었더니 그 환대를 받으며 회복되고 구속사 말씀으로 질서가 세워지며 그 치열했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 가정에도 또 내 주변에도 구속사 말씀이 없어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힘들게 지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공동체 안에도 지난 삶이 해석되지 않아 그저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이 두 손을 우리들 교회 문턱에 올려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지 않았던 이때에 레위인는 문지방에 친 그 손을 보고도 여전히 자신의 오름으로 오히려 시체를 토막내는 잔인함을 보이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내 옆에 문지방에 두 손을 얹은 그 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십니다. 나의 올코름 때문에 내 옆에서 죽어가는 그 한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 옳고 그름으로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시체를 토막내듯 바른 말들로 연약한 상대를 토막내며 말로 죽이고 있지는 않나요? 나의 옳고 그름으로 내가 내 삶에 왕이 되어 외면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말없이 지쳐 문지방에 두 손 올리고 있는 그 지체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 내가 건짐받은 그 환대를 기억하고 그 두 손을 잡아 주시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내가 당한 일이 억울하다며 토막내는 나의 오음은 무엇인가요? 오늘 내가 외면하고 있는 문지방 위에 두 손은 누구 누구인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첫째, 내게 보내신 나그네를 영접해야 합니다. 둘째, 문을 두드리는 사건 앞에 나를 봐야 합니다. 셋째, 문지방 위에 있는 두 손을 봐야 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의 본문을 제게 주심도 의연이 아님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선하게 살아갈 수 없는 부패한 저희들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적 부패한 죄인된 모습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을 구하는 은혜가 우리 안에 있도록 해 주시고 매일 말씀으로 저희들을 찾아와 주셔서 저희들의 삶에 왕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우리 목사님이 살아내 주신 그 구속사의 말씀이 외쳐지는 곳마다 구원의 씨앗이 심겨지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모든 교육부서 여름 큐패와 하반기 진행되고 있는 양육 양육교사와 예목에 하나님 기름 부어 주셔서 날마다들을 말씀이 있는 공동체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죽을 것 같은 그때에 우리들 교회 문지방에 두 손을 올렸을 뿐인데 공동체의 환이키어 살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계속해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가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왕이 없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가정 안에 질서가 무너져 각자의 자리에서 아픔을 호소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질서 안에 들어가지 못하니 망령된 일을 행할 수밖에 없는 우리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먼저 남편의 질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엄마의 자리에서 생색이 아닌 따뜻하게 가족들을 영접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내 삶의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 모시고 말씀을들을 때 질서가 지켜질 수 있음을 깨달아 알게 해 달라고 가정 안에 배우자 자녀들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 갈 수 있게 은혜 부어 달라고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가정을 아버지 기도할 수 있는이 시간들 허락하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정말 만하시되 아버지 정말 내가 올 질서가 무너져 있는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가정이 살아나고 가정이 중수되어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으로는이 질서를 바로 세갈 수 없음을 주님 고백합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아버지이 질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 내가 내 죄인된 모습을 바라볼 때니 그 질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주여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아버지 질서 허락하신 엄마의 때 아내의 때에 하나님 남편을 질서로 바로 알고 아버지 말 그 질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 버실 가운데 정말 주님만을 >>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시대가 죄악 가운데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왕이 되지 못하니 날마다 망령된 일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환대하는 문화가 없이 서로를 냉담하게 대하고 이기주의가 만년이 시대에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사랑으로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을 위해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재정과 은사들을 기꺼이내어 놓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환대하며 손을 내밀 수 있는 한국 교회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이시 교회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한국 교회를 위해서 우리들 교회를 준비하시고 예비시키셨음을 저희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구속사의 말씀이 정말 우리들 교회를 떠나 아버지이 내 아버지 부족서의 말씀을 듣는 교회들마다 하나님 정말 내 죄를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 한 사람이 일어나 가정이 살아날 수 있도록 아버지 교회가 살아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래서 정말 우리가 국내를 다닐 때마다 아버지 사의 말씀을 듣는 교회들을 일으켜 세워주셔서 하나님 그 교회 안에 그 말씀을 들어야 할 자들이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그들부터 그 듣는 자들부터 아버지 정말 주님 앞에 질서가 바로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망령대의 퍼치행하지 않도록 아버지 우리가이 말씀의 기준에 바로잡힐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 교회들을 세워 주시옵시고 