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7 (목) | 큐티인 | 사사기 19:1-15 | 영적 방황의 시대 | 정근용 목사 | 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 새벽큐티예배

본문 바로가기

새벽큐티예배

새벽큐티예배 HOME


 

2025-08-07 (목) | 큐티인 | 사사기 19:1-15 | 영적 방황의 시대 | 정근용 목사 | 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QTnoony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5-08-07 01:00

본문

우리들교회 새벽기도회
· 2025-08-07 (목)
· 큐티인 | 사사기 19:1-15
· 영적 방황의 시대 - 정근용 목사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3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4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6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7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8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10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9장 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 동안을 지내매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기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3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넷째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에 그대의 길을 가라하니라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니 이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하니 그 사람이 일어 가자 하 그의 장인의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다섯째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니 그대의 기력을 두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서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이 날이 저물어가니 청학원데 이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지운 기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하였더라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 해가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관되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이 성읍에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주인이 그에게 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부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부하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기바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아멘 아멘. 하나님 아버지, 영적 방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오늘 말씀을 통해 민감하게 내 죄를 보고 깨닫고 돌이켜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하여 주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저는 어른이 되어서야 어렸을 적 제가 알고 있던 전례동화가 어린아이들 수준에 맞게 각색된 것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면서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여러분이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인 콩지파지의 원래 이야기 알고 계시나요? 결말이 특히 놀랍습니다.이 클라이막스에 이르서 결국 콩지가 신부가 되자 그걸 시기한 팥찌가 콩지를 유인해서 연못에 빠뜨려 죽였고 팥찌가 콩지 대신 신부 행세를 하다가 들켜서 거여형을 당해요. 그런데이 시계를 시체를 잘게 쪼개서 젓갈로 만들어서 개모에게 보냅니다. 개모가 그 젓가를 맛있게 먹습니다. 그리고 나서 먹 다 먹고 난 뒤야 그 저가를 만든 재료가 무엇인지를 알려 줘요. 그 자리에서 개모는 충격을 먹고 심장마비로 죽서 죽게 됩니다. 새벽 첫 시간부터 이렇게 소름 끼치는 어 얘기로 시작해서 너무 죄송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 부모님이나 아니면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그래서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것은 동화일뿐 현실은 다르단 것이죠. 반면 성경은 하나도 각색되지 않은 우리들의 현실을 고스란이 담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무조건 만사 형통이라고 동화로 성경을 써 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말할 때 보통 저절로 좀 좋은 점은 좀 과장하고 안 좋은 점은 좀 축소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 다 각색을 하고 선전을 이렇게 하죠. 사람이 만든 우상 종교의 경전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경을 악하고 음란한 우리 이야기를 그대로 각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써두셨습니다. 정말 진실한 현실 고증의 책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볼 때론 참혹하고 때론 거북하고 때론는 소화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이렇게 진실하기에 결국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구원의 십자가 앞에 서게 만드는 표지판이 되어 주는 것이죠. 듣기 좋게 달콤하게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동화 같은 얘기만 만약 써져 있었다면 막상 우리가 실제로 삶에서 만나는 고난과 부조리를 해석할 힘을 전혀 배우지 못했을 것이에요. 