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설교] 한 구원자를 세워 / 사사기 3:1-11 - 이성훈 목사 |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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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QTnoony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5-07-06 13:08본문
날짜: 2025.07.06
제목: 한 구원자를 세워
본문: 사사기 3:1-11
설교: 이성훈 목사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여러분은 시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저는 가방끈이 굉장히 길잖아요. 그래서 많은 시험을 오랫동안 봤는데요. 보니까 제가 45살까지 시험을 봤더라고요. 그렇지만 이렇게 많이 시험을 보고 또 저처럼 시험을 좀 잘 본 사람에게도요, 시험이란 단어는 참이 부담스러운 단어입니다. 학창 시절 저는 시험 때마다 제가 군인이라는 상상에 빠지곤 했어요. 시험이라는 전투에 임하는 군인 말입니다. 그래서 마치 그 무기를 준비하듯이, 전쟁 훈련을 하듯이 제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잘 준비한 이 무기들을 가지고 선생님이라는 적군이 낸 시험 문제들을 어떻게 다 부셔 버릴 것인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면서 공부를 했죠. 그래서 제가 시험 보는 시험장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쑥대밭으로 만들고 승리를 쟁취할 것인지를 상상하면서 공부하니까 공부하는게 조금은 재밌어지더라고요. 시험은 전쟁이에요. 합격과 불합격,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7월부터 우리가 큐티하고 있는 이 사사기는요, 여호수아에 이은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달라요. 여호수아는 승리를 향해서 올라가는 드라마잖아요. 그런데 사사기는 그 반대로 패배로 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에 마지막 부분에 가면 정말 그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져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사사기가 우리의 삶과 우리의 현실과 더 닮아 있습니다. 우리 삶도 승리보다는 패배가 합격보다는 낙제가 더 익숙하지 않습니까? 거의 100점만 맞았던 저도 전국 1등도 했던 저도 말이죠. 보니까 47점을 맞았던 적도 있더라고요. 시험이라는게 진짜 그런 거예요. 실패, 불합격 이것이 사실 우리한테 더 익숙한 겁니다. 국가적으로도 우리는 지금 굉장히 어려운 위기 가운데 있는데 이 시기에 사사기를 묵상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만 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우리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인생에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인생에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할 이유
첫 번째는 인생 시험장에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누가 던져졌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던져졌습니다.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신대요. 그런데 어떤 이스라엘이에요? 가나안에 정착 후에 그 가나안 땅에서 태어나서 자란, 말하자면 가나안 2세대, 3세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들의 특징은요, 무지예요. 가나안 정복 전쟁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행하신 그 놀라운 일들을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이잖아요. 그런데 이 가나안 2세대, 3세대의 백성이 이 핵심 정체성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 부모와는 전혀 다른 세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물으시는 시험 문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가나안 원주민들이에요. 이들은 이스라엘 정복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 가나안의 많은 종족들, 민족들 중에서도 강자들입니다. 식량도 풍족하고요. 무기도 최신이고 문화도 너무 발달했어요. 그리고 그 문화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종교는 또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들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 종교에 완전히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때로부터 무려 600-700년이나 지난 열왕기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종교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어요. 이런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풀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시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자기 백성에게 이런 문제를 출제하셨을까요? 두 가지 목적이 있어요.
첫째는 전쟁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요.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야다”예요. 그냥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게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겪고 삶으로 체험해서 체득한 확실한 지식을 말하는 거예요. ‘아, 인생이 전쟁이구나. 하나님 없이는 내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것이구나.’ 이것을 체험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거예요.