교회가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서 우리의 교회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죄를 지어도 죄를 죄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처참하게 세상 가운데 빼앗기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말로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삶으로 보여 준 것이 없어 회개밖에 할 것이 없음을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부유하지 않았어도 하나님 한 분이 계셔서 감사했던 그때를 기억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지금은 너무 풍성하게 넘쳐나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모르는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세상의 관점에서 우리가 먼저 당신이 옳습니다를 기억하고 삶에서 적용할 때에 거룩함이 회복될 수 있도록 우연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진 나라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킬 수 있는 때를 주시도록이 나라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법들이 막아지고 생명의 법이 재정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이 저희 나라의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지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이 어른 세대 회개로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을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 세워진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 그 구원의 사건들이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그 위정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께서 붙잡아 주시옵서. 하나님 생을 보호하는 법이 정지하여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창조를 거스르는 악한 법들이 주님 속히 말되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더욱더 기도해야 할 것은 그 생명의 법이 정말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환대 안에 지켜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먼저 회개하며 돌이킬 때에이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서. 이들이 하나님의이 >> 시간 질병으로 고통 중에 계신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잠잠했던 삶에 문을 두드리는 질병의 사건으로 찾아와 주신 것을 기억하고 말씀으로 돌이켜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병고침을 위해 기도하지만 주님 앞에 내가 정말 나음 받아야 할 혈루의 근원을 찾아 치료받는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 그래서 육체의 질병까지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는 은혜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오늘도 그저 누군가가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며 문지방 위에 두 손 올리고 있는 불안과 강박 정신질환 우울증과 조울증 조연병과 중독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성도님들에게도 찾아가 주셔서 하나님이 그 삶들 위에 왕이 되어 주시기를 그래서 이제는 됐다. 나와 함께 하자고 위로해 주시고 공동체와 함께 말씀들여 회복될 수 있도록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늘가 아버지 하나님 저 질병 가운데 있는 우리의 성도들을 위하여이 질병의 고통을 통하여 원망하고 주님 앞에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통의 문제를 찾아와 아버지 나의 삶에 구원의 문제 주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만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는 그 원망하는 눈빛을고 하나님 이제는 내가 살고 아버지 하나님 주님 내가 어찌할 바씀 위에 아버지 방을 올려놓은 우리들의 아버지께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 손을 우리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을 붙잡아 주님 앞에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주여 도와주시옵서 함께 주시기 간절히 더욱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은 우리 삶은 망령되 행할 것밖에 없는 인생인데 구속사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좋은 공동체를 만나 방황이 끊어지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공동체 안에서 받은이 환대를 잊지 않고 우리 옆에 배우자, 자녀들, 더 나아가 지체들에게 내가 받은이 환대를 나눌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한 모든 기도 제목 위에 하나님이 왕이 되어 주셔서 구원밖에 남는 것이 없는 인생 되도록 돌아보아 주시옵소서. 오늘도 구원을 위해 사명 감당해 주시는 우리 단임 목사님 영육간에 강건하시도록 교회 안에 여름 사역과 하반기 모든 일정 가운데 기름 부어 주셔서 국내 해외 모든T와 준비되고 있는 강주 목회자 세미나에 함께 해 주셔서 그 한 사람이 살아나는 시간이 되도록 그래서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날 수 있도록 구원이 답이어서 모든 때가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는 오늘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계속해서 성도님들 개인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시고 돌아가시겠습니다. 습니다.
· 2025-08-08 (금)
· 큐티인 | 사사기 19:16-30
·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 윤혜연 목사
