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설교] 수요 큐티예배 | 잠언 28:1-28 - 김오석 목사 / 윤부경 초원지기 | 2025.08.20 > 사역자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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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설교] 수요 큐티예배 | 잠언 28:1-28 - 김오석 목사 / 윤부경 초원지기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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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QTnoony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5-08-20 14:00

본문

날짜: 2025.08.20
본문: 잠언 28:1-28 | 사자같이 담대한 의인
설교: 김오석 목사 / 윤부경 초원지기

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3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5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19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21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2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23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4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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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이번이 세 번째 수요 설교인데요. 두 번 다이 인사하면서부터 울어 가지고 이게 자기 소개를 똑바로 한 적이 없더라고요. 네. 그래서 오늘도 아슬아슬 했는데 그래서 오늘만큼은 울지 않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자와 같이 담대한 김호석 목사입니다. 네. 네. 제가요 참 힘들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 바로이 잔소리인데요.이 잔소리 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널 위해 하는 소리야라고 이렇게 말을 하죠.데 저는이 잔소리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인생에 하등 어떤 도움이 될까? 이거를 왜 내가 듣고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엄마의 잔소리,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잔소리. 어, 아내 남편의 잔소리, 목자님의 잔소리. 네. 잘 듣고 계세요. 네. 남자는 이제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남자는 어머니에게 잔소리 듣다가 결혼하면 아내에게 잔소리 듣다가 또 딸을 나면 딸에게 잔소리 듣다가 가는 인생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네. 저도 딸이 있어서 굉장히 이제 슬픈데요. 네. 아홉살인데 벌써 잔소리를 시작했어요. 저한테. 네. 오늘이 잠언 본문을 제가 묵상하다가 어 최근에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분이 그러는 거예요. 저는요 시편 잠언이 말씀 정말 안 읽혀요. 듣기 싫어요. 하나님이 잔소리 하시는 거 같아요. 어 게으른 자는 이렇다. 부지런한 자는 이렇다.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흥한다.이 하나님이 잔소리 하시는 거 같아서 귀에 안 들어와요. 그러니까 목사님도 그만하세요. 네. 저한테 이제 그랬어요. 그래서네 우리가 이렇게 하기도 듣기도 듣기도 싫은 잔소리를 합니다. 여러분은 잠언을 어떻게 묵상하고 묵상하셨나요?이 이 잠언 말씀 중에 특별히이 25장부터 29장까지의 내용은 솔로몬의 잠언을 히스기아 왕때에 재편집한 내용입니다. 어떠한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솔로몬 왕조 이후에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분열분열되었죠. 일지감치 하나님을 떠난 북 이스라엘은 200년 동안 무려 19명의 왕이 교체가 되었어요. 그중에 아홉 명은 어 암살를 당하거나 어 반역으로 이제 교체되었어요. 어 왕도 너무 불안하고 백성들도 너무 불안하지 않았겠습니까? 어, 반면에이 남유다는 북 이스라엘보다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멸망으로 가는이 북 이스라엘을 보고 남유다도 불안했을 거예요. 그래서 히스기아 왕과 신하들은이 솔로몬의 잠언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혹자는 28장 29장을 통치자들의 지침서, 궁중교육의 내용이라고도 하는데요.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오늘 본문이 다시 편집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날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큐티로 구속사의 궁중 양육을 받고 있잖아요. 아, 동의가 안 되시나 봐요. 네. 매일 큐티하고 또 양육 받고 예목 받고어 예목 원투 받고 맨날 도구감 주제 큐티 주일 설교 열심히 하면서 맨날 잔소리 듣고 잔소리 하시잖아요. 이게 이게 큐티 이제 궁중 양육이라는 거죠. 네. 제가 지금 잔소리 하는 거 같나요? 네. 그런데이 듣기 싫다고 여기는이 잔소리가 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사실이 잔소리의 대부분은 맞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맞는 말 정답이라서 우리가 듣기 싫은 거잖아요. 부모님의 스승의 공동체의 잔소리가 맞는 말인지 몰라서 우리가 듣기 싫은게 아니에요. 참 희한하게도이 같은 말을 해도 아내가 하면 안 들려. 네. 똑같은 말을 해도 남편이 하면 듣기가 아주 싫어 버려요. 진짜이 사람이 하면 듣고 듣고 저 사람이 하면 듣고 듣기 싫은게이 잔소리입니다. 그런데이 잔소리가 사랑으로 들릴 때가 있어요. 내가이 잔소리를 찾아서들을 때가 있습니다. 히스기아가 오늘이 잠언들을 모아다가 재편집을 해서 궁중교육 또 왕들의 지침으로 어 삼았던 삼았던 어 삼았는데이 잔소리를 찾아서 들으러 왔다는 거예요. 오늘 그 본문을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6월 21일 큐티인 본문 잠언 28장 1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 제목은 사자같이 담대한 의인입니다. 의인은 첫째로 쫓겨본 자입니다. 1절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1절부터 악인과 의인에 대하여 분명하고 대조적인 용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라고 하죠.이 이 도망의 상태가요.이 전쟁에서 패배해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 극도의 어 공포를 느끼는 그래서 도주하고 달아나는 상태라고 합니다. 어 이게 누가 쫓아오는 것이 아니에요. 악인에게이 죄를 추궁하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마음속으로 스스로 괴로워하며 죄로 인해 불안해하며 공포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양심이 주는 고통에 스스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악인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악인의 모습을 보면 자기 죄 때문에 늘 쫓기고 불안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이 악인이라고 하면 꼭 누군가를 해치고 도둑질해야만 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아요. 무언가 하지 않아도 하지 않으면 막 쫓기듯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참 쫓기듯 살 때가 많아요. 시간에 쫓겨 살고 돈에 쫓겨 쫓겨 살고 중독에 쫓겨 살고 인정과 사람을 의지해서 우리가 쫓겨 삽니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염려를 미리 쫓겨 살아요. 꼭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악인의 오늘 실체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인의 실체가 어떻죠? 4절부터 13절까지를 보면 악인은 율법을 버리고 악인을 칭찬한다고 합니다. 