시험의 두 번째 목적은요. 전쟁터에서 그들이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를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실 다 아시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상태를 알 수 있도록 평소에는 전혀 모르는 우리의 실체를 알 수 있도록 드러내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이라는 이 시험 문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양육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생이 전쟁임을 알고, 그러니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성장하기를 바라셨어요. 이것을 한번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요? 이들은 태어나 보니까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에요. 그리고 태어나 보니까 가나안 원주민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가나안 이웃이 “야 여기 내 땅이야.” 으르렁 거리는 그런 사나운 가나안 이웃들이에요. 또 다른 곳은 아주 서로 돕고 지내는 그런 착한 가나안 이웃들이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선택권을 드린다면 이 두 가나안 이웃 중에 어느 이웃 옆에 살고 싶으세요? 당연히 착한 가나안인 옆에 살고 싶으시겠죠? 하지만 나쁜 가나안인, 착한 가나안인 없습니다. 별 가나안인이 없어요. 어떤 가나안인이든 우리를 인생의 인생이 전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한마디로 우리를 예수 믿게 해주는 가나안인이 최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 문제인 거예요. 그 문제들을 통해서 전쟁 같은 인생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되는 겁니다.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더 필요한 시험 문제, 더 좋은 시험 문제가 무엇일까요? 쉬운 가나안인일까요? 아니면 어려운 가나안인일까요? 우리에게 더 좋은 문제는 순한 가나안인이 아니라 사나운 가나안인입니다. 힘든 문제는 우리가 시험장에 있다는 것을 그냥 저절로 알게 해 줘요. 하지만 쉬운 문제는 우리가 시험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합니다. 우리는 어떻 어쨌든 이 땅에 내 뜻과는 상관없이 왔다가 갑니다. 부모도 환경도 우리가 고르지 못해요. 또 착한 이웃, 나쁜 이웃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지나서 생각하면, ‘그것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것이었구나’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마디로 하자면 던져진 존재예요. 어디로 던져졌습니까? 저푸른 초원이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낙원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시험장에 던져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시험장에 던져져 있습니다.이 시험 통과하지 못하면이 시험장 밖으로 우리가 나갈 수가 없어요. 시험에 합격해야만 시험장 밖을 나가서 진정한 낙원인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는 이 시험장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쉬운 문제 만난 인생은요, 시험 보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끝나는 거고, 어려운 문제 만난 인생은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끝날 뿐이에요.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는 한 구원자, 이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됩니다. 나를이 인생의 시험장에서 건져 줄 그 한 구원자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한 구원자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야말로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이 지옥 같은 인생 시험장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평생 이 안에 갇혀 살 수밖에 없어요. 오늘 시험 같은 사건 때문에, 또 사람 때문에, 환경 때문에 너무 힘드십니까? 또는 ‘시험 그게 뭐야?’ 생각도 안 날 만큼 편안한 환경 가운데 계십니까? 어떤 모양이라도 우리 삶에 이 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세워지시기를 소원합니다.
적용질문1
내 인생은 시험장입니까, 파티장입니까, 막장입니까?
내 주변에 남겨진 가나안 사람들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합니까, 불순종합니까?
우리 인생에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할 이유 첫째는 인생 시험장에 던져졌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악을 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가나안 사람이라는 이 시험 문제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나름 열심히 문제를 풀었어요. 그래서 답을 딱 써서 냈습니다. 그런데 그 정답이 충격적이에요. 네 글자 뭐라고 썼을까요? “불신결혼” 네 글자를 그 답지에다가 당당하게 아마 커다란 글씨로 써서 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가나안 불신자들에게 자기 아들딸 시집 장가 보내고, 또 결혼을 직접 하고 사돈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등떠밀려서 한게 아니에요.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하는데, 이건 그냥 주는 거 받았다는게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붙잡았다는 거, 의도적으로 취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기 딸을 줬다고 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줬다고 해요. 주었다고. 빼앗긴 게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가지고 내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볼까요? 