16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الله เฮ เฮ 새벽예배 오신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내가 매 기쁘게 술레의 길에 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하니요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저는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입니 >> 그 발 아래 엎드려 잠든 평화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거리며 감난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하시니 나는 숲배와 같이 기쁜 >>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리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세상 모든 욕망과 나의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받았네. >> 어둠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감답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9장 16절에서 30절 말씀입니다.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부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집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에 쓸 것은 모두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어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네 형제들아 청하노니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무리가 듣지 아니함으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문에 이르러 엎드어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문에 엎드려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들어가서 그 집에 이르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에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른 새벽 말씀의 자리에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는 그때를 상세하게 보여 주시는 것이 우연히 아닌 줄을 믿습니다. 나의 삶에서 말씀이 없어 방황하던 삶 가운데 좋은 교회를 만나 인생의 방황을 그치게 해 주시고 여전히 말씀에 기준 없이 살아갔다면 우리의 삶이 어떠했을지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오늘 하루 듣고 적용해야 할 말씀을 알려 주세요.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안녕하세요. 저는 미치학을 섬기고 있는 윤혜현 목사입니다. 2015년 10월에 위일체 하나님의 창세기 말씀을 들으며 전도사로 부임했는데 10년이 지난 2025년 4월에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는 전도서의 말씀을 들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부임했을 때는 정말 제 삶이 공허하고 어두움 속에서 갈 바을 알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질서가 없음에도 질서가 없는 줄도 몰랐는데 공동체에서 양육받고 말씀으로 해석받고 처방받아 적용하며만 왔는데 어느덧 10여년의 시간이 지났고 정말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그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셔서 이제는 약재료로 나누어 줄 것 있는 삶으로 감당하게 해 주셨습니다. 첫 설교라 많이 두렵고 떨리지만 오늘 저에게 그리고 저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큐티 말씀은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입니다. 어제 19장 말씀 첫 시작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는 그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망령된 일인 것임을 짐작하여 알 수 있습니다. 왕이 없는 이때에 망령대의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타락한 전적 부패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단순한 윤리적 타락이 아닌 하나님이 없을 때 인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첫째 내게 보내신 나그네를 영접해야 합니다. 17절 18절입니다.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레위인과 첩 일행들은 이방인 땅에 머물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기부아에서 일모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기부아까지 가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접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방인들보다는 그래도 동족들에게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명기 14장 28절에서 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명령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매 3년 끝에 그의 소산에 10분의을 다내어 내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가 내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손으로 하는 범사에 내게 복을 주시리라. 아멘. 숙소가 없었던 그 길 위에 위험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저들이 나를 또 맞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 유목민들은 늘 이동을 했어요. 풀이 있고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유목민들의 윤리는 원수라 해도 길을 잃었을 때 먹을 것을 제공하고 그를 돌보는 것을 윤리라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나 또한도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사는 나그네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도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먹이고 배부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부아에서 일모를 맞이했는데도 영접해 주는 자가 없다는 것은 그 땅이 타락했음을 보여줍니다. 낯선 사람들을 따뜻하게 영접하고 환대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기부와 사람들은 냉담하게 대합니다. 누군가를 환대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자리를내어 주는 것 그리고 그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배제시키고 받아들여 주지 않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없이 내 속에 오른 대로 행하는 태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과 반대로 사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한 노인은 방황하는 나그네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왜 여기에 있냐고 묻습니다. 영접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하니 우리 집에 가자고 레위인과 첩의 일행을 환대하며 초대합니다. 그리고 안심하라고 합니다. 노인은 자기 비용으로 그들을 영접하겠다고 해요. 그리고 그 노인이 나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발을 씻게 해주며 나그네를 영접하여 함께 먹고 마시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노인이 갈 곳 없는 그 일행들에게 한 말이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요? 갈 길이 없어 이곳 저곳 헤매이던 그때 왜 여기 있냐고 관심을 가져 주고 물어봐 주는 것도 너무 감사한데 심지어 안심하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해 주었어요.