나와 똑같은 자들을 옹하며 죄를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또악인은 정의를 지한다고 합니다. 말씀의 가치관이 없으니까 분별할 수도 없는 것이죠. 입술로는 기도하지만 삶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또 악기는 죄를 숨기니 형통하지 못하고 감추려고 하지만 모든 것이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자기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자멸하는 것이 악인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늘 무언가에 쫓는 삶이에요. 우리가 죄를 짓고 죄에 중독되는 것이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자기 양심이 고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가 내 안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죄에 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나는 무엇에 쫓이고 있나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불안과 두려움으로 감추고 있는 죄는 무엇인가요? 네. 여러분은이 쫓겨 보신 적 있으세요? 누가 나를 쫓아오지도 않는데 불안해서 막 견딜 수 없는 그런 경험. 네. 저는 있어요. 예. 두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이 첫 번째로 제가 태어나서 정말 전력을 다해서 도망가고 싶었던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잔소리였습니다. 저희이 어머니는 이제 한 번 말씀을 이제 시작하시면 가루가 될 때까지 막 쏟아 부으시는 분이에요. 보통 잔소리가 아닙니다. 네. 제가 핸드폰에이 어머니를 그 바리셋이라고 저장해 두었던 적이 있는데네 그 잔소리에는 책망과 가르침과 훈계와 멸시와 비난과이 등등이 저는이 어머니 목장 식구들이 도대체 어떻게 그 목장에서 견디고 계시는지네 그게 참 의문이에요. 네. 네. 같이 말씀을 들어도 참 절대 자기 죄는 안 보세요. 네. 오늘 말씀은 잘 들었어? 나눠 봐. 무슨 죄를 봤어? 무슨 적용할 거야? 확실해. 그거 가지고 되겠어? 짐승이 맹해 가지고 무슨 죄를 보겠어? 말씀이 안 들려? 안 들려? 네. 제가 라면을 먹어도 애가 말씀이 안 들리니까 그렇게 해로운 거를 먹지. 어, 제가 TV를 봐도 그 시간에 큐티를 해라. 제가 어디 여행을 간다고 해도 쓸데없지 말고 그냥 쓸데 없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네가 이러는게 다 말씀을 안 들어서 그래. 짐승이라서 짐승 아유 짐승 막네 다들 집에서 그러시나 봐요. 예 물론 뭐 어머니와 지금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닌데요. 네. 지금은 아예 말을 안 해 버리니까요. 제가 네네. 최근에 이제 또 어머니랑 또 이렇게 저기한 이후로 제가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말을 안 하고 있어요. >> 할렐루야요. 네. 네. 예전에는이 제가 그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늘 또 눌려서 거짓말로 피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을 때 그 어머니를 떠난 그 해방감 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네 기쁨이었습니다. 네. 제가이 쫓겼던 두 번째 사건은요. 위조와 퇴학 사건입니다. 네. 예. 필리핀에서 잠시 자유를 느끼나 싶었는데 이제 술, 담배, 어, 음란으로 금세 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떠나자마자 방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에 대한이 불안함이 저를 막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에만 이제 교회에 나가서 이제 성가대하고 찬양팀하고 하면서도 또 죄 짓고 또 죄짓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루하루가 괴로워 우울증에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당연히 대학교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요.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 이제 내가 살 이유가 없다. 이렇게 여기면서 매일 술로 주세우다. 그렇게 술김에 떨어져 죽으면 딱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할 그 무렵에네 2008년 어머니의 인도로 우리들 교회에서 이제 말씀을 듣고 아 모든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어 우리들 교회 공동체에서 살아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극하게 이제 되면서이 제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그 내가 실패한 유학이라는 것을 어 보여 주기가 싫어서네 제가 그 잘 아는 현지 브로커를 만나서 성적표를 위조하고네 그 성적표를 이제 보여 드렸어요. 네. 아버지는 이제 그 사실을 모르시니까 어 편입 원 신학교회 편입 원소서로 제출하셨고네 합격한 저는네 2년간의 모든 편입 과정을 마치고 마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지만 홀로 죄에 눌리고 불안에 쫓기는이 2년간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우리들 교회에서 양육 받으면서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기 일주일 전에 어 공동체 양육과 처방으로 학교에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학 처리가 되었습니다.이 사건으로 12년간 다시 학사 석사 과정을 다시 밟는 복구전을 치르게 되었고 3년 전에 비로서 목사한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네. 저의 삶은 늘 불안과이 두려움, 죄에 쫓는 삶이었는데 어 우리들 공동체를 만나고 또 이렇게 죄를 오픈하고 어 해석하게 되니까 그동안에 눌려 있던 그 죄가 너무 이제 회개하고 평안해졌고네 그 쫓기는 삶에서 이제는 안정기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첫째로 쫓겨본 자가 의인이라고 했는데요. 어 악인의 실체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의인은 둘째로 찾아본 자입니다. 5절입니다. 악인은 정의를 깨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악인의 특징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고 늘 죄에 쫓기며 살다 자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의인일까요? 의에 대하여이 의로움에 대하여 찾아보니 의는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땅한 관계를 뜻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 마땅한 관계가 의라는 것이죠. 부부 간의 올바른 관계, 부모 자녀 간의 올바른 관계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이 바로선 것이 그런 바로선 상태 그것을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관계에 필요한 기본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입니다. 나라가 분열하고 가정이 깨지고 관계가 깨지고 왜 그럴까요?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흠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받은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덮여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흠이 많아요. 그죠?