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설교] 큰 용사여 / 사사기 6:11-16 - 이성훈 목사 | 20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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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QTnoony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5-07-13 12:00본문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사기꾼 증후군”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인생이 잘 풀리고 성공하는 사람들일수록 ‘아 지금 내가 사기치는 거 아닌가? 내가 이럴 자격이 있나? 내가 지금 이래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유명한 영화 배우죠, 톰 행크스도 어떤 그 인터뷰에서 자기가 이랬다고 고백을 했다 그래요. 조사를 해 보니까 성인의 무려 70%가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사람과 결혼해서 같이 살 수가 있지? 이거 꿈이야? 이거 생시야? 대박’ 매일 이러고 계시죠? 그런데 또 정반대 현상이 있대요. 이거는 사람 이름이라 가지고 제가 한국말로 바꾸질 못하겠는데요.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합니다. 이건 뭐냐면 또 무능할수록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걸 우리가 제일 쉽게 볼 수 있는 예가 자동차 운전인데요. 한 리서치 기관에서 조사를 하니까 운전자의 7-80%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다. 이렇게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이게 사실 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진짜 실력자는 이렇게 자신을 부족하게 여기고,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는 이상한 역설이 우리 삶에 있습니다.
기드온은 사사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기록하고 있는 사사예요. 무려 100절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또한 가장 기적적인 승리의 주인공이기도 해요. 300명 데리고 무려 13만 5천 명이나 되는 대군을 격파했거든요. 그런데 이 기드온이 원래부터 이렇게 대단한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어요. 오늘이 기드온 같은 우리도 주님이 “큰 용사여” 이렇게 불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건 우리가 크기 때문이 아니죠. 우리를 불러 주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은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
첫 번째는 ‘겁쟁이’를 부르십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
여기는 오브라를 다스리는 요아스가 기드온의 아버지죠. 말하자면 요아스의 집무실이에요. 근데 이곳에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앉았다는 것은요, 이분이 그냥 쉬려고 잠깐 앉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임금님이 자기의 보좌에 좌정한다고 할 때 쓰는 단어이고요. 또한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여기에 거하신다. 우리 장막에 거하신다라고 쓸 때 하는 그 단어를 썼어요. 그러니까 이거 무슨 말이냐? 사자가 여기에 앉으셨다는 것은 이제 이곳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겠다는 표시입니다. 7년 동안 미디안의 괴롭힘을 받고 있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임한다는 그 징표인 거예요. 미디안의 괴롭힘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이들은 파종 때마다 메뚜기 떼처럼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 쓸러갔습니다. 수학 때가 아니라요, 파종 때 씨를 뿌릴 때예요. 그러니까 이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온 목적은 곡식을 더 얻으려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 농사를 망쳐 놓는 것입니다. 살 소망을 끊어 놓는 거예요. 무조건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이들이 쳐들어온 목적이었습니다.이 이 깊은 절망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었어요. 그런데 이 뻔뻔한 이 염치없는 부르짖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다시 들어 주시고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마침 오늘의 주인공이 기드온은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살린 그 밀이 있었던 거예요. 미디안이 뽑아가지 못한 그 밀을 가지고서 타작을 하는데 이 타작을 어디서 하느냐? 정상적인 그 타작 마당이 아니라 포도주 틀에서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 틀은요, 땅을 넓게 판 다음에 거기에 돌판을 깔아서 포도를 밟아서 즙을 내게 하는 그러한 웅덩이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우리 공중 목욕탕 가면 욕탕이 있잖아요. 큰 타일로 싼 그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그 안에 들어가면요, 그 안에 들어가서 엎드리면 몸을 숨길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기드온는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지금이 포도주틀에 숨어서 밀알을 몰래 비벼 가지고 타작을 하고 있는 것이죠. 잔뜩 긴장했을 거예요. 미디안 사람들이 보나 안 보나 몸을 숨긴 채 움프리고 앉아서 그 밀알 몇 개 안 되는 거 비비면서 얼마나 지질한 모습이에요. 여러분 상상을 해 보세요. 얼마나 겁쟁이의 모습입니까? 그런데 이건 기드온이 특별히 겁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게 아닙니다. 7년째 계속된 미디안의 공포 때문이에요. 살 소망마저 끊어 놓는 이 미디안의 폭력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누구라도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죠. 다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 겁쟁이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십니다.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이 깜짝 놀랐을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이 소리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라 그럽니까? “큰 용사여” “백전 백승하는 가장 강력한 전사여”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것도 원어를 보면요. 그 앞에 정관사가 있어요. 여러 큰 용사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그 큰 용사여. 유일한 큰 용사여 이렇게 지금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기드온 너를 콕 집어서 지금 너와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고 지금이 사자가 전하는 겁니다. 