여기에 이스라엘, 유다 지파에 가장 한 명이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 한 명 있어요. 그런데 이 딸이 혼기가 다 찼습니다. 그래서 주변 동네 총각들을 눈여겨 보고 있어요. 보니까 나무도구, 나무기구 또 돌기구, 청동기구를 가지고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좋은 거 좋은게 또 있을까 해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무리 좋고 멋있는 아이도 뭔가 2%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데 저 건너편 가나안 마을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요즘 가장 핫한 그 포도주 농장의 주인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 마을 전체가 아주 끼깔나게 멋집니다. 그런데 그 포도 포도농장 주인집에 아들이 한 명 있대요. 결혼할 나이가 된 아들이랍니다. 그것도 둘째 아들이래요. 그래서 그 집을 살펴보니까 그 집에서 쓰고 있는 농기구들이라는 것은 최신식 수입산 아이언 에디션이에요. 철기예요. 철로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집도 너무너무 큰데 얼마나 크고 좋으냐면 그 집 안에 글쎄 신상이 있대요. 바알 신상과 아세라 신상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걸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평소에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대리석을 골드 데코 금장식을 덧입힌 럭셔리 에디션 바알 신상, 아세라 신상을 집 바깥도 아니고 집 안에다 두고 산다는 거예요. 그래서이 아버지 머릿속에 계산기가 빨리빨리 빨리빨리 돌아갑니다. 눈도 막 돌아가요. ‘오, 우리 딸 저 집에 씨 집 보내면 인생 대박 나겠는데, 우리 집도 이제 드디어 재벌 사돈 되겠구나. 와, 이건 기회야. 이거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다.’ 이렇게 그 아버지는 믿음의 기준은 장롱 속으로 슬그머니 밀어놓고 이제 세상의 행복 조건을 붙잡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불신 결혼의 본질이에요. 거룩 대신에 행복을, 믿음 대신에 계산을, 그리고 말씀 대신에 이익을 붙잡는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여러분 너무 잘 알고 계시죠? 불신 결혼의 결과는 우상숭배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이렇게 불신 결혼을 이스라엘 백성이 답안에 딱 써서 냈는데 하나님은 뭐라고 채점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악을 행했다. 악을 행했다. 번역해 드리면 빵점이다. 이거예요. 빵점이다. 부분 점수 없나요? 저희 아들이 시험 꼭 보고 오면 주관식이 그렇게 좀 아쉬운게 있나 봐요. 그래서 “아 이거 부분 점수 받으면 1점도 올라갈 것 같은데 2점도 올라갈 것 같은데” 이렇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에는 부분 점수 없어요. 불신 결혼이든 우상 숭배든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악이기 때문에 그저 빵점입니다. 이것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에요. 그들은 가나안 민족과 잘 어울려서 살면 사돈 맺으면 동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천년 만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빵점이에요. 이제 가나안 사람들에 확 빠져 가지고 불신 결혼과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빵점을 맞은 이스라엘…그런데 하나님께서는요, 이미 답을 사실은 다 알려 주셨어요. 신명기 7장에 보면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거기 분명하게 기록해 두셨습니다. 불신 결혼은 100% 우상숭배로 이어지니까 절대로 절대로 결혼하지 마라.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우리나 인간은 이렇게 약하고 악한 존재예요. 우리가 늘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기를 또 기대하고 기도하고 노력하잖아요. 그러나 선한 영향보다 악한 영향 받는 것이 배운 거예요. 교회 같이 가자는 말 100번 하면 그거 한 번 듣는 거 너무 어렵지만, “야 오늘은 중요한 모임이 있으니까 우리 교회 하루 쉬자”,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니까 예배 한번 빠지자.” 이런 말은 한 마디만 들어도 100번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니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만나면요, 같이 두 손 잡고 예수 믿게 될 확률보다 멀리멀리 떠나서 예수님 믿지 않게 될 확률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거예요. 그냥 무조건 우상숭배로 나아가면 나아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약할까요?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무리 노력해도 악밖에 없을까요? 그것은 우리 중심에 언제나 자기가 있기 때문이에요.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열심, 자기 판단, 자기 욕망. 언제나 내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자기 중심성이야말로 교만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진짜 우리가 솔직히 교만해지고 싶어서 교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이타적이고 싶지 않아서 이기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러분이 자기 중심성은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우리 존재에 그냥 딱 달라붙어 있는, 아니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자기 중심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만의 결론이 뭘까요?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 (신명기 8:14)