이 이이 세상에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100% 죄인이라 부모 자식간에도 자기밖에 모르고 또 내 자녀를 위해서는 남의 자녀는 얼마든지 해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도 사랑도 버리고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내 행복을 위해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의인이 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정의를 깨닫고 분별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여호와를 찾는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의 삶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우리가 뭐 잃어버려서 어 그런 것을 찾는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전심 전력으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간절히 추구하고 탐구하며 전심으로 구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물을 찾듯이 간절히 하나님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간절히 큐티하고 전심으로 목장 나가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갈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히 여호와를 찾는 자가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하십니다. 본문에서는이 악인과 대조되는 의인의 모습을 9절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분별을 얻고 숨기지 않고 죄를 자복하여 긍휼를 얻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사랑으로 부족함이 없게 없는 삶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의인은 말씀을 찾고 공동체를 찾고 사명을 찾아서 마땅한 관계를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전심 전력으로 말씀 찾고 공동체를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신 관계 속에서 회복해야 할 마땅한 관계는 무엇입니까? 자복하여 드러내야 할 숨은 부끄러움의 죄는 무엇입니까? 구원을 위해 내가 찾아야 할 사람, 피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네. 저는이 모든이 아 모든이라고 안 할게요. 저는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단점부터 보이는 병이 있어요. 그래서 말을 또 곱게 잘 못 하고 또 그래서 제 의도와는 다르게이 저의이 잔소리로 상처를 주거나 어 상처를 주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어머니의이 잔소리에 쫓기는 인생, 또 위조의 죄로, 죄로 인해서 쫓기는 인생의 때를 이렇게 통과하면서 이제 우리들 교회에서 수지 인생이 되어서이 신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그전에는 몰랐는데 저는 제가 굉장히 쿨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제 아니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마땅히 세워 주신이 관계,이 선이 있는데 저는이 하나님보다 더 엄격한, 더 예민한 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의 관계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내와의 관계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거기다가 제가이 청결 강막과이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어 제가이 아내를 닭달하며 제 기준을 막 드이밀면서 당신은 틀렸다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집에서 청소를 해도 밥을 먹어도 옷을 걸어도 제가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거예요. 엄마한테 쫓기던 자에서 이제 막 추격자가 돼 가지고이 아내를이 달달 볶았습니다. 네. 부부 목장에서 이런 절을 고발하는이 아내를 그때 이제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는데요. 새벽까지 이제 새벽 5시까지 이제 붙잡아두고 독한 잔소리를 쏟아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네. 아내가 꼭이 새벽 5시를 적으라고 해 가지고 네. 적었는데요. 네. 아내는 저와는이 정반대의 이제 성격이라서 너무 숨막혀 했고이 하다 이제 숨이 너무 막히다 보니까 막 여호와를 찾고 목장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주제가가 어 남편을 만나고 비로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게이 제 아내의 주제가예요.네 제가이 모에 꽂히면 이렇게 끝까지 논쟁을 합니다. 너무이 담기 싫은 바리새인 어머니의 이제 모습이입니다. 네. 저는 어머니를 바리새인으로 핸드폰에 이제 저장을 하고 저희 아내는 저를 맹견이라고 저장을 하고이 너무 많이 저희가 싸우는 바람에 이제 목장이 없으면 중제가 안 되었었습니다. 네. 목자님 공동체에서 정말이 지극 정성으로 돌봐 주셔서네 비로소 말씀과 저의 죄가 보이기 시작했었습니다. 엄마랑 제가 아, 어머니랑 제가이 똑같은 사람임을 이제 인정하니까 참이 어머니의 말이 듣기 싫었던 것이 아, 참 우리 어머니는 아프다. 이렇게 여겨서 너무 듣기가 싫었는데 어 제가 똑같이 아내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이제 보니까 어머니와 너무 똑같고 저의 불안과 강박을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이 포장해서 아내에게 잔소리의 폭력을 행한 것이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정죄가 이해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네. 표현이 어떠하였든 그 잔소리의 근원이 사랑이었으리라 여겨지니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이 이 공동체에서도 참 저를 사건 사건마다 어 양육해 주셔서 제가 못 먹었던 해물도 먹게 해 주시고이 청결감막도 고쳐 주시고 잔소리하는 제 입도 이렇게 때려서 막아 주시고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또 하게 해 주시고 가족과 공동체와 관계 회복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 찾고이 사명 찾아준 공동체 은혜로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에 쫓겨본 자 여호와를 찾아본 자 의인은 마지막으로 담대한 자입니다. 18절입니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의를 상실한 사람은이 두려움에 쫓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 죄는 개인에서부터 나라에까지 미칩니다. 한 나라가 북 이스라엘이 무너져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이 남유다의 히스기아와 신하들이 솔로몬의 잠언 말씀을 다시 찾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남일이 아닌 거예요.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은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는 것이 무엇일까?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정말 담대해지고 싶다고 어 담대함을 원했을 것 같아요. 늘 죄에 쫓이고 눌리고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데 어떻게 담대해질 수 있을까? 지혜도 명철도 능력도 없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 걱정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참 그렇습니다. 그래서 담대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우리 인생이 그런 거 같아요. 장담할 인생이 없다고 하셨죠? 그래서 두렵고 떨립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가 담대해질 수 있을까요? 18절에서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은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이 정직하게 회개하며 사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이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책임지셔서 결국 구원으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담대함은 나의 어떤 고집이나 배장이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이 담대함은 죄와 수치를 자복함으로 담대함이 드러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담대함으로 드러나고 세상의 관행과 불법에도 온전한 길을 걷는 정직으로 드러나고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긍휼의 실천함으로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붙드셔서 구원하시기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구원하신다는 그 확신으로 담대함이 드러났습니다. 