그래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사기 전체가 그렇지만 오늘 또 내일 묵상하게 될 사사기 19장 말씀이 특히 더 잔혹합니다. 시체를 12동이로 쪼개서 보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조차 있는 그대로 써주셨어 두셨기에 하나님 믿는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숨어서 행하는 나의이 악하고 음란한 마음을 주님께 그대로 가지고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들 목장에서 아름답고 좋은 얘기만 나누는게 아니라 실제 우리들에게 이야기의 의거해서 나누기 때문에 우리가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진짜 내 사연 진짜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 큐티인 제목은 영적 방황의 시대입니다. 우리 삶은 이런 눈이기에 하나님이 빠지면 우리 삶의 전 영역이 길을 잃고 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왕이 되어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는이 영적 방황의 시대에서 우리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함께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영적 방황의 시대에서 우리는 첫 번째로 매순간 코람대오를 기억해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영적 방황의 시대가 왜 왔는지 어 1절 말씀부터 바로 가르쳐 주시네요. 이스라엘의 왕이 없을 그때라고 합니다. 아, 물론이 왕정 시대 전이 사사 시대기 때문에 문자적인이 땅의 그 왕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더 이상 이들의 왕이 아니었음을 꼬집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면서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할이 레위인조차도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죠. 먼저는이 레위인이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체류했다고 합니다. 레위이 거주해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잘 아시는 대로 구석이 아니라 중심입니다.이 레위인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이 4곳의 성읍 어 그곳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각 지파에 있어서 가장 중심권에 자리잡은 요충지에서이 전체를 돌보는 그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렇게이 레위인이 변방 구석에 거류했다고 하는 것은 마땅히 붙어 있어야 할 사명의 그 자리에서 떠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왜 그랬을까요?이 사람이 죄를 지으면 원래 점점 이렇게 기어 들어가죠. 알아보는이 없는 아는 사람 적은 그 구석으로 들어갑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뒤 숨은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일주일에 중심이 되는 예배의 자리에서 떠나 혼자 예배드리겠다고 하고 목장에도 안 나가겠다할 때가 있죠. 저는 사역자 사무실에서 가장 구석자리 책상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이 개편이 있어서 자리를 옮겼어요. 고대로 반대쪽 구석에 또 가서에 들어가 기어 들어갔습니다. 모니터는 엄청 제가 제일 큰 모니터를 쓰는데요. 제가 원래 행정을 이렇게 하면서 문서를 많이 봐야 되잖아요. 그래서 눈이 아프니까 모니터가 커야 한다고 우겼지만 실상은 모니터가 크면 이렇게 책상이 가려져요. 그래서 그 뒤가 안 보여요. 예.이 이 사각 지대를 만들어서 숨어 있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죄가 많고 감추는게 많아서게 정말 맞는 거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 어디에 숨어도 어 설사 그 바다 밑 깊은 곳에 숨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순 없다는 생각. 그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믿음의 척도가 아닐까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으니 참 우리가 죄를 짓고 싶을 때 고의적으로 참 그렇게 하죠. 우리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밀어낸 뒤 우리가 숨은 부끄러움의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죄를 지으면 어 참 하나님으로부터 그 숨고 싶죠. 어, 그렇지만 그렇게 그대로 숨어 버리면이 악순난이 시작됩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더 하나님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 라틴어인 코람데오 코람데오로 나아가야 하는 줄 믿습니다. 내 힘으로 사실 죄를 안 짓는 건 할 수 없지만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악하고 또 약한 줄 다 알고 계시죠. 의사에게 어 환부를 숨기면 더 곰지 절대 나을 수 없듯이 내 모습 그대로 주님 여기가 아파요. 불쌍 여겨 주옵소서.이 이 마음을 찢으며 마음을 열고 나아가이 코람대의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코람데오처럼 이렇게 말을 지어봤는데요. 코람 공동체 코람 공동체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동체 앞에 공동체 앞에서야 합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이렇게 숨은 죄를 드러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예. 부끄럽습니다. 또들은 말씀으로 이렇게 적용을 또 해내지 못하면 목장식구들의 호된 야당과 또 비난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참 이렇게 막 짜증나고 힘들어서 회피하고 싶지만 내가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 그 목장의 자리에 나를 갖다 두면 내 힘으로 절대로 안 되던게 되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코람대오가 전혀이 되지 않던 사람입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교는 모든 시험을 이렇게 무감독으로 무감독으로 치르게 했어요. 그러면 참 양심에 따라서 그렇게 치렀을까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예. 