교만의 결론은 하나님 잊어버리는 겁니다. 교만은 내 방식만 고집하게 만들어요. 한 목자님은 아버지 없이 자한 상처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은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좋은 아빠 되고 싶은 마음, 이 좋은 마음이 오히려 언제부터인가 자기 방식이 되어서 아들에 대해서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아들을 못마땅해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을 도구 취급하고 아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 아들을 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와서 양육을 받으면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그 말씀을 듣고 배우고, 또 자기 사건 속에서 이렇게 적용하고 묵상하면서 드디어 그게 인정이 되니까, 정말 내가 이렇게 내 방식대로 내 고집대로 키 잘 키워 보려고 하는 아들보다 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또 회개하게 되셨다 그래요. 그래서 적용으로 “정신과 약을 아들이 아니라 집사님이 드셔야 돼요” 라는 공동체의 처방에 따라서 약을 드셨다고 합니다. 이분이 또 평생 어머니를, 아버지일찍 가셨으니까, 인생의 모든 자신의 불만이 다 어머니한테 가서 어머니를 평생 탓타고 원망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우리 잠언 큐티했잖아요. 잠언 큐티하면서 거기에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골짜기의 사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잠언 30:17)라는 말씀을 보고 겁이 화들짝 나신 거 같아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독수리에게 먹힐까 봐, 까마귀에게 쪼일까 봐, 어머니를 향한 자기의 생각을 한번 생각해 보신 거예요. 그러면서 그 어머니를 탓타고 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기 눈에 씌워진 그 이상한 고집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마침 어머니께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가 왔는데 평소 같으면 답장도 안 할 터인데 그날 어머니께 “나 나낳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 답장을 보내셨대요. 그랬더니 어머니도 “내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고생만 하게 해서 미안하다.” 이런 또 답장을 보내셨대요. 이분이 끝까지 이렇게 공동체로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자기 방식대로 살았다면 평생 아들 괴롭히고 평생 엄마 탓하다가 인생 끝났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공동체로 인도되어서 말씀 앞에서 자신의 고집이 보이고 꺾이지 않았던 자기의 교만을 보고 회개하고 공동체 양육에 따라 따라서 이렇게 이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니까 그 악행이 그 질긴 악행이 조금 멈춰지게 된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도 이렇게 정말 끊을 수 없는 악들이 다 있잖아요. 뭐 가족을 향해서 이러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선 오죽하겠어요. 직장에서, 또 이웃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끊어지지 않는 우리도 싫은, 우리도 꼴보기 싫은 우리 그런 악행들이 있을 텐데, 공동체에 잘 붙어서 날마다 말씀 앞에 서서 큐티하시면서 그것들을 가지치기 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행이 멈춰지게 할 줄, 잦아들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근데 교만을 꺾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이렇게 악행을 하다가 하나님 잊어버려서 멸망할 인생인데, 그러면 아무 소망이 우리에겐 없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여러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화를 내면 너무 싫죠, 그렇죠? 그러나 여러분 너무 싫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화낸다는 것은요, 아직도 나에 대해서이 관심과 기대와 애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거든요. 하나님의 진노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진노는 포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이미 악행밖에 할 수 있는게 없는 빵점짜리 인생이니까 난 너희를 버릴 거야.” 이것이 아니라 그런 포기하심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섭이고 관심이고 사랑입니다. 사랑하시는만큼 진노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항상 우리 생각이 우리 사고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서 무슨 말이든 꼬아서 생각하는 또 악행이 있잖아요. 제가 사랑하는만큼 진노하십니다. 사랑하는만큼 화내는 거예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이것을 집에 가져가셔서 아이들한테 마음대로 화를 해내놓고서 “야, 내가 너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오늘 목사님이 사랑하는만큼 화내는 거라 그랬어.” 이러시면 돼요, 안 돼요? 안 되는 거예요. 이거 사실 이게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제가 설명을 해 드릴 수 있겠지만 그러면 여러분들 다 주무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랑하는만큼 화낸다” 이 말은 맞아요. 맞는 거예요. 사랑하는만큼 화내는 거예요. 그래서 화를 받는다고 우리가 무조건 싫어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화내는만큼 사랑한다는 말” 명제는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거꾸로 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우린 자꾸 거꾸로 한단 말이죠. 화내 놓고서 “내가 너 사랑해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우리 빵점짜리 인생을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진노하심으로 찾아오십니다. 왜요?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 이스라엘을 저 메소보다미아 저 북쪽에 있는 메소보다미아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아 넘기세요. 팔아버리세요. 그 종살이하게 하십니다. 노예로 팔아 넘기시는 거예요.