히스기아 왕과이 신하들은이 잠언이 오늘 본문을 재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의로워지리라. 율법을 잘 지키리라. 나는 담대해지고 나라는 견고해질 것이다. 구원받으리라는이 믿음을 서로 다졌을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주셨던 말씀이고 히스기아에게 이어진 말씀입니다. 히스기야에게 그 간절함이 있었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이 히스기아에게는 잔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명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이 잠언은 잔소리 책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라를이 가정을 나를 구속사의 어 울타리로 아 살리는 구속사의 울타리입니다. 우리가이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가 있죠. 때로는 화도 나고 생색이 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 하나님의 잔소리 같아서 듣기 싫다는 그 형제님께네 말씀드리고 싶어요. 구속사의 울타리입니다. 잔소리가 아니에요. 사실이 말씀과 공동체는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인 것이죠.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없는게 얼마나 슬픈지 몰라요.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데 아무도 나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무슨 말만 하면 상처받고 분노하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말을 해 줄 수 있겠어요? 아무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잔소리를 듣기 싫어했던 제가이 히스기아 오늘 히스기아처럼이 공동체에 물으며 스스로 잔소리 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너무 듣기 싫었던 그 잔소리가 사랑으로 들리기 시작했어요.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보다 내 삶이 더 죽겠으니 잔소리 앞에 나아오게 됩니다. 살아야겠으니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책망과 교을 찾아듣고 회개하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어 걸어가는 자를 주님은 구원하셔서 결국 사자같이 담대하게 세워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이 유다 지파 유다 지파의 개보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습니다.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을 계승하고 혈통으로는 다윗을 계승하는 왕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실패했던이 왕조를 완성시키시는 왕 예수님이십니다. 오늘이 본문을 평범하게 읽으면 악인과 의인의 이야기이지만이 시대에 히스기아 왕에게 다시 감동을 주기 위하여 다시 편집하게 하신 솔로몬의이 잠언을 히스기아의 마음으로 우리가 다시 읽어보는 것이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멸망한 나라 이스라엘은 죄에 쫓며 두렵게 살았다.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하겠다. 여호와를 찾는 너를 의인이라 부르며 너를 통해 왕조가 이어질 것이다. 사자와 같은 메시아 구세주가 날 것이니 담대하거라. 네. 저의 잠언 묵상이었습니다. 네. 적용 질문입니다. 나는 말씀과 공동체의 처방을 잔소리로 듣습니까? 생명줄처럼 간절히 붙잡고 있습니까? 내 성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시는 성실로 정직하게 회개하고 있습니까? 구원 때문에 담대함을 드러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이 사자와 같이 담대하라고 하시는데 제가 참 담대하지 못합니다.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늘 두려움에 쫓듯 죄에 쫓며 살아온 제가 악인입니다. 돌아보니 역시나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악인의 길에서 불안으로 강박으로 폭력적인 잔소리로 무너진 인생을 돌이키사 하루만큼만 담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죄와 상처로 관계가 깨어진 자리마다 주님 은혜로 덮어 주시어 하나님의 의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여호와를 찾는 성실로 내 옳고 그름과 고집과 허세가 아니라 정직하게 회개하며 말씀과 공동체의 책망과 잔소리를 생명줄처럼 붙잡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이 모든 말씀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 네. 오늘 잠언 어 제목은 이제 사자 같은 담대한 의인이라고 이제 말씀을 해 주셨죠. 어, 저는 이제이 자리가 꼭 사자 입에 예, 그 물려 있는 사자 같은이 단상에서 이제 먹히고 있는 죄인이다라는 생각이 지금 들고 있습니다. 참 목사님 그 잔소리 대마왕 그 어머니와 아내 아내에게 또 그렇게 표현하셨다 그랬는데 어 많이 제가 찔립니다. 예. 저희 아내가 늘 저보고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거든요. 예. 네. 오늘 이렇게 예전에 이제 주일 예배 때 제가 이제 대표 기도를 했는데 어느 한 여집사님이 기도를 하다가 이제 눈을 번쩍 떠서 저를 쳐다봤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제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라고 하는데 예. 좋으십니까? 예. 저는 이제 믿음보다 목소리가 더 좋다라는 신임 초원지기 윤부경 집사라고 합니다. 네. 네. 지난주 이제 수요 설거 때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거 기억하시죠? 어, 은혜가 있든지 어, 재미가 있든지 해야 된다고 그러셨는데 여러분 어떠셨어요? 재미가 있어도 너무 있었잖아요. 그래 갖고 아 제가 막 화가 확 올라오더라고요. 아 도대체 다음에 설 믿음 없고 이제 재미없는 저 같은 사람 뭐 해 먹고 살려고 이제 갑자기 화가 나더라고요. 사실은 그 저의 첫 부부 목장에 있어서 어 저의 죄를 끌어내 주신 분이거든요. 그분이 예 제가 얼떨결에 이제 그 음란 오픈을 해 버려 갖고 그분 꽤 넘어가 갖고 아 다 돌아가면서 이렇게 음란 얘기를 하시는 거야 이거 아 여기 부부 목장은 음란 얘기 해도 되는 곳인가 보다 그래 갖고 제 참 어리석게도 거기서 이제 임신 8개월 아내 앞에서 제가 음란 얘기를 해 버려 갖고 참 그렇게 제가 어리석었던 자였습니다. 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가 오늘 수여 설교 이렇게 간증하게 되었다라는 이제 전화 받고 나서 이제 아내의 잔소리가 이제 역으로 시작됐습니다. 음. 당신은 간증의 은혜도 안 되고 또 누구처럼 재미도 없는데 이제 어떻게 하냐? 당신이 가장 잘하는 거라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제 그러더라고요. 어 그러면서 당신 전문인 룸사람하고 노래방 가서 템버린 치고 춤추는 거라도 잘하니까 그거라도 단상에서 한번 하고 내려와 그래 갖고 뭐 뭐 보여 드려요. 오늘은 그래도 거룩한 자리니까. 예. 아, 진짜 참 아내의 그런 잔소리가 참 이제 놀림과 그런게 참 저한테는 참 지금 좋은 이제 어, 잠언 말씀과 같이 훈계의 말씀이 됐던 거 같습니다. 네. 오늘 말 본문 말씀을 다시 보니까 기억 상실증 환자처럼 이제 본문이 참 새롭습니다. 불과 두 달 전에 이제 새벽 큐티 때 말씀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게다가 보잘 것 없는 이제 저의 삶을 간증하면서 다시 설교 준비를 하려니까는 참 제가 진짜 안내의 말대로 불성실 하한 사람 맞다라고서 이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불성실하려고 제가 사실 불성실한게 아니라 사실 저는 이제 AD HD는 아니고 ADD라고 합니다. 