그 제도를 그 무감독 시험이라는 제도를 아주 악랄하게 이용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조금 한 10분쯤 지나서 일찍 아유 이번 시험 안 되겠다.이 시험을 포기한 척하면서 그냥 답안지를 이렇게 구겨 있는 척하면서 이렇게 가지고 그냥 바깥으로 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는 어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 화장실로 가요. 화장실. 그리고 나서 그 양변기를 끌어앉고 그 뚜껑을 이렇게 덮으면 이렇게 쪼그라 앉아 가지고 책을 꺼내서 책을 펴놓고 어 시험지를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똥 냄새 맡으면서 쪼구리 앉아서 이게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참 공부는 안 하고 대가는 지불하지 않고 학점은 받고 싶었죠. 들키는게 이제 축복이라고 하셨는데 이게 첫 번째 제가 그 행동을 했을 때 딱 들켰으면 참 너무 좋을 뻔했어요. 그런데 들키지 않았습니다. 음. 그런데 이게 사람들에게 들키진 않았을지 몰라도 이게 정말이 아무도 몰랐을까요? 아니죠. 그 화장실에서 양변기 붙들고 그 부끄러운 짓을 행하고 있는 저를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정말 이렇게 코람데오가 안 되었어요. 화인 맞은 양심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근데 결국 하나님이 이제 다 다시 그 과정을 다 다시 하게 하시더라고요. 결국 제가 이제 뭐 너무 악하고 너무 게으르니까 그냥 수업을 못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막 수업을 못 가서 결국 F학점이 나오고 결국 제가 그것을 다 메꾸고 졸업하는데 대학 졸업하는데 4년이잖아요. 저는 이제 9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이 양육을 받으면서 비로소 코람대오 그 코람대오를 제 하루의 일상 생활에서도 어 치열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적용하게 되었어요.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말이죠. 양육숙제를 이제 하는데 큐티 책에이 양육책에 이렇게 딱 적혀 있더라고요. 이렇게 코람대오 하나님 앞에서 숙제를 할 때 혼자서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하듯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게 이제 그때부터 시작이 되고 연습이 되어서 그 이후로는 늘 코람데오를 떠올리고 기억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운전할 때도 성도님, 성도님들이 이렇게 보지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곳에서도 말이죠. 혼자 있을 때 나를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코람데오가 아닐까 합니다. 사각지대 없는 하나님 앞에 서서 내가 살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다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그 자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레위인이 아, 이렇게 예배의 자리를 떠나니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 것이 또 발생해요. 뭐냐면이 아내와 하나되어야 할 그 남편으로서의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오늘 말 1절부터 보면 아내를 두고 첩을 두었다고 해요.이 모세전이 족장 시대에는 율법이 성문화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뭐 그렇다 하더라도이 레위인은 아니잖아요. 그 모세의 율법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이 일부 일처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레위인이 참 이지경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백성들은 참 어떻겠습니까? 이스라엘이이 가나안을 쫓아내란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기에 아 참 이렇게 타락으로 급락해 버렸습니다. 어제 이제 단지파에 레위인이 나오잖아요. 그의 레위인이 마지막 가서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라고 소개했듯이 오늘 이게 사사기 제일 끝에 나오지만이 본문의 배경도 아마 사사기의 초기 시대였을 거라고 어 그럴 가능성이 이제 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그들을 이렇게 쫓아내지 못해서 또 무서워서 인간적으로 처신하고 타협한 결론 이것이 이렇게나 참 무섭습니다.이 이 가나안을 그대로 두니 우상이 그들의 우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버렸죠. 그들의 문화가 이스라엘의 문화가 되고 맙니다. 영육간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뭐 한 주 한두 곳 그 뭐 전체는 우리가 차지했는데 그 한두 곳 좀 괜찮겠지 하는 그 생각이에 그것이 올무가 됩니다. 진멸하지 않고 남겨둔 작은이 불순종의 결론 그 결과가 참 얼마나 참혹합니까? 이 레위인이 개인적으로 이렇게 저지른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 저지른이 악과 음란 이것이 얼마 안 가서 동족상잔이 되고 12 지파 중 한 지파가 말살된 그 지경에 이르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2 3절 말씀입니다.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넉을 지내매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첩이 또 행음했다고 해요.이 원어로 보면 남편에게 화가 나서 그랬다는 그 의미가 이제 내포되어 있다고 그런 동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여자만 남편 너무 잘했는데 여자만 잘못한게 아니란 것이죠. 그러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분해할 것이 없습니다.이 바람나게 한 그 죄 내 죄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이 이 첩이 행음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음란 음란으로 시작한이 관계 욕정으로 시작한이 관계는 시간 문제지 결국 파탄으로 결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레위는 이때라도 돌이켰어야 해요.