자 드디어이 편안하게 가나안의 포도 농장 부러워하고 불신 결혼시키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빵점인 줄 전혀 모르고 그냥 룰루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빵점짜리 채점이 된 시험질을 떡하니 받아든 거예요. 시험장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빵점짜리 성적표 받게 된 겁니다. 잠이 확 깨지 않겠어요? 그런데 아픈 건 아픈 거예요. 그렇죠? 하루 아침에 가지고 있던 걸 다 빼앗기고 자유인으로 살다가 노예 살이하게 되었으니 이 고난을 어떻게 쉽게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너무 슬프고 억울하고 절망스러운 거예요. 살 수가 없습니다. 죽고 싶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런 절망 또한, 이런 분노 또한 ‘이런 죽겠다’라는 생각 또한 하나님 없이 나만 바라보면서 사는 우리의 악행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요,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악을 행하는 것이고요. 교만해지니까. 또 힘들면 힘든 대로 악을 행할 뿐입니다. 죽을 생각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는요,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조건이 아니라 가나안 포도원이 아니라 돈 많은 사돈이 아니라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반드시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하는 거예요. 이 악행을 멈춰 줄 한 구원자. 이 악행에 끊어지지 않는 이 고리를 끊어 줄 한 구원자.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깊은 그 존재적인 절망 속에서부터 우리를 건져내 줄 한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성도에게는요, 이 절망은 끝없는 구렁텅이가 아니에요. 우린 절망하면 다 죽어야 되잖아요. 절망의 구렁텅이라고 말하잖아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에 성도에게는 이 절망은 오히려 죽고 싶은 나의 절망 가운데서 오히려 주님을 다시 한번 찾고 나만 숭배하는 나의 삶에서 돌이켜서 다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인생의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세워질 때 우리는 행하던 악행을 멈추고 인생의 방향을 구원을 향해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질문2
불신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요즘 내가 노예처럼 섬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 때문에 절망하며 주님게로 돌이킨 적이 있습니까?