너희가 아니라 단수로 너예요.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지질하게 포도주 만드는 틀에 들어가서 몰래 숨어서 지금 밀까고 있다가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랑 특별히 함께 계신다.” 이런 엄청난 말을 들으니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내가 큰 용사라고?’ 지금 나 같은 겁쟁이가 믿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현실만 바라봅니다. 이 순간만 바라보는 거예요. 현재 내 모습, 내 상황, 내 조건만 놓고서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분이 어떻습니까?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예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늘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좋을 때도요. 사실 좋을 때도 우리 마음은 뭔가 늘 두려운 게 깔려 있어요. 멈춰지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가 있는데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고, 현재는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흘러가잖아요.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세요. 영원 아래에서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을 한 번에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서론, 본론, 결론을 모두 알고 계세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다 무서운 거 한 가지씩 다 있지 않습니까? 저도 고소 공포증, 그리고 저는 치과 공포증이 있어요. 그리고 또 아내 공포증도 있습니다. 마누라 공포증. 이거 정말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무대 공포증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설교를 이렇게 해야 되는데 저는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하는게 너무 너무 사실 두려워요. 제가 너무 잘 감추다 보니까 티가 안 나죠? 속으로는 지금 막 포도주틀에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에요. 그러나 이런 우리를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뭐라고 부르십니까? “큰 용사여” 불러 주시는 거예요. 겁이 많은 우리를...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두려운 게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이런 분들 계실 수 있어요. 그러나 그분들은 어떤 분이냐? 바로 미디안 같은 분들이에요. 그분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줄 아시고 회개하셔야 될 거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겁쟁이면서 동시에 그거를 감추느라고 힘들고, 또 그게 들킬까 봐 또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이런 우리를 “큰 용사여” 작은 용사, 중간 용사 아니고 “큰 용사여.” 불러 주십니다. 그것도 “그 큰 용사여” 가장 용감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특별한 용사라고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요, 불러 주신다는 거예요. 불러 주신다는 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늘 두려워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갑자기 용감한 사람이 되겠어요? 우리 상황은 변하지 않지 않습니까? 무서워하는 마누랑 그대로 있고 남편은 그대로 있잖아요. 상황이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큰 용사라고 불러 주시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죄인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완전한 의를 근거로 해서 의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 갑자기 변해서 죄인이었다가 갑자기 변해서 완전한 의인이 되는게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이 땅에서 우리가 보이는 이 행위로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도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잘못하고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언제까지요? 신학교 갈 때까지? 목사 될 때까지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를 지울 수밖에 없는 여전한 죄인인 거예요. 그러나 이런 우리를 주님이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의라고 하는 거예요.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거예요. 주님의 의로 우리의 불의를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2편 1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죠.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기의 죄가 가려진 자는 자기의 죄가 “없어진 자는” 이라고 안 쓰시고, 자기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고백합니다. 오직 은혜인 거예요.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두려움만은 우리를 하나님이 “큰 용사여” 이 은혜의 부르심으로 덮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이것이 주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인 거예요. 주님이 함께 하시는 방식이 여전히 겁쟁이인 나를 “큰 용사여”, “그 큰 용사여” 불러 주시는 것이라 이 말입니다. 오늘도 이 부르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예요. 용사를 용사라고 부른다면 그게 무슨 은혜겠어요? 거기에 무슨 기쁨이 있겠어요? 당연한 거지. 그러나 우리와 같은 겁쟁이를 “큰 용사여”라고 불러 주시기 때문에 이것이 은혜요, 여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요 저와 여러분은 이제 겁쟁이가 아닌 거예요. 아 물론 우리가 볼 땐 겁쟁이에요. 여전히 두려운 게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라 뭐예요? 큰 용사다. 하나님이 불러 주신 큰 용사. 하나님이 특별히 인정해 주신 그 큰 용사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으로, 아내로, 딸로, 아들로, 엄마로, 아빠로, 형제로, 자매로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들이 우리는 너무 두렵고 떨리지만 괜찮습니다. 괜찮은 거예요. 힘든 남편, 힘든 아내, 힘든 자녀 있어도 괜찮은 거예요. 오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큰 용사로 불러 주시는 그 주님의 부르심을 믿고 어디서든 우리 구원의 사명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적용질문1
요즘 제일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숨어있는 나의 포도주 틀은 어디인가요?