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고 어 첩에도 이제 위자료를 보내서이 대가지부를 하면서이 기회에이 관계 정리를 하고이 부정한 관계를 딱 끝냈어야 합니다. 그런데 레인은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다시이 관계를 찾고 맙니다. 넉다리 지나서 다시 돌아가요. 여자를 찾으러 갑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냐면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해서 다시 데려오고자 했다고 합니다. 뭐 다정하게 말하는 것이 뭐 잘못이냐 할 수 있겠지만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어떻습니까?이 다정함은 사 온데간데 없어지고 무정함만 남잖아요. 네. 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그러면 이제 무정함을 이렇게 회개해야 그것이 다정함이 생기는 것이지이 속이 다정해지는 것이지. 오늘이 표현 이문맥상으로 이렇게 봤을 때처럼이 다정하게 이렇게 말만 했다는이 느낌 예인 것이죠. 나도 속고 남도 속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이렇게 여러분께 다가와서 다정하게 이렇게 말하면 특별히 그렇게 좀 이렇게 평소와 달리 그렇게 하면 두근두근 하시면 안 되고 어 뭐가 있나 어 하시면 안 되고 잘 분별하셔야 할 줄 믿습니다. 사기꾼들이 그렇게 다정하고 예 바람 피는 사람들이 참 다정하죠. 레위인이 오늘이 코람데오를 기억하고 구석에서 나와서 아 영적 방황을 끝내야 했듯이 우리가 이렇게 음란의 마음이 들 때 음란의 문제 앞에서도 음란 때문에 이렇게 방황하게 될 때도 배우자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확실히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나 합니다.이 이 만약이 레윈의 본처가 예, 이게 왜 본처가 있냐면 이제 첩이라고 했잖아요. 본처가 없거나 이제 없었다면 아마 후처라고 했겠죠. 근데 이제 본처가 옆에서 다이 행위를 보고 있었다면 아마도이 레위인의이 첩을 향한 다정함의 정도가 이게 확실히 급감했을 것 같아요. 예. 여러분은 이렇게 외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도 참 사람마다 이제 그 기준이 다를 거예요. 예. 우리가 이제 각자의 소견에 이렇게 옳은 대로 그러잖아요. 그게 성경에서 뭔가 딱 여기까지가 여기서 이걸 넘으면 외도다. 이렇게 딱 정해 놓으셨다면 참 편했을 텐데. 에, 그렇지 않죠. 그래서 이제 저 같은 경우는에 요런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게 마음에 음란이 틈탈 때이 코람데오라고 했잖아요. 코람데오처럼 아 와이프대오 와이프대오를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준으로 삼고 나를 지키는 그 기준 그 외도라는 정의는 배우자가 옆에서 보고 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어떤 말 어떤 표정 어떤 행동을 어 배우자가 없다고 그 사람에게 하는 것 예 그것이 저는 외도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여러분도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소통해야 될 일들이 많잖아요. 그럴 때 어 저처럼이 기준을 코 배우자 대오 와이프 대오 요것을 한번 떠올려 보시면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합니다. 묵상 질문 드리겠습니다. 내가 돌이켜 떠나야 할 구석 즉 내 사생활은 무엇입니까? 보통 나는 배우자에게 더정합니까? 다른 이성에게 더정합니까? 영적 방황의 시대에서는 두 번째로 먹고 마시는 것보다 구원의 양육이 더 중요합니다.이 두 번째 단락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이 됩니다. 그냥 월요일부터 이제 시작하면 월하주 아주 3일 동안 먹고 마셨다고 해요. 그리고 넷째 날 목요일 아침이 되어서 예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장인이 말합니다. 좀 더 머물며머이라고 하죠. 또 앉아서 그렇게 먹고 마시다 보니 하루가 다가 버렸어요. 그러니 장인이 말합니다. 늦었으니 어 자고 가라고. 그래서 또 하루를 더 잡니다. 금요일 아침이 되었죠. 금요일 아침에 이제 떠나려고 하니 또 쉬고 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앉아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시다 보니 저녁이 되었는데 또 하루가 늦었으니 더 자고 가라 하는 말에 안 됩니다. 이번에는 안 됩니다. 하면서 그대로 이제 고향길로 나섰다는 얘기가 두 번째 단락이에요. 세상에 참 이런 좋은 장인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육적으로는 참 이렇게 더할라이 없이 잘 섬겨 주고 배려해 주고 있을지 몰라도 영적 부모로서의 역할 그것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넉넉 전이 딸이 돌아왔을 때도 야단쳐서 돌려 보내지 못했었죠. 오늘이 사위가 왔을 때도 물었어야죠. 왜 싸웠냐? 무슨 일이냐? 이렇게 좀 진지하게 묻기보다는 오로지 먹고 마시고 쉬라는 말밖에 못 하고 있습니다.이 레위인이 다정하게 말했다고 했던 그 동기와 참 비슷한 거 같아요. 장인도 사위를 얼르고 달래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정말이 사회의 영혼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다면이 설사 관계가 딱딱해지고 불편해지더라도 할 말을 해야 했던게 맞습니다. 그런데 양육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고 잘 구슬려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딸에게 좀 잘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죠. 부모로서의 실력과 권위가 하나도 없는 모습입니다.이 적용은 못 하고 겨우 적응만 이렇게 하는 모습이죠. 저희 두 자녀가 요즘에 이렇게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말투가 많이 삐딱해졌습니다. 되들기도 하고요. 뭐 당연한 거죠. 한편으로는 그런데 참 그동안 제 양육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요즘 많이 좀 생각하게 됩니다. 둘째가 이제 좀 듣기 심해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억지대를 쓰다가 뭐 안 되는 건 안 되잖아요. 그러면 막 얼르고 달래기도 해보고 막 근데 몇 시간씩 마음을 접지 않아요. 몇 시간씩 울다가 결국에는 막 자지러져요. 탈진해서 넘어가 버립니다. 예. 