제 부모님과 아내는요, 정말 흑백처럼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부모님은 제게 싫은 소리 한, 제 기억으로는 싫은 소리 한 번 하신 적 없는, 요새는 좀 이런 단어 쓰기가 조금 제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처럼 또 확실한 단어가 없더라고요. 우리 부모님은 저한테 싫은 소리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최고의 여당이시고요. 제 아내는 날마다 저를 비판하는 최고의 야당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평생 저를 자신감으로 꽉꽉 채워 주셨고요. 하지만 아내는 저를 절망감으로 꽉꽉 채워 주었고 채워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요, 저를 주님께로 돌이키게 한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절망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구속사의 길로 이끈 사람은요, 최고의 여당인 부모님이 아니라 최고의 야당인 아내란 말이죠. 부모님께서 제공하신 이 편한 환경은 제 속에 가득한 악하고 음란한 죄악들을 가려 주더라고요. 그 좋은 환경이 그 감사한 환경은 오히려 제 속에 숨어 있는 악을 더 꼭꼭 숨겨 주더라고요. 하지만 아내가 수고해 주는 힘든 결혼 생활은요, 제가 숨기려고 했던 것조차 다 드러나게 해 주더라고요. 그러니까 결국 저의 구속사의 주인공은 당연히 예수님이시죠. 구속사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신데, 이런 거 가지고 또 까다롭게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특히 저 같은 교만한 신학자들은요, 무슨 무슨 말을 이렇게 하잖아요. 그러면 꼭 그렇게 꼬투리를 잡아요. 제가 그래서 아는 거예요. 누구 비판하는게 아니라 제가 맨날 그러거든요. 저 말은 뭐가 잘못됐고 저 말은 어디가 틀렸고, 구속사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 가장 옆에서 두 번째 주인공으로 수고해 주는 사람은 저를 저를 자신감으로 꽉꽉 채워주는 우리 여당 부모님이 아니라, 저를 밟아주고 절망감으로 채워주는 저의 사랑하는 아내다 이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수고를 덜어 주는 사람이 우리 구속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구속사의 주인공은요, 우리 때문에 수고하는 사람, 지금 내가 너무 힘들어 하는 사람, 지금 막 머릿속에 막 떠오르시죠. 막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들 또 우리들의 구속사의 주인공인 줄 믿습니다. 잘 감당하시면서 같이 끝까지 잘 가시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에 한 구원자가 세워져야 될 이유는요. 첫 번째는 인생 시험장에 던져졌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는 악을 행할 수밖에 없기 악을 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구원만이 인생의 답이기 때문입니다.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8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이 드디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이 부르짖음은 그냥 소리 지르는게 아니고요.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죽고 싶은 그 깊은 고통 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외치는 그 절규예요.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죽을 것 같은 환경 속에서 간절하게 외치는 이 절규가 이 부르짖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 같이 인본적인 사람, 교양이 충만한 사람이 이걸 보면요, 어떤 판단이 되느냐, 어떻게 정죄가 되느냐? ‘아, 이거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아니 자기들 좋을 때는 하나님 다 잊어버리고 저푸른 초원 찾고 가나안 포도원 찾고 재벌 찾다가, 이제 다 죽게 되어서 노예되어서 하나도 남지 않고 죽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이제 와서 부르짖는다고? 어떻게 저렇게 염치가 없을 수 있어? 어떻게 저렇게 양심이 없을 수 있어?’ 저 같은 사람은 그렇게 막 정죄를 할 거란 말이죠. 그러나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런 염치없는 기도도 귀하게 여기셔서 들어 주세요. 왜요? 자기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내 새끼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그들이 이렇게 염치없이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심판하시고자 했던 그 진노를 쏟아 부으시던 그 뜻을 돌이키세요. 이게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이제 살다가 정말 퇴로가 보이지 않는 그 문제 가운데 그 시험 가운데 놓일 때가 있잖아요. 그때 우리는 떠날 생각하고 탈출할 생각하고 죽을 생각하고 이혼할 생각하고 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절망의 순간에 퇴로가 안 보이는 그 상황에 그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돌이켜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거예요. 모든 부끄러움과 그 염치와 체면과 교양을 다 내려놓고 말이죠.