겁 많은 나를 주님이 부르신 자리는 어디인가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마음속에는 상처와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폭력적이셨고 외도까지 저지르셨어요. 형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상처가 너무 커서 마음이 병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믿음으로 가정을 지키셨지만 우리가 힘들면 고양이 걷어 찬다고, 화나면 고양이 걷어 찬다고 그러잖아요. 이 이 멀쩡한 이 아들에게 힘들 때마다 너무 힘들 때마다 이 아들에게 화풀이를 한 거예요. 그래서 결국이 청년은 이런 집에서는 나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잘 다니던 교회를 떠났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떠나면 답이 뭐예요? 술과 담배와 음란뿐이에요. 그래서 세상에서 성공에서 이런 가족들에게 복수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이 청년에게 특별한 마음을 주셨어요. ‘이렇게 살아서 안 되겠다. 내가 공부를 해야 되겠다.’ 근데 이게 진짜 은혜인게 그 생각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또 공부에 빠져서 공부에 몰두를 했다 그래요.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그 세상적인 악귀로부터 멀어졌고, 그 공부하는 힘든 것들을 어머니와 나누면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됐고, 그리고 또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또 엄청난 은혜를 주셔서 그 아버지가 가정으로 돌아오시고, 형도 가정을 이루는 놀라운 기적이이 가정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곧 또 다른 엄청난 시험이 찾아왔어요. 아버지가 해외에서 여러 가정들을 거느리고 2중 생활, 3중 생활 하신게 드러난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이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하나도 미안하지가 않다. 이걸 뭐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나도 미안하지가 않아.”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이 청년이 너무 가슴이 찢어졌다는 거예요. 무너져 내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동시에 이 청년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합니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우리의 그 왜곡된 상처와 죄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되물림 되잖아요.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이 이 두려움이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엄청난 고난이 왔지만 이 또 두려움이 생기니까 그 고난 때문에 그것이 다시 고난이 되어서 공동체에 꼭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이런 인생 시험장에 한 구원자가 세워졌어요. 청년에게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큐티하면서 깨달았어요. 언제든 다시 교회 떠날 수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깨어 있게 하시려고 이 가나안 민족 같은 이 어마어마한 고난을 남겨 두셨구나. 그러니까 여기서 죽을 생각, 떠날 생각 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내가 말씀으로 더 인도함을 받아야 하겠구나. 여러분, 이것이 정말 큰 용사의 고백입니다. 말씀과 공동체가요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모두 지금 우리 사사기 큐티하고 있는데 매일 큐티 더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 첫 번째가 뭐라 그랬죠? 겁쟁이를 부르십니다.