근데 생각해 보면 제가이 어렸을 때부터 좀 이렇게 딱 확실하게 안 되는 거 안 된다고 딱 끊어 주고 따끔하게에 말하지 못하고 늘 이렇게 막 마음이 약해서 여지를 주고 예 또 이렇게 막 못이기는 척 결국은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다 들어줬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제 아버지에게 너무 이렇게 엄격하게 눌려서 자랐기 때문에 이렇게 좀 이렇게 또 이렇게 치우치면 안 되는데 그 반동적으로 또 너무 자녀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이렇게 방임했던 것이 이제 있는 거죠.이 이 뭘 해도 막 이렇게 이쁘다고 해 줬던 거 같아요. 잘못해도 잘못했으면 이렇게 따끔하게 할 말을 했어야 되는데 잘못해도 이렇게 웃어주고이 오냐 오냐 하고 이렇게 넘어가 줄 때가 많았고요. 근데 저는 이제 참 이게 어 우리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거라고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예. 그렇게 사랑해 주는 것이 이렇게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해 주시는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우리들 교회 이제 와서는 하나님이 참 그런 하나님만은 아니라는 걸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참 하나님은 그렇잖아요. 필요할 땐 얼마나 이렇게 호되게 따끔하게 우리를 참 야단치시고 이렇게 갑을 치르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근데 참 그걸 알게 되었으면서도 참 저는 아직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싫은 소리 하는 것이 싫고 갈등 상황이 생기는 것이 싫고 분위기가 딱딱해지는 것이 싫습니다.이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뭐 이게 언젠간 좋아지겠지 좋은게 좋은 거지.이 이렇게 회피하면서 그 우리가 우상을 이렇게 호호 불듯이 닦잖아요. 그렇듯이 자녀를 우상아 호호 불기만 하는 제 모습이 아직 있는 것이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이렇게 핸드폰부터 손에 잡습니다. 그리고 막 이렇게 그만해라 해도 아 잠깐만요. 그만해라. 진짜 열대번을 말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이제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참 아이들이 큐티가 아니라 유튜브와 친구들과의이 카톡, SNS를 하면서 그것을 먹고 마시면서 정서적 허기를 다 달리는 거 같아요. 다 채워 버립니다. 좀만 더, 좀만 더요. 하면서 정말 계속하는데 아마 저희가 말리지 않으면 해가 기울도록 하루 종일 이렇게 핸드폰만 할게 분명합니다. 그러다 이제 진짜 이건 심각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이게 몇 달 전부터는 좀 엄하게 예 잔소리를 큐티하라고 예 그만하라고 막 이렇게 핸드폰 그만하라고 이제 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되게 싫어하더라고요. 예. 예. 귀찮아 하면서 막 싫은 내색을 팍팍합니다. 어뭐 어느 날은 큐티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뭐 어느 날은 막 화가 화를 내면서 방에 문을 꽝 닫고 들어가서는 뭐 2분도 안 돼서 다시 나와서는 나 큐티 다 했어. 나 이제 게임해도 되지? 하면서 뭐 아주 예 진짜 때리고 싶죠. 진짜 막 짜증을 그 받는 것이 쉽지 않아요. 예. 근데 이제 막 저도 화가 나서 아주 호되게 막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이 힘든이 과정 예 몇 달 동안 참이 아이들이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이 질문을 큐티했니 큐티부터 하자 하는 이것을 그리고 저도 이제 앉아부터 큐티부터 하는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면서 이것을 몇 달 동안 해 왔죠. 그런데 드디어 이제 지난주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 딸이 이제 엄마가 이제 볼리보로 탁 나가자마자 뭐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그래요. 어 나 뭘 보내야지 막 이러면서 그러면서 이제 핸드폰을 꺼내서 이제 하면서 하다가 다시 근데 나 중요한 일부터 해야지. 나 큐티부터 할게. 어 그러면서 이제 앉아서 큐티를 하더라고요. 예. 제가 몇 달 동안 이제 했던음 그 보람이 참 정말 눈물 나올 뻔 했습니다. 저는 이제 그동안 자녀들에게 큐티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 아빠입니다. 가족네 명이 식탁에 앉아서 말씀으로 나누 나눔하는 참 그 재미 참 그 맛을 미리미리 알려 주고 참 훈련시켜 왔다면 이런 일이 참 있지도 않았을 텐데 아 제가 오늘이 장인과 이게 똑같은 거 같아요.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밥 잘 먹고 건강해라. 밥도 먹여 주고 예 일찍 자고 쉬어라 하면서 다리 주물러 주고 울거나 힘들어 하면 안아서 이렇게 달래 주고이 뭐 그냥 뭐 이게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비 생각해 보면 이렇게 치우쳐서 오로지에 아이들에게 육적으로 먹이고 입히고 이렇게 재운 것밖에 이렇게 없는 거 같아요. 앞으로는 치우치지 않고 이렇게 큐티로 나눔할 수 있고 또 육의 양육뿐만 아니라 영적 후사로 하나님 앞에 자라 나갈 수 있도록 영의 것을 생각하는 그런 아빠 그런 양육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 적용문 드립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한 애통과 일시적인 화평 중에 어떤 마음으로 지체를 대하십니까? 자녀들의 육적 양육과 영적 양용의 비중은 몇대 몇이었습니까? 영적 방황의 시대에서는 세 번째로 대가지불의 십자가 적용이 필요합니다.이 마지막 단락은 레위인이 첩과 종을 데리고 에브라임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 위에 있습니다. 날이 전물 때 출발했기 때문에 얼마한가 어 해가 기울었습니다.이 바로 앞에는 여부스 성읍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때는 이제 왜 여부스 성읍이라고 했냐면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거든요.이 이 성읍은 후에이 다윗에 이르렀어야 다윗이 점령해서 예루살렘이 됩니다. 그런데 레인이 뭐라고 하냐면이 여부스이 여부스 성업변에 머물 수 없으니 우리가 무리해서라도 조금 더 나아가서 이방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곳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렇게 이제 기부아에 도착했고 광장에 앉았으나 아무도 그를 돌아봐 주지 않습니다. 참 레윈이 이렇게 직분까지 내려놓고네 첩까지 취하고 건화하게 먹고 마시더니 참 이제 와서는 이방 사람들의 성읍 어 거기는 못 들어가겠다고 참 우프죠. 네. 