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간절히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린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아니, 하나님께서 모든 걸 다 아시고 모든 걸 다 하실 수 있고, 그래서 모든 걸 다 정해 놓으셨는데 내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엔 다 하나님 뜻대로 되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지금 내가 이렇게 염치가 없는데,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뿐이라서 도저히 올 수도 없고 기도할 수는 더더욱 없는데, 그냥 이대로 끝나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또 인본적인 생각을 저 같은 사람은 하게 된단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기도를 들으실 필요도 없고 누구의 도움을 받으실 필요도 없으신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완전하신 분께서 당신이 움직이는 공식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넣어 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의 그 은혜의 구원에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자님은 회사에서 무시당하시 심하게 무시당하시면서 깊은 우울감에 시달리고 계셨어요. 그래서 하루는 회식까지 있어서 지친 몸이고 너무 힘들지만 회식도 회사의 일과이기 때문에 회식을 다 마치고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또 마침 그다음 날이 목장이 있는 날이었어요. 그러니까 권찰님은 그날 하루 종일 혼자 목장 준비하느라고 열심히 일을 하신 것이죠. 섬기신 것이죠. 그런데 남편이 회식한다고 늦게 오니까 짜증이 나셨던 모양이에요.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이유 있는 짜증인지라 목자님도 찔리는 바가 있어서 그다음날, 목장 당일 날에는 일찍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대요. 그래서 현관에 딱 들어가셨는데 아내가 그 현관 앞을 지나가면서 목자님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무시하듯 지나가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순간이 목자님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답니다. ‘회사에서도 그림자인데 집에서도 그림자냐’ 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셨대요. 그리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셨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럽고 분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이르렀느냐? ‘나 목장 안 해.’라는 생각에 도달을 하셨어요. 여러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아니에요? 들어보시기만 했을까요? 직접 하시기도 많이 하셨죠? 조금만 힘들면 ‘나 목장 안 해. 나 안 해. 나 안 할 거야. 더 이상 못 하겠어.’ 우리의 주제곡 중에 하나인데요. 여러분, 이런 생각 드실 때 어떻게 하세요? 어떻게 그 순간들을 지나가셨나요? 이 목자님은 ‘나 목장 안 해’ 이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 머리에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래요. 누구 얼굴일까요? 목원들 얼굴이 떠올랐대요. 그래서 ‘내가 목장 안 하면 우리 목장 식구들 어떡하지?’ 그러면서 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장면들은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이 부부가, 또 도저히 살기 힘든 지금 나의 삶이 목장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들교회의 말씀의 양육을 통해서 지켜졌던 그 은혜를 받았던 그 순간순간들이 정말 주마등처럼 쫙 지나갔다는 거예요. 도저히 우울한 채로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마루 나갔습니다. 너무 염치가 없지 않겠어요? 저는 생각만 해도 제가 만약에 저 같은 교양과의 인물들, 인본적인 사람들은요, 아, 그렇게 하면 자존심 상하고 안 해볼 면목도 없고 속된 말로 쪽이 팔려 가지고 도저히 할 수 없을 텐데, 이 목자님은 가서 지금 막 아내한테 투정 부린 거 다 아는데 가서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을까?”라고 하면서 미션을 받아서 두 분이 잘 목장을 준비하셔서 그날 목장을 잘, 또 예배 잘 드리셨다고이 나눠 주셨어요. 여러분, ‘목장 안 해’ 할 때 ‘목원들은 어떻하지?’ 이 얼굴들 생각나게 하시면서 그 생각을 넣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염치 없지만 염치 불구하고 벌떡 일어나서 아내한테 가서 같이 목장 섬기겠다고 한 것이 그것이 정말 부르짖는 기도 아니겠어요? 그리고 오늘 옷니엘처럼 나가서 싸우는 그 결단이자 적용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우리도 각자 저마다 안 하고 싶은 일 너무 많죠. 멈추고 싶은 일 너무 많으실 거예요. 저도 그런게 참 있답니다. 그만하고 싶은게 좀 있어요. 그러나 이럴 때 부르짖음에 나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당신의 그 구원 역사의 시작점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부르짖으면서 벌떡 일어나서 염치 불과하고 다시 적용하면서 다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그 자리를 잘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 어떻게 하십니까? 드디어 그들을 위해서 한 구원자를 세워 주십니다. 바로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인 옷니엘이에요. 첫 번째 사사입니다. 니엘이 뭐가 그렇게 대단했을까요? 