두 번째는 ‘의심쟁이’를 보내십니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기드온이 엄청난 은혜의 부르심을 입었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요? 놀랍게도 의심의 질문을 계속해서 던집니다. 긴 질문을 던져요. 첫 번째 질문은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이렇게 가정으로 시작합니다. 좀 전에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 들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가정하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이 말 못 믿겠다는 거예요. 의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진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괴롭고 끔찍한 일, 이 고난을 어떻게 내버려 두시겠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미디안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살소망이 끊어지는 괴로움을 당할 수 있냐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이 실질적으로 이 고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말 나는 의심스럽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남의 얘기 얘기가 아니죠. 우리도 너무 힘들 때는 들은 말씀에 의심이 생기는 거예요. 또 두 번째 질문은요 조상들이 우리한테 말해 줬던 그 기적, 출애굽 때 우리 조상들이 경험했다는 그 기적,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대적을 물리치는 그 엄청난 기적이 만약에 있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 그런 기적 없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시고 있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있었다는 그 기적 나는 잘 안 믿어진다. 의심스럽다 이겁니다. 이것도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인 거 같아요. 우리도 너무 힘들면 우리 지체들의 간증을 나와 상관없는 얘기로 듣고 팔장 끼고 듣지 않습니까? 믿으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고는 기드온은 스스로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고,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고, 팔아넘기셨다고 단정을 지어 버리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 자체를 이제 의심하는 겁니다. 엄청난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이 도대체 왜 이렇게 의심할까요? 판단의 기준이 자기의 생각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맞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딱 세워두고 그것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이 설사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나는 믿을 수 없다. 나는 그게 의심스럽다. 내 기준과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단정하는 것입니다. 이 의심은 결국에는 불신이 되어 버립니다. 기드온이 기준으로 세운 자신의 생각 무엇이겠습니까? 무슨 확신으로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렇게 따박따박 따지면서 질문을 던질까요? 그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에게 고난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 잘 믿으면 행복해야 된다. 내가 교회 잘 다니면 사업 실패해서는 안 된다. 내가 큐티 열심히 잘하면 내 아들 딸 공부 잘해야 된다. 내가 목장에 잘 나가면 내 남편 내 아내 나의 말 잘 들어야 된다. 예수 믿으면 행복해야 된다. 우리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 기복 신앙의 원리인 거예요. 그런데 누가 이 기복 신앙이 옳다는 것을 보장해 줍니까? 기복 신앙이 신앙의 원리라는 것을 도대체 누가 보장해 주는 거예요? 성경을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님은 그것이 기복 신앙을 보장해 주신 적이 없더라고요. 기복 신앙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지 우리가 신앙의 원리로 삼을 것이 아닌 거예요. 이렇게 잘못된 원리를 굳게 믿고 그걸로 현실을 판단하고 내 자신을 판단하고 내 가족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아가서 하나님마저 다 판단해 버리면 그 인생 어떻게 돼요? 늘 비판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그렇게 이제 죽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서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이렇게 의심병 걸려서 피곤한 기드온을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직접 등판하십니다.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말씀하시니까 기드온이 그걸 무시를 하는지 도대체 들어먹질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다가 답답하셨는지 이제 자기 정체를 드러내시고 하나님이 직접 기도원을 향해서 기도원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가라.”
“어디로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러 가거라. 내가 너를 보내는 거야. 가거라.“
하나님은 기드온과 논쟁하지 않으셨어요. 의심에 빠진 그 기드온의 그 의심을 풀어 주시려고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그저 의심쟁이 기도원을 그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받아 주세요. 안아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오히려 그를 보내십니다. 가라고 보내세요. 어디로 보내세요? 미디안의 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그 자리로 보내시는 거예요. 지금 기드온은요 자기 믿음 하나 지키기 힘든 아무 힘도 없는 그러한 상황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백성을 구원하는이 엄청난 사명의 자리로 가라고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 사명의 자리로 무슨 힘으로 가라고 하세요? 무슨 힘으로 구원하라고 하세요? 너의 힘으로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기드온에게 있는 힘이 무슨 힘이에요? 무슨 힘이에요? 겁내는 힘, 의심하는 힘. 사실은 아무 힘이 아닌 힘밖에 남지 않은 그런 연약한 기드온이에요. 하나님은 내 힘으로 구원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주는 힘으로 구원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의 힘으로 구원하라세요. 무슨 뜻이에요? 두려워하는 너의 모습 그대로, 의심하고 있는 너의 모습 그대로, 어떻게 하라? 가라. 그냥 가라. 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시죠. “내가 너를 보내는 거 아니니? 내가 보내는 것이잖아. 너의 힘 없는 거 내가 잘 알아. 그러나 의심에 빠져 있는 너를 보내는 것은 나야. 내가 가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라.” 이 이 말씀인 거예요.이 말씀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우리도 의심이 참 많죠. 말씀도 안 믿어지고 역사도 안 믿어지고 지체들의 간증도 또 권면도 믿어지지 않고 의심될 때가 너무도 많아요.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의심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은 설명이 아니라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의 짐을 지고 있더라도 주님께서 보내시는 그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되는 거예요. 의심의 치료제는요 좋은 설명이 아니에요. 의심의 치료제는 기적도 아닙니다. 의심의 치료제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사명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사명에 순종해서이 구원을 위해 크게 쓰임받는 큰 용사들로 다 우뚝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적용질문2
이것만큼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것은 무엇입니까?