이 노인이 보여준 사랑은 낯설지 않은 사랑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 공동체에서 경험하고 있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나에게 안심하라고 환대해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환대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는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되어지지 않는 결혼 생활에서는 날마다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얘기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던 당시 저의 시아버지께서는 큰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무리한 성전 건축으로 인해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매일매일 큰이자 금액을 메꾸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연 남편과 저의 결혼 자금으로는 어떤 금액도 받을 수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결혼 준비는 해야 하는데 날짜도 정해졌는데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자 보고 있던 친한 친구가 지금쯤이면 너 청첩장도 나와야 되는 때라고 미리 추기금을 지어 주며 하나씩 시작해 보자고 이야기해 주어 그렇게 저희들의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때에 제가 아버님께 원했던 것은 폐물도 아니었고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저이 상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 주시길 원했지만 그런 상황에 처음 만나서 저에게 나눈 이야기가 청척 청첩장 브랜드가 어디 것이냐고 질문하시고 예물 예단은 잘 준비되고 있냐는 질문에 저는 그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힘들었던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심지어 아버님 교회에서 일하던 사역자들도 사례비가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모두 그만두게 되었고 아이들은 있는데 사역자가 없어 난감한 상황에 남편과 저는 준비된 사람들처럼 사역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추운 겨울 아침 남편과 큐티를 하고 있었어요. 그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장로님께서 관리비 아까운데 난로를 켜 놓았다며 난로를 끄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자기 연민에 빠져 나는 이렇게 살이 아닌데 남편을 만나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날마다 외치는 저의 주제가였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교회는 매각이 되었고 아버님은 처음 교회를 시작하셨던 그 장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분리가 되려던 그 시점에 남편은 그때 당시 우리들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사역자분과 외부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들 교회에 지원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결혼하며 기복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께서는 내게 힘든 상황을 절대 주시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제 삶을 철저하게 무너뜨리셨기에 하나님도 싫다며 이제의 사역은 내 삶에 없을 거라며 자기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매일을 그렇게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시댁에서 사는 동안 조금만 마음에 안 들거나 나를 어렵게 하는 상황들이 생기면 집을 나가고 또 어쩔 수 없이 그날의 말씀을 보며 다시 또 돌아오는 일들이 반복하며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겠냐며 우리들 교회에 나와 함께 지원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성품대로 교회의 일력서를 꼼꼼하게 성실하게 작성했고 저는 내 행복은 이뤄주지도 않는 하나님 외에 나는 왜 맨날 헌신해야 하냐며 불평하며 그 이력서를 작성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3차까지 함께 합격을 했지만 마지막 갈림길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편은 떨어지고 제가 붙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남편에게이 소식을 전하는데 남편이 믿어 줬으면 좋겠는데 계속 장난인 줄 알고 믿을 수 없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저희 두 사람은 그렇게 우리들 교회에 입성했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방황이 그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노인이 나그네를 보아준 것처럼 집도 없이 우리를 영접해 줄 곳이 하나 없어 여기저기 방황하며 다니던 우리 가정을 보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입성한 교회에서는 공동체의 배정이 되었고 아무 연구지도 없던 저희를 본인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 그대로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습니다. 오늘 노인이 나그네를 영접하여 먹고 마시고 쉬게 해 준 것처럼 사역자로 왔는데 남목장에 배정해 주시더니 정말 말씀 그대로 영으로 육으로 먹고 마시게 해 주시고 말씀이 없어 늘 갈팡질팡하며 악에 받쳐 있던 제 삶에 말씀으로 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환대해 준 우리들 교회가 너무 좋아서 부터만 있었더니 두 사람이 왔는데 양과 가족들이 우리들 교회에 함께 입성하고 자녀를 낳고 시아버님께서는 큐티인으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시며 한 말씀으로 나눔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저희 가정 안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이 환대를 잊지 않고 이제는 왕이 없어 각자 자기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하는 자들을 지나치지 말고 환대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둘째로 문을 두드리는 사건 앞에 나를 봐야 합니다. 22절입니다.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기꺼이 나그네를 받아준 노인과 환대를 받은 일행들은 마음이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뜻한 사랑이 오고 갔으니 얼마나 좋은 밤입니까?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성읍의 불량배들은 그 밤을 두지 않습니다.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려요. 지부와 사람들은 객을 대접해야 하는 미풍 양속을 어겼을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동성 강관을 하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흉악한 죄의 상징이 되어 버린 소돔과 고모라에서나 있었던 일이 이스라엘 그것도 가장 중심부인 기부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율법을 세 가지 측면에서 깨뜨리고 있습니다. 