가문, 성품, 능력? 아니에요. 오히려 옷니엘은 갈렙과 같이 말하자면 정통 유대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뿌리가 이방 민족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마치, 지난주에 우리 고라 자손 말씀 나눴는데, 고라 자손처럼이 갈렙이나 옷니엘은 다 죄패를 하나씩 붙이고 있는 거예요. 이방 출신 유대인, 이방 출신 유다 지파, 이방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아주 사실은 미천한 사람이고 무시받기 쉬운 존재죠.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첫 번째 사사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에 있는 대로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구원도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효과적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을 그냥 이겼다고 하지 않아요. 성경은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구산 리사다임을 옷니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누가 넘겨 주셨어요? “여호와께서 넘겨 주시매 옷니엘이 구산다임을 이겼더라.” 하나님이 온니엘를 한 구원자로 세우셨지만 그 구원은 하나님께서 친히 직접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옷니엘이 사사로 있는 이 40년 동안에 평온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평온했어요. 메소보다미아의 압제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그 싸움과 전쟁이 멈췄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게 한 가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보내셨을까요? 여러분, 효율적인 거 좋아하시죠? 효율적인 거 생각하면 ‘아니 한 번에 세 명 아니 한 번에 100명 아니 천명을 한 번에 보내셔서 아예 그냥 뿌리까지 다 쓸어 버리시지 왜 이 딱 한 구원자를 세우셨을까?’ 여러 각도에서 우리가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거 한 가지 있습니다. 모든 사사는 진짜 구원자를 가르키는 화살표이기 때문이에요. 니엘도 에훗도 삼갈도 그 어떤 사사도 다 예고편일 뿐입니다. 본편과 완성편은 따로 있어요. 진짜 구원자는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2:5)
우리는 늘 대체재를 찾아요. 플랜 B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해서도 도움을 들어고 해요. 선행, 예배, 헌금, 봉사 이런 행위 보험들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 최대의 시험인 이 구원의 시험의 답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이번 주 QTM에서 아까 우리가 영상도 보고 했지만 이 QTM에서 목사님 책 <합격>이 새로 나왔어요. 오늘 우리가 이 본문에 따라서 말이죠, 제가 일부러 맞춘게 아니잖아요. 우리 본문에 따라서 이 시험에 관한 말씀을 나누는 날 그 주간에 이 <합격>책이 QTM에서 출판이 되었다. 우리 목사님께서 우리 다 합격하라고 응원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시험에서 다 합격하라고 정말 치어 리더가 되셔서 하나님께서 이 <합격>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응원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합격하려면 무슨 책을 읽어야 된다고요? <합격>책을 읽으셔야 된다는 거예요. 이 책에서 중요한 구절 한 가지가 있는데요. 이렇습니다.
“모든 시험이 그런 것처럼 천국 시험에도 거의 합격이란 없습니다.” <합격>
그렇습니다. 거의 구원은 없습니다. 부분 구원도 없습니다. 반쪽 천국 이런 거 없습니다. 구원이냐 아니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이 둘 중 하나뿐입니다. 구원의 시험 문제에서 부분 점수가 있다고요, 없다고요? 구원의 시험 문제에서는 부분 점수가 없습니다. 맞느냐 틀리느냐만 있어요. 오직 한 구원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100점을 맞습니다.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문제가 많이 있죠. 그런데 그 문제들 다 애를 써서 다 맞춘다 해도 이 구원의 문제 하나 틀리면 그 인생은 몇 점짜리예요? 빵점인 거예요. 죽음과 함께 다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 다 틀려서 빵점을 받는다 해도 우리 육신의 삶이 다 무너져 내려서 사람들 앞에, 이 세상에 보여 줄 것이 하나 없다 하더라도 구원의 시험 문제 하나 맞추면 그 인생 몇 점짜리입니까? 100점, 천점, 만점짜리 인생인 줄 믿습니다. 구원만이 인생의 답인 거예요. 다른 건 없습니다. 다른 건 다 지나가지만 구원만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의 정답이신 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두의 삶에이 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이 높이 세워지셔서 다 만점짜리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질문3
나는 요즘 골방에서 침묵합니까, 타인에게 소리지릅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까?
내 마음에서 예수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구원이 내 인생의 답이라고 자신있게 고백할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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