지체들의 간증을 팔짱끼고 듣습니까? 두 손 모아 듣습니까?
의심을 멈추고 순종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 첫 번째는 뭐라 그랬죠? 겁쟁이를 부르시고요. 두 번째는 의심쟁이를 보내세요.
세 번째는 ‘계산쟁이’에게 약속하십니다.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 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하나님이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불러 주시고 또 사명의 자리로 보내 주십니다. 그러나 15절 시작이 “그러나”예요. 그러나 기도원은 꼼짝을 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계속해서 지금 기드온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기드온이 “그러나”에 머물러 있어요. 주님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그리고”가 나와야 되고, “그러므로”가 나와야 되는데, 기드온이 지금 주님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그러나”만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서 기도원은 또 질문해요. 그냥 “아멘”을 하고 가야 되는데 또 질문합니다. 그런데 사실 여러분 한번 우리 모든 것에는 다 이면이 있잖아요. 기드온이 지금 이렇게 믿음이 없는 모습이고 겁 많은 모습이고 의심이 많은 모습이지만 지금 하나님께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있어요. 계속 질문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여러분 질문하는 시간이 무슨 시간입니까? 퀘스천 타임이 뭐 하는 시간이에요? 바로 이게 큐티하는 시간이죠. 이렇게 기드온처럼 겁 많고 의심 많은이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에 오히려 살려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주님의 답을 구하는 큐티를 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니까 진짜 우리가 연약하고 힘들 때일수록 ‘이런 거 해서 뭐 해? 나 다 그만할 거야.’ 이럴게 아니라 더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줄 믿어요.이 기드온이 던지는 질문이 뭐예요?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무엇으로 구원하리까?” 기도원의 계산으로는요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미디안과 맞서 싸울 아무런 수단도 남아 있지 않 않아요. 뭐 당연하지 않습니까? 먹을 거리 지금 하나도 없는데 무슨 무기가 있겠어요? 게다가 기드온은 자기 자신도 자격이 하나도 안 된다고 지금 호소를 합니다. 집안도 별 볼 일 없고 자기는 그 별볼 일 없는 집안에서도 가장 하찮은 막내라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그러므로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어요. 다른 사람 몰라도 저는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갈 수가 없습니다. 이 기드온이 내놓은 결론이에요. 나가서 싸우려면 당연히 계산을 해야 되죠. 우리 예수님도 누가복음 14장에 보면요, 임금이 나가서 전쟁하려 할 때는 아군과 적군을 헤아려서 계산해서 그게 이길 가능성이 없으면 어떻게 하라? 화친하는게 맞다. 기드온이 지금 이렇게 계산하는 것, 미디안 계산하고 이스라엘 계산하고 그래서 안 된다 답내는 거, 이 계산하는 것은 사실 맞는 거예요. 잘하는 겁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이 계산에서 빠뜨린 거 한 가지가 있다는 거예요. 빠뜨린 거 하나.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 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세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하도 지금 믿지 못하고 계속 의심하고 계속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이러니까 “반드시”까지 넣어서 굳게 굳게 지금 약속을 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기드온이 계산에 넣치 않은 거, 계산해서 빼먹은게 뭐예요? 그 한 가지가 뭡니까? 바로 하나님인 거예요. 하나님, 반드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빠뜨렸기 때문에 지금 기드온의 계산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 가려고 하니까 상황 따지고 있고 조건과 자격 계산하다가 결국에는 잘못된 답 내놓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마음에는 다 계산기 한 가지 하나씩 가지고 있죠.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스스로 묻습니다. 이게 나한테 이익일까, 손해일까? 어떻게 하면 내 이익, 내 이익을 손해보다 더 크게 만들까? 우리는 끊임없이 계산해요.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계산하는 이성이 우리 마음의 감정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했던 계산 바뀌긴 바뀌곤 해요. 그래서 전도자는요 전도서 1장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 고백해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18)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예요. 하나님 떠난 지혜예요. 내 머리로 아무리 계산하고 또 계산해도 내가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그 계산은 결국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감정에 치우치든 상황에 치우치든 내 사연에 치우치든 무엇이든간에 치우쳐서 결국엔 잘못된 답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계산기는 한마디로 고장난 계산기인 거예요.