참 어 어쩌고이가 없습니다. 율법을 무슨이 코에 걸면 코걸리 귀에 걸면 귀거리쯤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지금 이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게 아니라 자기 유익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 선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첩을 취하지 말라는 딱 그 말씀은 딱 져버리고 이방인과 교주 교류하지 말라고 하셨다는이 말씀 그런 하나님의 뜻은 참 굳이이 부분은이 철두미하게 지키려는에 근데 우리도 어 그럴 때가 있죠. 십자가의 반대말이 내로 담불이 아닐까 합니다. 내 죄를 보는 십자가가 아니라 넌 안 되고 나는 돼. 넌 죄고 난 실수야 하는이 내로남불 때문에 우리 가정에 참 직장에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전쟁이 끊이질 않는 거 같아요. 아, 또 그런가 하면 제가이 부분을 이제 묵상하면서 또 한 가지 다른 측면으로이 본문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끝에 돈이 있다고 이제 하신이 말씀을 좀 시금속으로 이렇게 보면 레위인이 겉으로는이 경건한 척 또 율법을 지키는 척이 종에게 그렇게 말한 거죠. 그런데 실상은이 공짜를 좋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방인의 성읍에 들어가면 이제 여지없이 숙박비를 다 100% 지불해야 했지만이 동족에게 가면 그 법에 의해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를 늘 대접하라. 왜냐면이 애굽에서 너희가 나그네 되었음을 기억하라고 이제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혹시나 공짜로 좀 아 먹고 잘 수 있지 않을까? 예. 그 하는 그 마음이 아마 숨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니 속지 않으시는이 하나님으로부터 치리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힘들게나 더 가서 보이지도 않는데 옛날에 뭐 불이 없었잖아요.이 동족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마지막 절처럼 냉대를 당황한 것이죠. 그리고 내일은 더욱더 엄중한 대가를 치르는 결말을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제 모습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이제 차가 고장나면 성도님 가게로 가서 팔아 줘야지 좀 거기서 이제 영업을 해 줘야지 하는 마음 그렇게 말했지만 제 진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깎아 주기를 싸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숨어 있었어요. 그 참 다 그렇더라고요. 뭐 음식점을 가도 치과를 갔을 때도 다 좀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라 하셨어요. 목사님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인생 살게 해 달라고 참 늘 그렇게 기도해 주시는데 참 저는 늘 이렇게 겉으로는음 이타적인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손익을 계산하고 있는 악함이 있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그 관계 안에서 그 사건 앞에서 상황 가운데서 어 구원 때문에 손해를 이렇게 감수하겠다 하실 때가 많으십니까? 아니면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손해를 어떻게든 방어하려고 하실 때가 많으십니까? 복음을 위해 많이 당하시면 오늘 내가 참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이 마음의 결을 더 정교하고 견실하게 맞추며 살게 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만약 죽을이 내 목숨 100억 주면 살려 준다면 100억이 있다면 집을 안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100억 뭐 천억보다 내 목숨이 소중한데요. 그런데 내 목숨보다이 소중한 내 영혼 살리신 그 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큰 선물을 받은 우리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참 10만 원에내어 놓는 것도 구원을 위해 전도를 위해 그거 이렇게 감당하는 것도 인색하게 구는 참 저절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참 마치 100억 받은 기쁨처럼에 그 구원받은 기쁨을 회복하고 떠올리며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좀 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먼저 그 대가지부을 하는 십자가 적용으로 전도하는 하루를 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참 이렇게 따지고 싶은 일, 억울 억울한 일 앞에 어 또 수차례 서게 되실 텐데 오늘 주신 말씀 기억하시면서 십자가 적용으로 구원의 통로가 되어 주시길 데가지불을 내가 하면서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으로에 구원에 통로되어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마지막 적용 질문입니다. 오늘 누구를 위해 자원함으로 구원의 값을 치르는 적용을 하시겠습니까? 늘에 봤던 봤던 사람에게 반대로 오늘 좀 주는 적용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영적 방의 시대에서 우리는 매순간 코람대오를 기억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구원의 양육이 더 중요합니다. 대가지불에 십자가 적용이 필요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하나님의 눈을 피해 악하고 음란하게 살아온 죄인입니다. 청년 때 교재를 돌아보면 다정하게 말하며 그 사람을 위하는 척을 했지만 실상은 제 음란을 채우기 위함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제는 회개하고 정말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다정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레위인의 소임과 사명을 잊지 않고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영적 방황을 자처하는 우리들의 악함과 약함이 있습니다. 