환대에 관한 율법, 결혼 관계 이외에 성적 관계에 대한 금지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금지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부패로 시작된 이스라엘 사회의 윤리적 타락이 여기까지 와 버린 것입니다. 기부와 사람들은 대다수 갑작스럽게 냉대에서 완전한 야만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즉 기부와 사람들은이 레위인에게 자신들의 문화에서 완전한 구력을 의미하는 일을 행하게 함으로 자신들이 완전한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다만 그들의 행동은 인간들이 자신의 소견에 오른 대로 행할 때 어떤 참사가 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24절입니다.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당신의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라는 노인의 말에 그들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여러분,이 대목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저는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노인의 환대에 함께 웃었다가 도련 바뀌는 태도의 노인을 모습을 보며 어 뭐지?이 이 사람 장난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리에 있지만 내 본성이 문제를 반응하는 태도는 여전히 옳고 그름으로 보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없이 예수 믿게 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 여전히 노인의 환대를 보며 좋은 사람이라 여겼다가 불량배를 만난 뒤 태도가 바뀌는 노인을 보며 나쁜 사람이네라며 인본적으로 나한테 잘해 주면 좋은 사람이라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이 노인은 왜 갑자기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 앞부분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환대의 본보기로 제시되었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특징들을 제시해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모습을 여없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온전히 순수한 사람도 없고 죄성만 가득한 사람이 없는 모습이에요. 여러 복합적인 사람들이고 인간의 행동 중 가장 최상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고 동시에 가장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문이 두드려지기 전에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환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환대해 주는 사람이 생겨 기쁘고 나는 누군가에게 환대를 베풀 수 있는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에 더할 나이 없이 서로 따뜻한 사랑 속에 나도 속고 남도 속이며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묵상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없이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이 노인도 똑같이 왕이 없는 시대의 사람의 모습과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항상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상황만 주어지지 않았을뿐 나에게 똑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더할 수 있는 죄인이라는 말씀을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문이 두들리기 전 모습에 또 불량배를 만나기 전 모습에 나도 속고 남도 속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냐면 손가락질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상황이 주어진다면 나는 더할 수 있는 죄인임이 인정되나요?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셋째, 문지방에 있는 두 손을 봐야 합니다. 26절, 27절입니다.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문에 이르러 엎드어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어져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문에 엎드려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분명 레위 사람들을 원했지만 결국 그의 첩을 넘겨 주었고 그들은 첩을 넘겨받는 것으로 소동을 끝냈습니다. 그들은 레이 사람의 첩을 밤새 능욕하고 새벽에 내버렸습니다. 기집맥진한 여인은 겨우 노인의 집으로 돌아와 아침이 될 때까지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너무 지쳐서 문을 열거나 두드릴 힘도 없어서 그저 문지방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이 대목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먹해지는 것을 떠나 하나님이 없는이 시대에 보여주는 사람의 모습이 충격적입니다. 그 충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성읍의 불량배들을 볼 때 어떻게 인간이 이룰 수 있어? 하지만 결국 그 불량배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오셨어요. 우리가 우리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은 이렇게 망령된 행동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가장 작고 낮은 모습으로 오셨는데 우리가 그분을 왕으로 모시지 못하니 질서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접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환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무지함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느라 환대받아야 할 그 한 사람이 저렇게 죽어간 거예요. 저런 죽어가는 여인을 보며 레위인이 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놀라며 그 여인을 병원에 데려갔을까요? 아니면 죽어 있는 여인을 보며 울부짖고 슬퍼했을까요? 28절에서 29절입니다.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씻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에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12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체를 나기에 싣고 칼로 시체를 나누었습니다. 12이로 나누게 됩니다. 이렇게 아내의 시체를 토막내 모든 지파에게 보낸 레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임명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사사가 되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왕이 없는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결국 자기 생각대로 감정과 탐욕을 따라가는 죄인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만 옳다는 교만한 내 감정과 쾌락만 생각하느라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심은 여인을 토막내던 레이 사랑과 다를게 없습니다. 