계산을 정말 잘하는 성도님이 계십니다. 아이 교육도, 커리어도, 가정도 정말 멋지게 잘해 보려고 머리를 많이 썼답니다. 변리사가 되려고 첫째 아이를 친정에 맡겨 놓고 독서실을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시던 중에 그만 그 갓난 아이의 팔 한 쪽이 빠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아주 엄청나게 더운 한 여름에 친정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아이를 업고 엄마가 있는 독서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날따라 이분이 일찍 집에 귀가 하신 거예요. 길이 엇갈렸습니다. 못 만났어요. 남편도 업무 때문에 일찍 퇴근을 할 수가 없어서 일 다 끝나면 갈게. 이렇게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똑똑한 분이 그냥 바로 병원 데려가도 될 텐데 너무 두렵고 어찌할 줄 몰라서 발만 동동 그러면서 남편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남편이 오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왜 이제 왔냐고. 이거 이렇게 늦게 오면 이거 덧나서 큰 일 난다고. 혼을 내시더래요. 여러분 이렇게 계산 잘하는 분도 사건 하나 너무 당황스러운 사건 하나 생기면 그 좋던 계산기가 작동을 멈춰 버립니다. 상황이 통제가 안 되는 거예요. 하여튼 이 좌충우돌 하시면서 이 첫째를 키우셨는데, 글쎄 이 아이가 지금은 공부를 잘한다는 거예요. 공부를. 자, 그런데 여기서 또 이게 문제가 시작되는 거예요. 모든게 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둘째는 첫째가 공부를 잘하니까 ‘둘째는 더 잘 키워 봐야지’라고 하면서 이 계산기를 또 꺼내서 막 이제 두들기신 거예요. 유명한 유치원 입학 설명회에 갔습니다. 그 거기서 너무 은혜를 받으셨어요. 그래서 막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야, 내가 이곳을 이제 알았구나. 이제 알았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이곳에서 우리 둘째는 더 잘 교육시켜야 되겠다. 반드시 입학시켜야 되겠다.’ 이렇게 입학을 시키려고 했는데 그만 남편이 브레이크를 딱 걸었다는 거예요. 이거 안 된다. 여러분, 이런 상황이라면 이건 견적이 어느 정도 나와요? 한 1주 나오나요? 2주 나오나요? 한 달 정도 나오나요? 싸우는 거 말이죠. 평소 같으면 그렇게 싸울 일인데, 사실이 싸울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공동체에 이렇게 붙어 있다 보니까 남편이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그 순간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첫째도 하나님이 키워 주셨는데, 첫째를 키워 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내가 지금 또 내 힘으로 내 계산으로 뭔가를 해 보려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공동체에 속해 있는 주시는 은혜인 줄 믿습니다. 우리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말 그 깨닫게 하시는게 있는 거예요. 우리 계산기가 이렇게 고장났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 아니겠어요? 내 계산기 잘 고쳐서 더 잘 계산 잘하는 사람으로 그런 아이로 키우려고 우리는 애쓰잖아요. 그런데 진정한 지혜는 ‘아, 우리 안에 있는 이 계산기는 고장난 계산기구나.’ 이 이 한계를 인정하고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게 진정한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 부모님을 포함해서 우리 여기에 앉아 계신 저를 포함해서 모든 여러분 유명한 유치원 좋은 학교 입학시키는 거 물론 좋죠. 여러분 다 이제 잘 교육받아서 키우셔야 될 텐데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으로 큰 용사로 키우셔야 될 텐데, 그러나 그런 유명한 유치원 좋은 학교 보내는 것보다 그것보다 먼저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우리 여름 큐페에 우리 모든 자녀들 다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다 보내실 거죠? 아멘.