주의력 결핍과 이제 부주의가 이제 많아서 제가 이제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 합니다. 사실 저는 이제 가방 끈도 짧고 살아온 날에 상처도 많고 또 지금 현재 난치성 질환을 이제 앓고 있습니다. 이제 상처가 조각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 이제 다 으깨져서 가루가 되었던 저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시켜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주셨는지 상한 심령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이 때마다 도우시는지 이렇게 말씀으로 제 삶을 간증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 잠언의 뜻을 국과사전을 찾아봤습니다.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시간은 금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이렇게 따위로 적혀 있고 또 사람이 살아가는데 훈계가 되는 짧은 말 즉 짧고 현명한 격원과 교훈을 의미한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잠언이라는 사전적 뜻이 딱 맞는 이유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인데 제가 설교 말씀 준비를 계속 미루니 이제 수요 설교 안내 전화가 왔을 때부터 어제 저녁까지 안내로부터 역시 당신은 불성실의 대명사야라는 또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 그 한 사람 저를 불쌍해기는 시간이 되어 주시고 은혜는 이제 가짜 알아서 받아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 오늘 의인의 담대함과 악인의 두려움 차이. 첫 번째 여호와를 찾는 자는 율법을 지켜 지혜로운 정의를 깨닫습니다라고 이제 했습니다. 4절과 5절 말씀에 율법을 버린 자와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무시하며 정의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며 율법을 지키는 자와 여호와를 찾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며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힘든 아픔과 고난이 왔을 때 아이는 엄마 아빠가 뒤에 있으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교회의 예배 안에서 율법을 듣고 지키는 자가 정의를 깨닫고 여호와를 찾아서 여호와 백을 의지하니 담대한 용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악인은 의지 대상 없이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해야 하니 더욱 힘들고 두려워 악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뿐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의 가정은 온갖 무속 신앙속 이제 불신 가정에서 증조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육남해 중 막내로 자랐습니다. 대가족 중심 구조 가정에서 할머니께 많은 사랑도 받았지만 요셉처럼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도 받았습니다. 아니 큰 형님과 큰누님은 이미 결혼해서 어 저의 동생벌 같은 조카들이 있었고 대가족 구조 속에서 존재감이 없었다고 어 표현하는게 사실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사랑받은 기억보다 상처받은 기억과 슬펐던 기억들만 남아 있는 것을 어 보게 됐는데 아마 그건 제 뇌구조가 약간 정상은 아닌 거 같습니다. 피해 의식의 뇌구조를 제가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 대형 아파트 건설 하청으로 도어 샤시를 이제 만들어서 제조 납품하며 자수 성가하신 아버지는 하나님보다 당신이 더 위협고 온 가족 앞에 굴림하며 무서운 분노 혈기를 보이셨습니다. 사내립 같은 아버지 밑에서 다들 두려워 떨었기에 어머니도 형제들도 그 누구도 저를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일찍히 조실부모한 어머니는 남의 집 식모사리로 들어가 고생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해 평생 무학자로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끝없는 가난 속에 먹고 살기 위해 지병으로 돌아가신 첫 번째 어머니 후로 들어가서 전처에 자녀가 세 명이 있는 상태에서 아 세 명의 자녀를 낳으셨는데 그중 제가 막내입니다. 무서운 남편 밑에서 힘없이 골종하며 사신 어머니가 자녀들의 보험막이 특히 저에게 있어 보험막이 되어 주지 못했다라는 서러움에 아 저는 바보 같은 엄마라고 이제 오랫동안 원망을 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혈기하는 그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일부러 아버지가 싫어하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서 이제 아버지가 가장 싫어했던게 교회를 다니는 거였는데 그 교회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따라다니면서 그것이 이제 들켜서 기절할 정도로 이제 제가 매를 맞았습니다. 그 사실 저는 그때 기절을 해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나중에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말씀을 해 주셔서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사업이 힘들어질 때마다 힘 없는 어머니에게 사업 자금을 또한 빌려오라고도 이제 화를 내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던 저는 이제 초등학교 때 친구가 제안했던 이제 신문 우유 배달등을 하면서 스스로 이제 용돈을 벌어보고자 이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할 쯤에는 이제 일찍이 사회에 나가서 야 돈 벌어 봐야 되겠다. 그래 갖고 이제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제 내가정한 방법으로 당시 최고의 공업고등학교에 이제 특원에서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서 공고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졌고 실업계 학습 능력만으로는 이제 대학의 문턱이 너무 높아진 것을 저는 이제 내가 열심히 공부를 안 한 잘못을 찾기보다는 내 인생이 정말 꼬였어라고 하면서 이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세상 탓을 하고 열등감을 감추고자 자기 열심만 내면서 이제 점점 더 차라리 돈을 더 벌자 그냥 하는 식으로 돈을 쫓는 악한 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대기업 이제 엘리베이터 설교 회사에 이제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또 이제 중소기업에 이제 스카웃되어서 그 해당되는 중소기업에서는 이제 일본으로 이제 두 달 이제 불법 취업도 갔습니다. 이제 가서 이제 도면 좀 빼우라고 이제 저를 보냈어요. 그래 갖고 도면을 뭐 멋지게 빼우겠습니까? 현장에 가서 그냥 아시바 타고 하면서 아시바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이제 해 가면서 이제 그 도면을 이제 그대로 이제 갖고 왔던 겁니다. 당시 컴퓨터가 이제 일상화된 이제 생활 모습을 보면서 아 컴퓨터 참 멋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면은 돈을 왕창 벌 것 같다라는 생각이 이제 들어서 어 돌아와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제 기업체 전산 관리 프로그램을 이제 또한 개발하고자 이제 프로그램 개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그때 당시 개발한 프로그램이 이제 책방과 비디오방 등에 이제 제가 이제 방들을 좋아하네요. 보니까 이제 보니까 룸 룸빵도 좋아하지만은 이제 책방, 비디오방 이렇게 좋아하는 지금 보니까는 이제 깨달아지네요. 그때 당시 이제 그렇게 책방 비디오방 책 대여점 비디오 대여점네 바꾸겠습니다.네 그래 갖고 이제 견출지에다 당시에는 이제 이렇게 대어하는 이제 방식이었는데 어 일본에서 봤던게 이제 빨간 불빛이 나오는 이제 바코드 바코드 스캐너를 이제 도입을 이제 그때 당시 했습니다. 