내 뜻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 저는 날마다 죽고 싶다를 외쳤고 같은 시기에 결혼했던 친구들이 초대했던이 신혼집에 갔다 오면 자기 연민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울었습니다. 그때 결심한 것은 나는 이제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였습니다. 시대기 교회에서 권사님들이 한두 마씩만 해도 시어머님이 대명은 되는 것 같았고 그렇게 사역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남편과 둘이 쉬고 싶어도 또 시댁으로 들어가 그 작은 방에서 나가지도 않고 그렇게 철저히 숨어 지내며 낮과 밤이 바뀌고 배고플 때 밥을 먹는게 아니라 배가 고파도 밖에는 날마다 시부모님이 계시니 빵이나 인스턴트를 사 갖고 들어와 방에서 먹고 그렇게 무분별하게 질서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많은 키로스의 살도 찌게 되었습니다. 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방송에서 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들 교회에 지원하여 합격했지만 그때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이유는 남편이 함께하자고 해서 지원했는데 그렇게 숨어지내던 때에 낯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기쁘지 않았고 두려움만 가득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봐도 만족하지 못할 모습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저를 계속 밖으로 끌어내 주셨고 10주의 양육과 남목장에서의 날카로운 양육으로 저를 다듬어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말씀을 들으며 회복이 될 때쯤 남편은 아버님을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또 초대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그때 당시 시댁 식구를 어느 정도로 미워했냐면이 좋은 말씀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국 말씀이 나를 지나가며 아버님께 목회자 세미나에 초청을 했을 때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난 어디 가서 강의를 할 사람이지 내가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모습에 더 마음이 다치고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것은 전쟁을 치어서라도 듣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때 당시 남목장의 목자님의 권면에 따라 다시 한번 아버님께 권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때가 되어 아버님은 제8회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시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게는 큰 기대가 없고 어머님이 우리 목사님 말씀 듣고 위로되고 격려가 되면 좋겠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상상 밖으로 일하셨고 수요 예배가 끝난 뒤 아버님께서 전화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2층 본당의 자리에서 저는 간난 아기였던 아이를 안고 있었고 아버님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님은 목사님의 말씀을들은 뒤 제 손을 잡고 미안하다 말씀하시며 내 욕심 때문에 너희들이 너무 고생했다고 우셨습니다. 제가 결혼 준비부터 힘들었던 신혼 생활을 통틀어 아버님께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미안하다였습니다. 항상 행복이 먼저가 아니라 거룩을 향해 걸어갈 때 행복은 뒤따라 오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목사님의 말씀처럼 그냥 우리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공동체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왔을 뿐인데 내 눈 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항상 아버님께서는 며느리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고 하시고 보기에도 예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왜 본인 욕심대로만 원하냐고 난 절대 그렇게 해 줄 마음이 없다고 다친 마음으로 지내왔던 제가 우리들 교회에 우리 공동체에 붙어 있기만 했더니 내 삶도 말씀으로 해석되고 관계도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 없었던 아버님께서는 그 수요 예배가 끝나고 손수 양육을 신청하시고 양육에 필요한 교재는 제가 빌려 드린다고 하는데도 이것은 간직해야 할 말씀이라며 직접 가셔서 교재를 다 사시는 믿을 수 없는 관경을 제 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마치 아버님의 그 모습이 교회를 지키려 세상 방법으로 이리저리 애쓰시고 돌아다니시며 은행 이자에 또 재상 금융원까지 다니시며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모든 애음이 무너져 건물도 매각되고 믿었던 사람들도 다 떠난이 시점이 마치 밤새 능욕당하고 지쳐 간신히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지도 못한 채 문지방에 두 손을 뻗은 그 여인과 같은 모습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결혼한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그때에 우리들 교회에 입성했던 모습이 딱 그 여인과 같았기에 그것을 느낀 그날 이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도 내 죄 보는 구속사 말씀이 없어 방황했던 것처럼 아버님에게도 그저 구속사 말씀이 필요했구나.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넘어서 우리는 그냥 구속사 말씀이 필요한 죄인 두 사람이었구나가이 마음에 새겨지면서 양육에 열심히 하시는 아버님과 소통이 시작되며 어려웠던 마음들을 큐티 말씀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런 상황이 되면 남편에게 우리들 교회에서 가장 부러운게 있다고. 그것은 내가 힘들었던 신혼 때에 우리들 공동체에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망가지 않았을 텐데라고 아쉬워 말하면 남편은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네가 그때 바닥을 쳤으니 네가 지금이 말씀이 들리는 거지. 아니었으면 너는 또 그때 그 말씀도 못 듣고 뛰쳐 나갔다면 정말 우리는이 구속사 말씀을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부러웠던 것은 저보다도 늦게 들어왔던 사역자들이 단임 목사님의 주례를 받으며 결혼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아, 나는 결혼하고 들어왔고 다시 담임 목사님의 주례를 받으려면 재온밖에는 답이 없을 텐데 재혼은 목사님이 또 안 해 주실 것 같고 혼자 우수갯 소리를 하면 남편은 이야기합니다. 매주 담임 목사님이 들려 주시는 말씀이 주려라고 생각하면 되지. 