불쌍 여겨 주시고 순간순간마다 코람대오의 의식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성령님의 효과적인 도움으로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우리 자녀들을 내 소유, 내 책임이라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분별을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사랑으로 자녀들의 범죄를 방임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는 영적 후사로 길러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도록 모든 자녀 우상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말씀을 취사 선택하지 않고 차례대로 큐티퇴하며 우연 아닌 창조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이 땅의 주의 교회 되게 하시고 고단 고된 하루의 삶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치열하게 적용하는 모습으로 사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한국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레이시아에 말씀 전하고 돌아오신 목사님의 눈물을 기억하여 주시고 눈물로 심으신 구속사의 그 열매가 그 땅에서도배 열매로 결실하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모든 피로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모든 교육부서 큐패와 양반 하반기 양육과 또 양교와 예목에 기름 부어 주시고 돌이켜 살아나는 은혜의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 붙들고 살기를 원합니다. 코람대오를 기억하고 왕이신 하나님 존전에 살아간다는 그 자부심과 감사와 즐거움을 가지게 하시고 영혼 구원을 위해 이타적인 적용을 정말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오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우리 계속해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시겠습니다. 먼저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을 그때가 바로 영적 방황의 시대라고 하십니다. 우리 가정에 방황하는 배우자, 또 방황하는 자녀, 방황하는 내가 있는 것은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 두지 않았기 때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 가정에 내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자녀들이 영적 후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공부시키는데 머무리지 않고 영적으로 양육하고 말씀으로 우리 자녀들을 잘 설득해 나갈 수 있도록 순간순간 지혜를 주시고 매일 바뀌는 현실 감각도 허락해 주시고 양육의 타이밍과 감정 조절에도 기름 부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부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돕는 배필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배우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결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번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내위인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 접을 취하고 하나님 또 있어야 할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리는 너무나 쉽게 떠나버린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버지 제 모습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무정합니다. 주여 주님 제가 정말 하나님을 왕으로 되지 못하고 하나님 내 자녀들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이제는 정말 주님께서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저의 가정에 아버지 되어 주시고 저 가정에 가정이 되어주시고 저 가정 왕이 되어주시옵서 가정마다 주님 와주셔서 깨어지고 깨어질 위기 가운데서 날마다 고통 가운데지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주님 불쌍 하나님 돌이켜 살아나는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왕이 되게 하여 주시옵서 우리의 자녀들로 키울 수 없다 도와주시옵소서 살주시옵서 아버지 아이들 엄청 크리스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세대가 영적 방황의 세대가 된 거지 겉으로는 다정하지만 속으로는 무정한 우리들의 죄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제는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이 세대를 섬기는 주의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먼저 기복을 내려놓고 구원을 위해 데가지불을 즐거이 감당하는 한국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회개와 각성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떡을 나눠주는이 사명의 자리로 돌아오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번 부르시고 다시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나를 주님께서 말씀으로 주님 주셨사오니 아버지 주 말씀대로 주님과 그 역사를 주관하여 주시옵시고 책임 주시옵시고 붙잡아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세대를 불쌍하 >> 하나님을 모르는 다음 다른 세대가 아니라 정말 영적 구상 되어서 하나님만 섬기는다음 세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서 정말 믿음의 다음 세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서. 너무나 좋고 나서 너무나 극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들을 보게 되 아버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이렇게 급속도로 하나님을 떠날 하나님 두렵습니다. 