그래 갖고 도서되어전 프랜차이즈 이제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갖고 큰 돈맛을 또 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제 세상의 물질 권세 맛도 이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번 돈맛을 본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너그러워집니까? 악해집니다. 예. 그렇게 모은 자본을 가지고 더 큰 욕심에 이제 젊은 호기로 시작했던 이제 자동차 기계 장비 수입 판매하고 국산 제조까지 이제 거침없이 했습니다.이 역시 이제 승승 장고하자 환경이 좋아지면 우지가 뭐 하겠습니까? 결국 악하고 음란해집니다. 전국 지방의 이제 대리점들에게 이제 술과 음란으로 어 나오네요. 룸사롱 접대 영업을 이제 하면서 이제 올림 매출이 어 꽤 높았는데 그때 당시 이제 마지막 IMF로 인해서 환율 인상 납품 장비 이제 결자금 회수가 안 되고 반품 요청 등으로 이제 직격탄을 맞아서 이제 망하게 됐습니다. 당시 이제 결혼 3년 차였습니다. 또한 그때 갑자기 이제 몸이 굳어지는 강직성 척취염이 이제 발병되었습니다. 당시 의학으로는 이제 치료제도 없고 의사 선생님들 목표가 저를 그냥 휠체어 생활 정도 할 수 있는 것을 이제 목표로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저는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고 이런 내 모습을 이제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이제 전처는 돌이 갇이난 아들조차 이제 버리고 어 모성의 모습도 없이 이혼만을 이제 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이제 이혼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 집으로 두 살 아들과 다시 들어가는 일이 제게 있어서 해달별이 떨어지는 이제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사업이 이제 쫄딱 망한 저를 경제적으로 또한 도와줄 형편도 사실 못 했었습니다. 몸도 건강치 못한 내가 어린 아들과 늙은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사는 삶 자체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전체에 대한 욕설과 내게는 너무 너도 그냥 죽지 못하러 살았냐라는 식으로 어 저주와 핍박의 욕을 이제 또한 들어야 했었고 또 집안일을 이제 얼마나 많이 그때 당시 했는지 주분 숲진까지도 이제 걸리고 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병든 저와 어린 아들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그러니 저는 어떻겠습니까? 날마다 원망하고 저주의 칼을 갈면서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사는 아암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던 마침 교회와 하나님의 율법을 이제 버리고 나의 유익만 불리려 했던 물질 권세로서 열등감을 감추는게 최선인 줄만 알고 살았으니 그것이 바로 악인의 모습대로 살았던 것이라 것입니다. 것입니다. 것입니다. 5절 말씀에서도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한다고 이제 했는데 설령 깨달아도이는 자기 정의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행위를 가르키는데 정의를 저버린 자는 심령이 어두워져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여호와를 찾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기에 그 뜻대로 살기를 원하며 아버지의 긍휼과 힘을 구하는 자라고 합니다. 얼마 전 사사기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는 공동체의 연합과 희생으로 실현된다고 이제 했는데 현재 제가 노인 제가복제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는 내이 추구만 따지다 보면은 이제 목장 공동체에 묻지 않고 내가 손해보지 않는 희생만을 꾀하고 싶은 갈등에 자주 접합니다. 이렇게 공동체 연합에 나눔을 무시하고 자기 희생 손해를 안보려는 정의가 바로 악인의 정의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제 이렇게 우선 순위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내 경험이 우선 순위가 되고 율법이 되어서 내 뜻과 합당하면 좋은 놈, 내 뜻과 다르면 나쁜 놈, 내가 아는 것이면 당연한 것, 모르는 것이면 그것이 잘못된 거지. 라는 식으로 이런음 내로남불식에 이제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정의인 것처럼 이제 우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과거 부도로 망했을 때 이제 카드 돌려막기로 이제 강남 사체 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 이자는 이제 말할 수 없이 높았죠. 외한 위기가 오래 가지 않아서 잠시 기다리면 곧 끝날 줄 이제 알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자의 이자가 불고 제가 척추염으로 입원에서 죽음의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던 때라 병원에까지 찾아오는 그 당시 이제 어 폭력배들의 이제 모습을 통해서 내 열심으로 아무리 재산을 축적한다 해도 하나님이 가져가시려 하면 아무것도 남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알게 하셨습니다. 목장 공동에서 이제 여러 경제적 고난의 광야를 지내고 계시는 가정들을 이제 볼 때면 아무리 힘들어도 중한별리 어 고리대금 업자들이죠. 그들에게 자기 재산을 늘리는 자들에게는 이제 절대 빚지 말라고 이제 저는 권합니다. 제가 모질게 아픔을 당했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도 이제 돈을 꾸지도 빌리지도 말라고 하시는 것으로 적용도 안내드리고 오직 기도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이다라고 이제 알려 드리고 있습니다. 간혹 우리는 인본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잠시 돈을 빌려 주어서 숨통을 쉴 수 있게 해 준다고도 이제 생각들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절대로 돈을 변제해서 한 가정을 한 사람을 살린다라는 것 그 말은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이는 가정에서도 자녀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이제 저는 봅니다. 모든 사건 앞에 세상적 방법을 우선 순위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된다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한 사례로 예전 목장에 한 가정이 대출이자 문제로 살고 있는 어 부동산을 헐값에 매매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부인 집사님은 항암 치료 및 보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우리 힘과 능력으로는이 집 매매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공동체 지체들은 한 마음으로 다 같이 합심해서 기도를 했고 목자인 저는 40일 새벽 기도를 해 보겠다고도 선언을 했습니다. 작신만 하고 40일은 못 채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이제 이런 저희들의 예배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어여이 보셨는지 어 작년말에 놀랍게도 수개월간 집구경도 안 오던 해당 부목자님 집이 순식간에 매매 거래가 성사되어 부채 정리를 하고 상황에 적합한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세상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 한 발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인의 담대함과 악인의 두려움 차이 두 번째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한편 이제 말씀 공동체에서 양육되어지는 목자까지 되었음에도 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의 의미를 진정으로 제가 몰랐습니다. 그저 행위 예배에만 치중했던 바리새인이었었습니다. 중병에 걸려서 당시 죽는 날만 기다렸던 저를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시켜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자라고 이제 저는 아주 그냥 그럴싸게 영어 섞어 가면서 본어 개인한 자 이렇게 막 제가 떠들고 입으로는 떠들고 다녔어요. 