난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 그런데 이것이 바로 말씀이 남편의 삶에 왕노릇된 그 바뀌어진 모습입니다. 남편은 처음 본인이 우리들 교회에 사역자 지원에서 떨어졌을 때 누구보다 분노하며 내가 지원하자 했는데 어떻게 네가 될 수 있냐며 자기 소견에 옳른 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이야기했지만 우리 공동체 안에서 제가 변하고 우리 가정이 살아나니 누구보다 담임 목사님을 사랑하고 우리들 공동체를 사랑하여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역자의 자리는 떨어졌지만 지금은 성도로 매일 주일 예배 판교 체플에서 반주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만 저희 가정에 구속사 말씀 없이 나만 옳다며 서로 왕노릇하며 지냈던 그 시기는 실제로 죽이지만 않았지 말로 서로를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며 죽을 것 같다고 문지방에 손을 올려 놓아도 레위인처럼 내가 더 죽을 것 같다며 보지 않고 차갑게 외면 외면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공동체에 부터만 있었더니 그 환대를 받으며 회복되고 구속사 말씀으로 질서가 세워지며 그 치열했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 가정에도 또 내 주변에도 구속사 말씀이 없어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힘들게 지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공동체 안에도 지난 삶이 해석되지 않아 그저 살고 싶은 마음 하나로이 두 손을 우리들 교회 문턱에 올려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지 않았던 이때에 레위인는 문지방에 친 그 손을 보고도 여전히 자신의 오름으로 오히려 시체를 토막내는 잔인함을 보이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내 옆에 문지방에 두 손을 얹은 그 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십니다. 나의 올코름 때문에 내 옆에서 죽어가는 그 한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 옳고 그름으로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시체를 토막내듯 바른 말들로 연약한 상대를 토막내며 말로 죽이고 있지는 않나요? 나의 옳고 그름으로 내가 내 삶에 왕이 되어 외면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말없이 지쳐 문지방에 두 손 올리고 있는 그 지체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 내가 건짐받은 그 환대를 기억하고 그 두 손을 잡아 주시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 질문 드리겠습니다. 내가 당한 일이 억울하다며 토막내는 나의 오음은 무엇인가요? 오늘 내가 외면하고 있는 문지방 위에 두 손은 누구 누구인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망령된 일을 행하지 않으려면 첫째, 내게 보내신 나그네를 영접해야 합니다. 둘째, 문을 두드리는 사건 앞에 나를 봐야 합니다. 셋째, 문지방 위에 있는 두 손을 봐야 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의 본문을 제게 주심도 의연이 아님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선하게 살아갈 수 없는 부패한 저희들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적 부패한 죄인된 모습을 알고 날마다 하나님을 구하는 은혜가 우리 안에 있도록 해 주시고 매일 말씀으로 저희들을 찾아와 주셔서 저희들의 삶에 왕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우리 목사님이 살아내 주신 그 구속사의 말씀이 외쳐지는 곳마다 구원의 씨앗이 심겨지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모든 교육부서 여름 큐패와 하반기 진행되고 있는 양육 양육교사와 예목에 하나님 기름 부어 주셔서 날마다들을 말씀이 있는 공동체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죽을 것 같은 그때에 우리들 교회 문지방에 두 손을 올렸을 뿐인데 공동체의 환이키어 살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계속해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가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왕이 없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가정 안에 질서가 무너져 각자의 자리에서 아픔을 호소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질서 안에 들어가지 못하니 망령된 일을 행할 수밖에 없는 우리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먼저 남편의 질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엄마의 자리에서 생색이 아닌 따뜻하게 가족들을 영접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내 삶의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 모시고 말씀을들을 때 질서가 지켜질 수 있음을 깨달아 알게 해 달라고 가정 안에 배우자 자녀들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 갈 수 있게 은혜 부어 달라고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가정을 아버지 기도할 수 있는이 시간들 허락하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정말 만하시되 아버지 정말 내가 올 질서가 무너져 있는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가정이 살아나고 가정이 중수되어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으로는이 질서를 바로 세갈 수 없음을 주님 고백합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아버지이 질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 내가 내 죄인된 모습을 바라볼 때니 그 질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주여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아버지 질서 허락하신 엄마의 때 아내의 때에 하나님 남편을 질서로 바로 알고 아버지 말 그 질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 버실 가운데 정말 주님만을 >>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시대가 죄악 가운데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왕이 되지 못하니 날마다 망령된 일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환대하는 문화가 없이 서로를 냉담하게 대하고 이기주의가 만년이 시대에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사랑으로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을 위해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재정과 은사들을 기꺼이내어 놓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환대하며 손을 내밀 수 있는 한국 교회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이시 교회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한국 