여러분, 계산으로 따지면 우리 주님보다 더 계산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어디에 있겠어요? 그렇죠? 그러나 주님은 가장 어려운이 방정식인 우리의 구원을 계산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사랑으로 하셨어요. 그 사랑으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내어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러나 큰 용사, 진정한 큰 용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약속을 오늘 우리에게 주고 계세요.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계산기 두드리면서 ‘이 사람과는 살 수 없다. 이런 아이 키울 수 없다. 이런 부모 밑에는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 이런 곳에서는 일할 수 없다. 이런 나라 떠나야 한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약속하세요. 큰 용사여, 큰 용사여 그 사명의 자리로 다시 가라.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이 주님의 약속에 어떻게 부응하시겠습니까? 주님, 제가 비록 겁쟁이고 의심쟁이고 계산쟁이지만 이 주님의 약속을 믿고 적용하겠습니다. 큰 용사가 되겠습니다. 저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께 이렇게 결단하고 약속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적용질문3
계산기를 들이대며 미루거나 피하고 있는 적용은 무엇인가요?
내 안에 있는 미디안 같은 죄는 무엇인가요?
이번 주 그것을 어떻게 치겠습니까?
공동체 나눔인데요. 이분은 모태의 신앙인이었지만 오랫동안 기복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첫째가이 희귀병 진단을 받고 둘째는 심한 자폐의 판정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희귀병은 잘 뭔가 보살펴 줄 수 있는 거라도 있잖아요. 잘 돌봐 줄 수 있는 거라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심한 자패는 해 줄 수 있는게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요. 어떻게 하면 이 자패를 좀 낫게 할 수 있을까? 이 한 가지 계산으로 좋은 유명한 치료 기간 찾아서 전국을 다니셨다고 합니다. 좋은 학교가 있다는 소식에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 이사까지 오셨대요. 그런데 그곳에 정착하고서 얻은 결과는 그 좋다는 학교에서 사기를 당해서 깊은 절망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통해서 이분이, 이 가정이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가 되셨어요. 하지만 말씀은 들리지 않았고 기도는 여전히 한 가지였습니다. “딸을 고쳐 주세요. 딸을 고쳐 주세요. 딸 좀 고쳐 주세요.” 너무 절박했다 그래요. 너무 절박한 나머지 치료비를 좀 대겠다고 로또를 그렇게 사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포도주 틀 속에 들어간 기드온 같지 않습니까? 정말 두렵고 의심하게 되고 계산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계셨던 거 같아요. 근데 이분이 엘리트시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사실 못 하는게 없는 분이세요. 그렇다 보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뭔가를 해야 될 것 같고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 교만한 생각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제 올라오는게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자기 죄를 보라는 말씀이 너무 듣기가 힘들었대요. 자기 죄를 보라는 것이… 그래서 교회에 떠날 생각까지 하셨답니다. 하지만 그 딸들의 고난이 있다 보니까 말씀대로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말씀대로 붙어 있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니까 드디어 우리 목사님 설교가 들리기 시작했고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답니다. 주신 은혜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고 자기 생각 강하고 조금만 인정받지 못해도 불만이 올라오는 자신의 교만한 죄악을 하나씩 하나씩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이 딸 고난도 해석이 되셨대요. 희귀병이나 자폐가 저주가 아니라 저주라고 생각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것이 저주가 아니라 너무도 교만한 내 자신을 낮추시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세팅해 주신 바벨론 포로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이렇게 해석된 것이 자기 인생에 주신 가장 큰 은혜라고 이분이 고백을 하시더라고요. 공동체부터 있었더니 큰 용사, 믿음의 큰 용사가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회개는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인데 이 딸이 딸의 병이 낳는 것보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인데,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그 고백을 하게 해 주셨네요. 그렇죠? 그래서 앞으로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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