근데 이제 나의 중앙 그 고난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고 나니까 본성이 악한 죄인이잖아요. 우리가 다시금 저의 죄악된 음란의 속성이 여실이 이제 드러났습니다. 10년 전에 이제 딱 정확히 10년 전이네요. 10년 전 냉동 화물 운성사 대표 시절 이제 한 여직원의 가정이 남편과 관계가 매우 안 좋고 늘 이혼만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당시 목자였던 저는 교회에서 잘 양육되었다라는 그 교만과 교만으로 인해서 분별할 지혜는 없었습니다. 그저 내 열심으로 아 너무 안타까웠죠. 어 여주관과 그 가정에 구원을 진정 돕고 싶었습니다. 처음 시도 의도는 정말 진짜 순수했어요. 예. 아 진짜요? 근데 이제 목사님께서 이제 남녀간의 단둘이 차량을 탑승해서도 안 된다라고 이제 가르쳐 주셨기에 처음에는 교회 공동체로 인도도 해보고 어 그 룰들을 율법을 지키려고 이제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여관은 이제 교회 가는 것을 강하게 거부로 했고 저는 회사에서 매일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니까 개인적 상담을 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라는 아니란 마음으로 여직원의 인생 상담자가 되어서 날마다 시간 날 때마다 힘든 얘기를 들어 주고 조언도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나의 열심으로 그렇게 직원과 그 가정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어 되는 거 같은 착각에 빠질 때쯤 저는 제 마음이 음란의 소굴로 빠져든다는 것을 이제 미쳐 깨닫지 못했습니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지자 이제 여주건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어 경계가 무너져서 쉽게 스킨십 정도의 수입까지 올라가게 되고 가끔 차를 같이 타고 바람도 쇠는 정도가 되자 이제 조금 더 나아가면 곧 음란의 사고도 정점을 찍을 것 같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은연 중에 자기 죄를 숨기는 자가 되어 갖고 하나님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아내에게나 목장에게서나 저의 음란 죄를 자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 위선된 목자 타를 쓴 쓰레기 같은 저를 구원하고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교실내에서 여학생과 지난 스킨십으로 사건으로 이제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다라는 아내의 말에 소스아치게 놀라고 순간적으로 두려워 두려움이 저를 이제 엄습해서 저의 절을 깨우치셔서 이제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이제 하나님의 낯을 볼 수가 없게 되었었 사건이 있습니다.이 이 아들의 사건이 일어난 그 주의 주일 말씀이 나를 살리는 회개라는 다윗의 분수령적 회개를 다룬 이제 사무엘아 12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이번 주 말 주일 말씀도이기도 하죠. 저는이 말씀으로 제 가슴을 날선 검으로 찌르는듯한 괴로움과 두려움을 경험했고 가증한 목자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먼저 저의 음란 죄를 고백하고 교회 공동체 앞에서 저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간증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또한 아들에게도 저의 음란죄에 진심으로 가정 예배를 통해서 사과도 했습니다. 적용으로 이제 교회 7위 차원에서 스스로 회사 대표직을 사임을 했었는데 단임 목사님께서도 목장에서도 사임하는 것까지는 너무 큰 적용이 아닙니까라고 이제 감당이 되세요. 이렇게 목사님 어토로 이제 걱정을 해 주시는데 걱정인지 아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요.이 이제 하지만 사실 저의 또 다른 이제 숨은 악을 보게 됐습니다. 그 안에는 이제 저는 이렇게라도 해서 저의 믿음을 공동체 모건들에게 보여서 하나님께로부터 죄사함을 받았으니 마치 내가 의인인 것마냥이 정도 회개하는 적용을 하나님은 더 큰 복으로 아마 뒷돈으로 이제 갚아 주실 거다. 복으로 주실 거다. 이제 저는 그렇게 생각을 착각을 했죠. 왜? 적용이 크면은 이제 복도 큰 줄 알았던 거죠. 근데 저의 그 어리석은이 역시 가방끝 짧은게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예. 다른 한편으로 이제 새로운 독자적 사업을 사실 하고픈 마음이 늘 중간에 가득했었습니다. 왜냐하면은 냉동화물 운송 계통이 이제 거친 화물 기사님들과 물류업계에 있어서의 그 퇴적 관행의 생활 속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도 있었기에 적용을 이제 구실로 회사를 사직을 했던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00% 오르시고 결코 속지 않으시는 분 아닙니까? 저는 얼마 안 되어 정년의 나이에 어디 일용직 및 계약직으로도 갈 수 없는 신세였던 것입니다. 나 자신을 객관하지 못한 채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여기며 내가 먼저 계획하고 서원하며 올린 기도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으로만 이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실제론 하나님을 내 옆에 앉치고 질문하는 척만 했던 사사 시대의 사사들과 같았던 거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았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7년이라는 세월을 백수와 박봉의 월급으로 살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물질의 고난으로 몰아넣어서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중에는 가족의 도움 동서가 이제 CEO로 있는 IT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 이제 들어가는 수치를 겪었고 막상 또 들어가 보니 제 나이보다 20살이나 어린 청년들의 무시와 조롱을 받으면서 이제 근무를 하는 것이 너무 어 수치스러웠습니다. 이런 내 자신이 이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정말 쓰라린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다시 훈련받아 가면서 하나님의 그 일대일 양육을 받으며 성실히 행함을 배웠습니다. 진정으로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즉 두려워하는 방법은 다른게 아니었습니다. 예배 공동체 목장에 그저 잘 붙어가요. 그곳에서 성령의 보호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나누며 나의 죄를 자복하는 간증을 통해서 다시금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인의 담대함과 악인의 두려움 차이 이제 세 번째 자기를 믿기보다 여호와를 의지해야 합니다. 또 다른 저의 허원 증상을 허원증 증상이 제가 좀 있어요. 이렇게 허원증 증상을 말씀드리면 가방끈이 짧음에도 저는 자칭 척 박사라고 이제 아 제가 외치고 다닙니다. 네. 남이 외쳐 주는게 아니라 이렇게 열등감과 피해 의식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몸으로 쌓았던 경험과 수박 겉탈기식의 학습으로 다방면에 있어서 이제 아는 척, 있는 척, 해본 척, 잘난 척 하면서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닌 얄팍한 나의 지식과 세상적 경륜으로 척척 박사가 되고자 이제 했습니다. 22절 말씀에도 어 속히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돈이 되는 사업을 이제 구상하고 물질이 많은 처가해서 어 도와주기를 바라는 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봉양하기보다는 늘 아 힘든 상태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했다라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생색을 내고 또 도움을 받지 못할 때는 이제 아내에게 이제 처가 험담을 하면서 돈만 타는 거 다 뻥이었구나 이러면서 이렇게 장인어을 이제 구두세 노인내라고 이제 비난을 을했습니다. 