교회를 위해서 우리들 교회를 준비하시고 예비시키셨음을 저희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구속사의 말씀이 정말 우리들 교회를 떠나 아버지이 내 아버지 부족서의 말씀을 듣는 교회들마다 하나님 정말 내 죄를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 한 사람이 일어나 가정이 살아날 수 있도록 아버지 교회가 살아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래서 정말 우리가 국내를 다닐 때마다 아버지 사의 말씀을 듣는 교회들을 일으켜 세워주셔서 하나님 그 교회 안에 그 말씀을 들어야 할 자들이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그들부터 그 듣는 자들부터 아버지 정말 주님 앞에 질서가 바로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망령대의 퍼치행하지 않도록 아버지 우리가이 말씀의 기준에 바로잡힐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 교회들을 세워 주시옵시고 교회가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서 우리의 교회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죄를 지어도 죄를 죄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처참하게 세상 가운데 빼앗기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말로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삶으로 보여 준 것이 없어 회개밖에 할 것이 없음을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부유하지 않았어도 하나님 한 분이 계셔서 감사했던 그때를 기억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지금은 너무 풍성하게 넘쳐나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모르는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세상의 관점에서 우리가 먼저 당신이 옳습니다를 기억하고 삶에서 적용할 때에 거룩함이 회복될 수 있도록 우연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진 나라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킬 수 있는 때를 주시도록이 나라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법들이 막아지고 생명의 법이 재정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이 저희 나라의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지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이 어른 세대 회개로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을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 세워진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 그 구원의 사건들이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그 위정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께서 붙잡아 주시옵서. 하나님 생을 보호하는 법이 정지하여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창조를 거스르는 악한 법들이 주님 속히 말되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더욱더 기도해야 할 것은 그 생명의 법이 정말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환대 안에 지켜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먼저 회개하며 돌이킬 때에이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서. 이들이 하나님의이 >> 시간 질병으로 고통 중에 계신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잠잠했던 삶에 문을 두드리는 질병의 사건으로 찾아와 주신 것을 기억하고 말씀으로 돌이켜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병고침을 위해 기도하지만 주님 앞에 내가 정말 나음 받아야 할 혈루의 근원을 찾아 치료받는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 그래서 육체의 질병까지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는 은혜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 오늘도 그저 누군가가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며 문지방 위에 두 손 올리고 있는 불안과 강박 정신질환 우울증과 조울증 조연병과 중독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성도님들에게도 찾아가 주셔서 하나님이 그 삶들 위에 왕이 되어 주시기를 그래서 이제는 됐다. 나와 함께 하자고 위로해 주시고 공동체와 함께 말씀들여 회복될 수 있도록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늘가 아버지 하나님 저 질병 가운데 있는 우리의 성도들을 위하여이 질병의 고통을 통하여 원망하고 주님 앞에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통의 문제를 찾아와 아버지 나의 삶에 구원의 문제 주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만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는 그 원망하는 눈빛을고 하나님 이제는 내가 살고 아버지 하나님 주님 내가 어찌할 바씀 위에 아버지 방을 올려놓은 우리들의 아버지께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 손을 우리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을 붙잡아 주님 앞에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주여 도와주시옵서 함께 주시기 간절히 더욱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은 우리 삶은 망령되 행할 것밖에 없는 인생인데 구속사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좋은 공동체를 만나 방황이 끊어지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공동체 안에서 받은이 환대를 잊지 않고 우리 옆에 배우자, 자녀들, 더 나아가 지체들에게 내가 받은이 환대를 나눌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한 모든 기도 제목 위에 하나님이 왕이 되어 주셔서 구원밖에 남는 것이 없는 인생 되도록 돌아보아 주시옵소서. 오늘도 구원을 위해 사명 감당해 주시는 우리 단임 목사님 영육간에 강건하시도록 교회 안에 여름 사역과 하반기 모든 일정 가운데 기름 부어 주셔서 국내 해외 모든T와 준비되고 있는 강주 목회자 세미나에 함께 해 주셔서 그 한 사람이 살아나는 시간이 되도록 그래서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날 수 있도록 구원이 답이어서 모든 때가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는 오늘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계속해서 성도님들 개인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시고 돌아가시겠습니다.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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