아버지 내가 똑바로 살게 하시고 내가로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내가 먼저 규하는 뒷모습을 보여는 그런 부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이 정말 먹이고 입히는 육적인 양육에서 그치지 않도록 주여 도와주시고 하나님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 타이밍을 주시 하나님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구원을 위해서를 감당하는 주시옵소서 >>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화평이 깨어질까 봐 복음을 전하지도 죄를 죄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역행하는 모든 범죄에서 돌이켜 살아나는이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삶의 전 영역에서 내로남부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화평과 회복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이 시간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위정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우연하는 창조의 시간 속에서 2000년대를 살아가는이 이유를 현재의 이유를 말씀으로 해석하고 인생의 목적인 거룩으로 나아가는이 나라 되게 해 달라고 다시 주님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버 아버지 하나님 정말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이 가운데 살라가 없으면 없 >> 아버지 하나님 인권을 시하여 하나님 인권을 인권이 왕노릇하는 하나님 주시옵을 하면 좋습니다든 정책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버지이 나라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없고 예배도 없어질 테니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여 정말이 나라가 다시 말씀 앞에 설 수 있도록 다시 코람대 앞에 설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 하나님 정말 왕이 없는 그때를 살아가고 있 주여이 땅에 하나님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그 나라가 될 수이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하나님 99%가 아니라 100%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으로만 하나님 속이지 않는 그런 모든 위정자들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양심을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하나님 하나님을 두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나라 될 수 있도록 나라를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옵시고 아버지 주시옵서 주님 나 주시옵소서 오늘도 병상에서 질병과 씨름하는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또 겉으로론 괜찮은 것 같아도 마음의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지체들도 있습니다.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이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돌아봐 주시고 육적인 회복뿐만 아니라 영적인 회복에 다다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고통 가운데서 나보다 더 아파하시면서 나를 기다리시는 우리 주님을 보고 만나게 하시고 주님의 따뜻한 그 회복과 영접을 받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오랜 투병에 지치지 않도록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치료에 진전이 있도록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육신은 아프지만 우리 영은 정말 기쁨과 감사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의 힘과 오늘의 용기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지막으로 주님 한번 크게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아버지 >> 아버지이 시간 아버지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 우리 질병 가운데고 아버지 신의 곳 있 아버지 하나님이 올가 되어서 우리를 지르고 아버지 이렇게 힘들게 하는 아버지 그 마음에 우리 마음이 참 녹아내리고 하나님 우리 마음이 참 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주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우리 마음을 아버지 주님 앞에 다시 가지고 나아갑니다. 우리 아픔을 하나님 우리의 고통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여 그 하나님 주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보혈의 피로 하나님 덮어 주시고 하나님 영접해 주시고 하나님 우리를 끌어나 주시옵소서. 우리 한분한 성도님들의 아픈 곳에 아버지 찾아가 말씀을 하여 주시고 아버지 그 치료에 진전히 있게 하시고 하나님 고통을 감하여 주시고 온전히 회복되는 은혜로 하나님 나아가서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이 영접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사람의 영접으로는 회복되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끌어하나 주시고 하나님 따뜻 따뜻한 주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여 주시고 하나님 하나님 주님의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도록 하나님 굳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참 이렇게 회개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하나님 하는 그렇게 주님 앞에 라파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주님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의 >> 계속해서 성도님들 개인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시고 돌아가시겠습니다. 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내용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