이런 저의 악한 마음을 하나님은 너무 잘 알고 계셨기에 저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빈궁한 삶이 오래 지속되는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인내의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별명이 참 많습니다. 감정 상할 때 내가 싫어했던 아버지처럼 혈기 많은 분조장으로 변해서 가족을 공포에 떨게 하고 기분 좋았을 때는 이제 예쁜 여자들에게 환심을 사려 했던 것처럼 아내에게 이제 꽃따발도 사아 주고 막 이제 꽃다발 사이사이에 돈도 막 꽂아주고 막 하면서 매력 만점에 남편이 되어 이제 그런 행색을 행사를 잘했습니다. 근데 그러니까는 이제 아내가 뭐라 그랬지 아세요? 아내는 어떤게 당신 모습인지 정말 몰라. 모르겠어. 당신 모습이 도대체 뭐야? 하면서 아 진짜 아수라 백작 같아. 그러면서 지금 웃으신 분들은 옛 옛 사람입니다. 예. 아수라 백장. 요즘 애들은 몰라요. 목장에서 제가이 아수라 백장 얘기했다가 완전히 그 라떼가 돼 버렸어요. 이렇게 아수라 백작이라는 별명을 지어줬고 어 목장에서는 이제 아내가 가끔 나를 이제 고발하는 소리를 못 듣지 않습니까? 잔소리를 또 못 듣는 목사님처럼 그럴 때마다 이제 혈기를 제가 좀 부렸었습니다. 그랬더니 목원들이 앵그리버드 목자라고 이제 별명을 지어줬고요. 또 한 번은 이제 제가 음란 재패를 목장에서 이제 많이 나눴습니다. 젊었을 때는 야동을 너무 많이 봐서 어 야동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제 그 CD를 이제 구워서 막 전파를 제가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그때 붙여진 이제 야동 전도사라는 이제 부끄러운 별명도 이제 갖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제입으로 이제 어 사회적 경륜이 많다 보니 아픔이 많다 보니 어떻습니까? 저는 저 자신을 잘 포장을 해야 되기에 항상 저의 말은 99%가 뻥이고 어 그 1%가 진실이냐 그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 1%든 굴합니다. 이렇게 거짓과 허풍을 떨고 게을러서 큐티도 설교도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니까는 이제 제가 불성실의 대명사라는 말을 들어도 마땅하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낮은 자존감과 높은 열등감 속에 피해 의식이 많은 저가 목장에서도 말씀이 아닌 자기 확신으로 때로는 처방할 때가 많았었습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집어던지고 때리고 부수고 아무 때나 욕방언을 이제 쏟아내면서 지랄를 떠는 연약한 목자를 그래도 목자라고 섬겨 주시고 부부 싸움도 당신들 집에서 안 싸우고 저희 집으로 찾아와서 새벽까지 남의 살림 다 자기들 살림처럼 부수고 막 이제 두들겨 가면서 막 싸워 주셨던 마을님도 계시고 목자님도 계시고 부목자님도 계시고 이제 모원들까지도 이제 저희 집이 어 방학관입니다. 예. 그래갖고 저처럼 이렇게 세상 지식 자랑하고 자기 마음을 믿는 자는 이제 미련한 자고 반면 여호와를 의지하며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만세 전에 저를 택하시고 이렇게 힘든 사건과 환경을 주신 것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창조라고 저는 하신 말씀처럼 저같이 겉으로 척척 가정을 떠는 자도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어 구원의 사명을 위한 도구로 로 사용하시니 어 그 사랑은 정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사실 납니다. 한때 이렇게 제가 장애 판정을 결국 받았습니다. 이렇게 장애 판정을 받고 난 뒤 정상인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그 자괴감에 모든 인생이 끝나는 줄만 알았습니다. 건강을 잃었다라는 거. 경제적으로 회복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이제 생각했고. 하지만 지금 사업도 가정도 물질도 다시 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저희 아내는 정말 손이 좀 많이 갑니다. 궁금하시죠? 나 없으면이 험란한 세상을 정말 어떻게 사니? 어 늘 이렇게 제가 걱정되는 투로 비안형거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꼭 먼저 천국 가야 돼. 알았지? 이제 제가 얘기합니다. 아내 먼저 천국 보내는 사람 저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 아내가 아 요즘 많이 건강해져서 결코 안 집니다. 뭐라 그러시는지 아세요? 그래 나 먼저 가면은 천국 가면 그래 또 세장가 가서 잘살 잘살고 잘 먹고 잘 살아라 이제 이렇게 놀려대고 있습니다. 저 세장가 절대 안 갑니다. 이제 이미 이혼도 해보고 재원도 해 봤는데 좋은 거 하나도 없습니다. 절대 이혼하지 마십시오. 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 니은이 그 뒤은입니다. 이렇게 저를 영적으로 붙잡아 주고 이제 육적으로 힘들게 하는 아내를 이제 짧게 소개해 드리면 제가 전처와 이혼 후 복지관에서 재활하면서 물리 치료받고 있을 때 목욕 시설을 그 해당 복지관에 목욕 시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제 노인 복지가 아니라서 이제 노인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저도 이제 그 척추 장애로 인해서 어 따뜻한 물에서 이제 온욕을 해야 되는데 거기 노인들이 이상하게 저보고 어이 청년 이리 와 여기 등이라 등 막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 어 저도 장애인인데요. 그러니까 장애인으로 안 보시는 거예요. 그래 갖고 저도 목발을 다 당시에 목발을 짓고 다녔거든요. 근데 이제 그래 그때부터 저가 이제 목욕탕 때미리가 됐습니다. 예. 그래서 이제 그래서 이제 지금 제게 제가 지금 노인 복지 제가 사업을 하는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거 같습니다. 당시 그때 복지관에서 만나 이제 재원엔 재원한 지금의 아내는 저보다 아 높은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까불지 못합니다. 힘이 세냐고요? 아닙니다. 키가 크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2급이고 아내는 1급장애입니다. 예. 비록 휠체어를 탄 모습이긴 하지만 저는 이런 아내를 저의 인생의 동반자로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모태 신앙인 아내가 또 신앙 안에서 소통하는 또한 처가가 참 부러웠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한 여자가 내 인생에 배필이 되어 지금은 한 말씀을 듣고 한 언어로 소통하면서 돕는 에제르 역할을 잘해 주고 있는게 정말 박터진 인생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와 제가 가장 큰 기쁨을 느낄 때는 이혼 위기에 있는 가정들을 찾아가 말씀으로 해석해 주고 함께 기도하고 돌아올 때입니다. 우리 부부가 둘 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힘들기는 하지만 육적인 힘듦보다 영적인 평안함을 더 많이 느끼니 저희 지금 저희 부부에게 주신 사람 살리는 구원의 사명이 너무 귀하고 딱 맞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신임 초원을 맡고 첫T 사역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26절 말씀처럼 저는 자기 마음을 믿는 미련한 자였습니다. 저희 용인 어 용인 초원은 작년 이제 충청 TT의 참여 인원이 단 세 명뿐이었다라고 이제 해서 어 TT 참여에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제 겁이 덜컥 났죠. 어쩌지? 아, 이건 용인원 목자님들은 왠지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동안 늘 목사님이 이제 뺀질거리고 말씀도 깨닫지 못한다라는 이제 분당 판결것들이라고 이제 호칭하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서 저는 이제 분당 판결것들에 속한 자로서 어 마을 불학 속에 인간 사회에서 살던 마을지기가 이제는 이제 어 용인 야생 들짐승들을 막아내야 되는 이제 초원지기가 되고 나서는 어 다양해요. 거기는 다양한 집사님들의 그 사건 속에 탐방과 신방을 다니면서 어 정말 많이 지쳐 갔습니다. 저는 매년 한 차례씩 응급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이제 난시성 환자인데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두 차례 응급실에 실려가고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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